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녀는 오늘 집에서 요리를 한다.
그녀는 자신이 하는 것은 '요리' 가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것을 대충 만지는 정도라 말하지만,
겸손한 말에 비해, 결과물은 언제나 멋들어진다.
무엇을 비벼먹어도 맛있을 것 같은 양념을 만들어, 오이를 살짝 찍어먹는다.
고구마도 먹어보고, 방울토마토 등 건강한 것들을 더 곁들인다.
예쁘게 아트 페디를 해서, 양말이 몇 개 뚫렸다고 한다.
'낭중지추' 라는 말이 어울리는 그녀답다.
그녀는 나와 만날 때마다 예쁘게 보이려고 평소 자주 하지 않은 네일을 해서, 손톱이 조금 상했다.
다음 여행에서는 먼저 네일샵을 손잡고 가서, 함께 영양 관리를 받기로 했다. 그때 페디도 해야겠다.
평생 처음으로 네일샵에 발을 들여보게 생겼다. 즐겁다. 하지만 난 페디는 하지 않겠다.
나는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항상 먹던 것만 먹고, 보던 것만 보고, 하던 일만 하고, 나라는 우물 안에서 사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녀를 따라 우물을 나와,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었다.
나란 사람의 슬픔이나 불행은, 광활한 세상에 나와보면 아무 것도 아닌 거란 걸 알 수 있었고,
내가 혼자 알던 기쁨이나 행운 역시, 그녀와의 새로운 경험의 초석일 뿐이란 걸 느끼게 됐다.
그녀는 나의 신세계였다.
좋은 사람과 술을 한 잔 기울이는 것은 좋은 일이었고,
난생 처음 바디로션을 발라보니, 몸의 피부가 좋아졌고,
잠옷이 익숙해진다. 그녀의 향이 나서 더욱 좋다.
큰일이다. 이러다 나도 페디까지 하게 될지도.
그녀가 하고 싶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가 생겼다.
내 취향보다, 그녀의 이상향이 더 소중하다.
그녀도 나도 평소보다 조금은 여유로운 주말이라, 참 행복하다.
그래서 오늘은 오랜만에 집에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영화관에서 감명깊게 봤던 영화들이 슬슬 스트리밍으로 풀리기 시작했다.
작년 9월 영화관에서 봤던 The Wild Robot 을 다시 봤다.
따뜻한 집에서 청소를 하면서 봐도 여전히 나의 점수는 10점 만점에 9점. 명작.
개인적으로 작년에 개봉한 영화 중 내가 많이 기대했던 Inside Out 2 보다 훨씬 좋았다.
Inside Out 1 이 나의 10점 만점짜리 영화이다 보니, 속편에 대해 너무 기대가 컸던 것 같다.
Inside Out 2 에는 7.5점 정도밖에 줄 수 없었고 (내 기준의 7.5점은 '걸작' 이긴 하다),
The Wild Robot 이 모든 면에서 더 뛰어난 작품이었다.
작년에 본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Look Back 과 더불어 제일 좋은 영화인 것 같다.
골든글로브상은 Flow 에게 내줬지만, 3월에 있을 아카데미상이 기대된다.
그녀를 껴안은 채 손잡고, 따뜻한 '우리의 집' 에서 영화를 보고 싶다.
물론 영화 한 편의 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아무리 집중력이 좋은 그녀와 나라도,
과연 영화에만 집중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들긴 한다.
영화보다 아름다운 그녀를 탓해본다.
4월부터 그녀와 살게 될 집에서 가구 배치를 어떻게 할지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
일단은 좁은 집이지만, 나는 1부터 100까지 그녀의 취향과 마음을 우선시해서 고려하고 싶다.
문제는, 그녀는 내가 좋다면 다 좋아하는 사람인 게 문제이다. 참 행복한 고민이다.
내가 먹고 싶다면 맛있게 먹고, 내가 가고 싶다면 같이 가주고, 내가 보고 싶다면 재밌게 봐준다.
나도 그녀가 좋다면 다 좋은데.
결국 내가 남자다운 척 먼저 스케쥴을 짜고, 동선을 짜고, 굵직한 결정을 내리는 편이다.
그녀는 나의 결정을 언제나 철썩같이 믿어주고 그대로 따라준다.
그녀는 좋은 리더인만큼, 좋은 팔로워이다.
삶의 동반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일생일대의 행운이다.
나 혼자 먹고 살기도 힘들고, 만인이 제 앞가림하느라 바쁜 세상에서,
나의 이기적인 마음을 누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1번이 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녀는 언제나 나를 제일 소중하고 중요하게 여겨줬다.
나를 위해 희생해주고, 헌신해줬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이기 때문에, 그녀를 나의 1순위로 두는 것은 나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마치 그녀를 사랑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것처럼.
복을 몰고 다니는 그녀와 지내다보면 운이 좋은 일이 자주 일어난다.
미리 알아보지도 않고, 계획에도 없이 우연히 미술관을 갔는데 공짜이기도 하고,
생각 없이 고른 책이나, 문화인인 그녀 덕에 전혀 모르던 예술을 접하고 큰 감명을 받기도 하고,
현실적으로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예상치도 못했던 승진도 한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이 더 잘 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녀는 더 큰 행운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그 누가 객관적으로 봐도 불운일 수 있는 상황을 오히려 '전화위복' 의 행운으로 만드는 힘도 있다.
나는 살면서 그녀만큼 긍정적이고, 건강하게 가벼운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녀는 '웃는 상' 이 아니라, 그냥 '웃음' 그 자체이다.
나도 이런 그녀를 조금씩 닮아가니, 예전보다는 덜 염세적이고, 조금은 더 낙천적인 사람이 됐다.
그녀처럼 작은 곳에서, 낮은 곳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우연들 속에서 진실을 발견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늦잠을 잔 것은, 그만큼 체력을 더 회복했기 때문에 좋은 것이고,
그녀와 나의 일이 바쁘고 힘든 것은, 더 행복하고 즐거운 휴식의 시간을 보내기 위한 빌드업이며,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와 보내는 시간을 늘리느라 업무시간을 줄인 것은, 일의 효율을 높여줬고,
몸이 아픈 채 공연에 늦게 도착했다 하더라도, 몸을 식혀줄 달콤한 콜라를 사마실 수 있었던 것이고,
나와 그녀가 조금 다른 부분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새로운 취미와 세상을 접하게 된 것이다.
결국은 특정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열쇠였던 것 같다.
사랑하는 그녀가 내 삶에 없었다면, 내가 늦잠을 자고, 일이 힘들고,
타인으로 인해 업무시간이 줄어들고, 몸이 아프고,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이 스트레스였을텐데.
그녀는 나의 뇌신경 회로를 새로이 짜줬다.
그래서 뇌에 그녀만 가득차 있나보다.
그래서 눈에서 가끔 그녀와의 행복이 흘러나온다.
나는 밥 먹을 때도, 차를 마실 때도, 그녀의 옆에 앉는 것을 좋아한다.
그녀의 정면에서 그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도 너무 좋지만, 그건 너무 멀다.
곁에서 어깨와 다리가 딱 붙어있어도 부족하다. 그녀는 스며들고 싶게 하는 사람이다.
눈의 초점을 맞추기 어려울 정도로 가까이에서 보는 그녀는 정말 아름답다.
요즘의 나는, 그녀가 마치 흘겨보듯(?) 옆모습을 보여주며 내 입술을 볼 때의 얼굴에 빠져있다.
볼 때마다 110% 의 확률로 홀려버린다.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 예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외면이 남다른만큼, 내면도 남다른 사람이다.
내가 그녀를 어떻게 대해주는지에 대해 서운해하기보다,
그녀 자신이 느끼기에 그녀가 나에게 조금 소홀했다 싶을 때, 내가 서운해하지 않으면,
내가 서운해하지 않았다고 서운해하는 사람이다. 나는 평생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내가 그녀에게 무엇을 주는지보다, 그녀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더 신경써주는 사람이다.
내가 그녀에게 어떤 말투를 쓰는지 보기 전에, 그녀 자신의 말투를 점검하고 사과하는 사람이다.
아아, 나는 정말 운이 좋다.
그녀가 열쇠고리만큼 작아질 수 있다면 좋겠다. 항상 내 약지에 달고 다니게.
작아질 수 없더라도, 항상 곁에 달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의 그녀는 주말을 즐겁게 보내는 모습을 안아주고 싶었고,
자기 자신보다, 나를 1순위로 두는 모습을 본받고 싶었고,
나의 웃음소리에 행복해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