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13, 2024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by 헤매이는 자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새벽 3시 5분에, 낮잠을 자서 잠이 안 와서 망했다고, 심심하다고 연락이 왔다.

귀여웠다.

나는 잠이 안 오거나 하면 과연 그녀에게 먼저 연락할까? 나는 그러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고마웠다.


긴 글 폭탄을 보내서 재웠다.

전화를 했어야 했나, '심심해' 라는 말은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거였는데 내가 못 알아준 걸까 신경이 쓰였다.

그래도 그녀가 잠드는 데에 내가 도움이 되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말이 긴 편이다.

서론도 길고, 사족도 많고, 접미사, 접두사, 미사여구를 중언부언하는 편이다.

10자로 끝낼 수 있는 말을, 100자로 늘리는 것을 학교에서든 회사에서든 업으로 해온 사람이다.


하지만 인간관계에서는 그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간단명료한 말에서 진심이 더 느껴지는 법이다.

실제로 그녀도,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짧게 말할 때, 더 감동을 받곤 했다.

'나는 이래서 너를 사랑하고, 저래서 너를 사랑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보다는,

'널 사랑해.' 라는 말이 더 와닿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나의 긴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읽어준다.

그리고 심지어 그것을 매력 포인트라고, 이상형이라고 말해준다.

나도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들을 100%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녀가 기억하고 있어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나만큼이나, 혹은 내 일 이상으로, 하루 종일 읽고 쓰는 일을 하면서도, 어떻게 그러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녀의 머릿속이 복잡할까봐 말을 줄이고 글을 안 쓰는 방안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다. 대화하고 싶다.

하루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고도 잘만 살아왔는데, 이제는 쉴새없이 떠드는 것이 유일한 낙이 되어버렸다.


나도 그녀의 일거수일투족과, 한 마디 한 마디에 신경을 기울인다.

취조하고 싶지는 않다. 알 필요 없는 것들은 알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녀가 잘 지내는지에 대해 최대한 많이 알고 싶고, 시시콜콜한 것부터 알아주고 챙겨주고 싶다.

지나치듯 스윽 이야기한 것을, 모두 기억해주고 싶다.


오늘은, 나와 어딘가 놀러 가서 요리해 먹고 싶다고 했다.

못하는 게 없는 사람이고, 나는 무엇이든 잘 먹는 편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녀의 요리라면 맛있겠지만

왠지 놀러 가서까지 요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바라는 그녀의 모습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다 떠먹여주는 그림이다.

옛날 표현이지만 손도 까딱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물을 묻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껏 겪어온 고생 중 빙산의 일각만 이야기해줘도,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는지 가늠이 안 된다.


나를 포함한 세상 모든 사람들은, 내 자신의 삶이 제일 힘들다.

나의 고생은 나만 알며, 남의 고생은 느끼기 어렵다.

나의 일은 제일 어려운 일이고, 남의 일은 쉬워 보인다.

그런데도 그녀의 고단함은 나에게 온 몸으로 느껴진다.

불평불만으로 가득찬 사람들의 삶을 아무리 봐도 동정하지 않았던 내가, 그녀만은 거기서 꺼내주고 싶다.


나만큼이나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이라서,

'장래희망' 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집에서 잠깐 누워있기' 라고 답한다. 그녀는 그럴 자격이 있다.

하지만 능력이 있고, 지위가 있고, 쌓아놓은 평판과 자산과 물건과 인맥과 가족이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을 버리고, 한없이 풀어져서 쉴 수 있긴 한 사람인지 모르겠다.

이런 점에 있어서는 그녀는 나와 굉장히 비슷한 사람인데, 정작 나 자신은 도저히 풀어질 자신이 없거든.

그녀가 과연 현재 본인의 일을 포기할 수 있을까. 나는 솔직히 어렵다고 본다.


그런데도 내 이상향 속의 그녀는,

돈을 버는 일보다는 돈을 쓰기만 하고,

시간을 부지런하게 낭비하고,

힘을 회복하는 데에만 힘을 쓰고,

야 하는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삶을 살면 좋겠다.


나는 그녀에게 그런 삶을 줄 수 있다.

나는 그럴 능력이 있고, 그럴 의도로 살아가고 있다.

자신 있다.


그러나 그녀가 그런 삶을 결국 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어느 장소의 어느 일터에서 그 어떤 일을 해도, 내 자신에게 떳떳할 자신이 있다.

어디에서든 인정받을 성실함이 있다. 내가 잘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을 잘 파악하고 있다.

내 앞가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껏 내가 걸어온 길이 헛되지 않았다고 느낀다.


사실 그녀와 이루어지는 게 1년이 걸리든, 2년이 걸리든, 5년이 걸리든, 난 기다릴 것이다.

그녀라는 사람은 그럴 가치가 있다.

나는 무언가를 쉽게 믿지 못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는 내 인생에서 가장 단단한 확신을 준 사람이다.

그 믿음을 저버리고 죽을 때까지 후회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 어떤 길로 가든, 종착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최근에 더 생겼다.

언제 도착할까 조급하기보다는, 방향성을 잃지 않고 꾸준하게 천천히 걸어가리라는 다짐을 했다.


내 목표를 이뤄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내 모든 면을 이상형이라고 불러주는 그녀의 칭찬 덕에,

나라는 사람은 조금 더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매일 더 사랑하고 있다.

그래서 더 무서워진다.

아프게 할까봐.

그녀도 나에게 썼다, '아프게 하기 싫어, 헤어지기 싫어.'

절대로 아프게 하지 않겠다. 헤어지지 않겠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의 그녀는 잠이 오지 않는다니 안아주고 싶었고,

잠이 오지 않을 때 내게 먼저 연락하는 모습을 본받고 싶었고,

내가 답해주자 잠들어버리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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