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녀는 종아리가 아직 아픈데도 아침 일찍부터 운동을 한다.
너무 무리하지 않도록 걷고, 가볍게 몸을 정리한다. 아름답다.
나도 오랜만에 운동을 해본다. 그렇잖아도 원래 없던 근육이, 1주일 정도 쉬었더니 더 없어졌다.
꾸준한 습관이란 이래서 중요하다.
다행히,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의 근육은, 매일 꾸준한 습관으로 발달시키고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녀는 어머님께 선물 드린 옷의 사이즈가 조금 맞지 않아, 환불을 하러 다녀오는 길이다.
어머님이 입으셨을 때 너무나 예쁘다고 그녀가 호들갑을 떨었기에, 자업자득이라 자책한다.
어머님께 옷을 사드리는 모습도, 예쁘다고 호들갑 떠는 모습도, 직접 환불을 하러 다녀오는 모습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족들을 향한 그녀의 호의와 따뜻함이 느껴져서 참 보기 좋다.
조금 이상한 소망이긴 하지만, 나도 언젠가 그녀와 함께 그녀의 옷을 사고,
디자인과 사이즈를 꼼꼼하게 보고 신중하게 살 그녀이긴 하지만, 혹시라도 나중에 문제를 발견하면,
내가 혼자 알아서 환불을 하러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편의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는 무엇이든 해주고 싶다.
물론 그녀의 성격에야, 같이 손잡고 환불하러 가자고 하겠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이 있었다.
누가 오스카상을 받는지보다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연예인 코난 오브라이언이 호스트라 챙겨봤다.
나는 죽기 전에 한 사람을 볼 수 있다면 그녀이고,
그녀와 함께 다른 사람들을 대동할 수 있다면 그녀의 가족들과 나의 가족들이고,
그리고 그녀와 가족들을 제외하고, 우리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단 한 사람만 만날 수 있다 하면,
단연 코난 오브라이언이다.
언젠가 눈 앞에서 실물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는 젊었을 때의 나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코메디 스타일이나, 지식이나, 삶에 대한 철학이나, 말하는 방식과 매너리즘이 존경스러웠다.
지금의 나는 내 대학 시절 단 한 명의 대학교수의 이름도 기억할 수 없고, 연락이 닿는 교수도 없고,
나에게 '멘토' 라고 할만한 사람은 나를 뽑아준 지금 회사의 직속상사 뿐이고, 그 외엔 은사도 없다.
그다지 사회적이지 못한 나에겐, 사회에서 직접 만난 사람들보다도,
코난 오브라이언이 더 많은 걸 가르쳐줬다. 볼 수 있을 때마다 그의 프로그램들을 봤다.
미국엔 유명한 연예인이나 기업인이 대학 졸업식 축사를 하는 것이 보통인 것 같다.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맷 데이먼, 톰 행크스, 덴젤 워싱턴, 로저 페더러, 테일러 스위프트 등,
졸업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누가 들어도 배울 점이 많은, 성공한 사람들의 축사들이 많지만,
코난 오브라이언의 다트머스 대학교 축사는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80번은 본 것 같다.
그가 일련의 사태로 미국 최고 토크쇼 투나잇쇼를 떠나며 말한 명언은 꽤 오랫동안 나의 모토였다.
Work hard, be kind, and amazing things will happen.
이 한 마디는 자욱한 안개가 낀 듯 한 치 앞도 볼 수 없던 나에게 희망을 줬다.
이 말을 들은 순간부터 열심히 일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친절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내 모든 일들이 좀 더 잘 풀리기 시작했다.
저 명언의 앞에 덧붙인 말들도 당시 나에게 참 와닿는 말들이었다.
"All I ask is one thing, and I’m asking this particularly of young people: please don’t be cynical. I hate cynicism, for the record, it’s my least favorite quality and it doesn’t lead anywhere. Nobody in life gets exactly what they thought they were going to get."
이 말을 듣고 냉소주의를 지양하게 됐다.
그녀를 만나서야 나의 냉소 -- 그 쌀쌀한 비웃음과 썩은 미소를 좀 더 덜어낼 수 있게 됐지만.
코난 오브라이언 때문에 보게 되긴 했지만, 내가 재밌게 본 영화들도 상을 타서 좋았다.
브루탈리스트. 듄 2. 위키드. 수상한 영화인들의 얼굴에 보람이 넘친다.
내가 마음 속으로 조금 응원한 와일드 로봇은 안타깝게 무관에 그쳤다. Flow 가 워낙 강하니 인정.
요즘 너무 바빠서 못 본 작품들이 많은데, 언젠가 '리얼 페인' 은 꼭 보고 싶다.
위키드는 특히 그녀와 손을 잡고 같이 봤기에, 더 특별하게 와닿았다.
축하무대로 신시아 에리보와 아리아나 그란데가 Defying Gravity 를 부를 때 그녀 생각이 났다.
시상식을 보면서 집안일을 하며, 곧 그녀와 같이 살 집으로 이사할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콧노래가 자연스레 나오고, 새로 살 집에 필요한 물건들에 대한 디테일이 머릿속에 절로 떠오른다.
그녀와 상의할 때마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나를 걱정해준다.
내 몸과 마음에 부담이 갈까 신경써주는 마음이 참 고맙다.
하지만 정작 나는 너무 즐거워서 물어본 건데.
그녀와 함께 살아갈 준비를 하는 것은, 살면서 겪은 일 중 가장 즐거운 일 중에 하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이디어가 샘솟고, 그녀 취향이 담겼으면 하는 것 외에 모든 걸 책임지고 싶다.
그녀가 손 까딱 하지 않는 것이 나의 꿈이다.
나는 매일 꿈이 이루어지는 삶을 살고 있다.
오히려 몸과 마음에 부담이 갈 사람은 그녀이다.
그녀야말로 고생할 부분이 많다. 나를 믿어주고, 삶을 송두리째 바꾸고, 나와의 삶을 위해 노력한다.
나는 사서 걱정을 하는 스타일이라, 그녀는 '적당히 해' 라고 말하며 나를 안심시켜준다.
연애 초기엔, 오히려 그녀가 목소리가 안 좋을 때, 내가 너무 감정이 휘말려서 더 걱정시키곤 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당연히 자연스레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공감을 못해주는 것처럼 보일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그럴 때 그녀가 필요한 건 지나친 공감과 감정의 동기화보다는,
내가 누구보다 든든하고 단단하게 서있는 것이 그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로는,
나는 더 꼿꼿이 설 수 있는 힘을 키우고 있다. 조금은 더 굳센 사람이 됐다.
몸의 코어도 좋지만, 마음의 코어를 키우고 싶다. 대나무 같은 그녀를 닮아서.
말보다는 행동과 존재로 힘이 될 수 있도록.
약속을 늘어놓는 것보다는, 지켜질 것이 당연한, '비빌 언덕' 이 될 수 있도록.
요즘 회사 분위기가 좋지 않다. 언제 좋은 적이 있었냐마는.
업계 분위기는 더 좋지 않다. 언제 좋은 적이 있었냐마는.
하지만 오늘 월요전체회의 내내 그녀를 떠올리며, 그리고 그녀와 떠날 여행을 생각하니,
나는 세상 그 누구보다 즐겁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내 행복을 찾아 떠난다.
그리고 나의 가장 큰 행복은 그녀이다.
Dignity 가 넘치는 그녀와 함께 존엄하게 살고 싶다.
'존엄하게 사는 것' 은 그녀의 오랜 고민이다.
그녀에게 존엄성을 지킨다는 말의 의미는,
여러 상황에 너무나 취약한 인간으로서, 비굴하게 굽신거리거나, 나 살자고 남을 팔아넘기거나,
그런 상황에 속절없이 무너져서 그런 비참한 일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이란다.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일하고 살아온 그녀의 삶에서,
그녀는 주변에서 그런 비참한 상황들을 많이 봐왔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비굴하게 굽신거리거나, 나 살자고 남을 팔아넘기지 않고,
굳고 곧은 심지를 지켜온 그녀를 존경한다.
자신과 타인의 존엄성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고, 오랫동안 고민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치가 있고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걸 잊지 않는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다.
그래서 그녀는, 나의 존재만으로도, 나를 존중해주고, 그 누구에게보다 사랑을 담아 대우해줬다.
그 누구보다 깊이, 나란 사람의 민낯을 들춰내줬고, 나의 가치를 알아줬다.
나는 그녀의 존엄성이 지켜지는 삶을 줄 것이라 다짐해본다.
나로 인해 비참한 일이 생기지 않게 할 것이고, 다른 어떤 비참한 일이 와도 함께 이겨나가려 한다.
그녀는 내가 제일 존중하고 존경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의 그녀는 종아리가 아픈데도 아침부터 운동하는 모습을 안아주고 싶었고,
우리의 존엄성에 대해 오랫동안 깊게 생각해보는 모습을 본받고 싶었고,
나의 가치를 알아주고 존중해주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