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장안의 화제인,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씨의 '소년이 온다' 를 다 읽었다.
그녀는 이미 예전에 다 읽었는데, 내용이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내가 악몽을 꿀까 걱정해주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외모나 언행이나 나보다 훨씬 시크해 보이는 사람인데,
내가 더 눈물이 많은 편인데,
그녀는 사실 나보다 공감력이 더 높다. 그래서 사랑하는 가족이 죽는 이야기나, 무서운 영화라든가를 힘들어하는 것 같다.
일단 나는 좋은 꿈이든 악몽이든 꿈을 꾸지 않고, 꿈을 꿔도 기억을 못하는 편이긴 해서
걱정해주는 건 고마웠지만, 그녀의 걱정 덕인지 너무 행복하게만 꿀잠을 자버렸다.
'우리 애기, 잘 잤어요?' 라는 그녀의 말에,
'아 응애에요' 라고 했더니 웃는다.
나를 '옛날 사람' 이라고 부른다. 본인은 나보다 한 살밖에 어리지 않으면서, 뼛속까지 갑오개혁스러운 사람이면서 말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나를 그렇게 부를 자격이 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멀리서 보든 가까이서 보든 많아봐야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외모이다.
본인은 절대 부정하지만, 외국에서라면 야구모자를 쓰고 캐주얼하게 옷을 입었다면, 술집에 들어갈 때 민증을 보여야 할 외양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동안' 을 지나치게 강조하며,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것만을 자기관리의 덕목으로 삼고, 실제 나이보다 성숙해보이거나 세월의 풍파가 표면에 보이는 사람들을 배척하는 한국의 지나친 외모지상주의의 사회 분위기를 정말 싫어하긴 하지만,
그녀가 매력적인 동안인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녀는 오늘도 야근을 한다. 1년 전 이때쯤의 내 모습을 보는 듯하다.
일하는 중에는 통화할 때 스윗하게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단다.
빈말이 아니라 오늘 평소보다 상대적으로 굉장히 스윗했다. 그녀가 노력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아마도 나의 스윗함에 비교해서 적은 것이 미안한가보다.
하나도 신경쓰이지 않는데. 오히려 미안해하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나와 살게 되면 글을 써보고 싶다고 했다.
너무 좋은 생각이라고 무릎을 탁 쳤다.
그녀는 글을 정말 잘 쓰고, 글에 군더더기가 없고,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 예쁘고, 무엇보다 글에서 그 마음과 그 사람 자체가 너무 잘 우러나온다.
내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그녀가 꼭 글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으면 한다.
나는 그녀에게 비밀 따위 가질 수가 없나보다.
그녀의 말로는 나는 그녀보다 3배 더 입이 근질근질한 사람이란다. 3배가 아닌 100배라고 생각했다.
패션을 지적받았다고 Outfit of the Day 사진을 보내줬다.
지적받기에는 너무 댄디했다. 그녀는 어떤 옷이든 잘 소화한다.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자기관리를 심하게 해서 몸매마저 뛰어나다.
20년 전에 그녀를 만났지만, 나이를 거꾸로 먹는지 지금 더 아름답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자기관리를 잘 하고, 외모가 아름답고 단정하고, 항상 격식을 갖춘 용모인 것도 좋지만,
다른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 모습이 더 좋다.
눈길을 받는 사람이 기분 나쁠 시선으로 누군가를 위아래로 재거나,
남의 외모를 비하하거나, 자신의 외모와 비교하거나,
외모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깔아뭉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오로지 본인의 외양에만 철저하게 엄격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이해는 안 갈망정 최대한 부드러운 말로 본인과의 다름을 인정하곤 했다.
오늘은 위와 같이 여러모로 그녀를 찬양할 일밖에 없었다.
이건 분명히 현실이고 비소설이어야 하는데, 어느새 내 삶은 비현실적인 소설이자 영화가 되었다.
내가 웃는다고 아무도 같이 웃어주지 않았고,
내가 눈물 흘린다고 아무도 같이 울어주지 않았고,
내가 변한다고 사람들이 변하지는 않았으며,
내가 눈을 감는다고 세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세상에 홀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하지만 그녀는 홀로 내 삶을 바꿔놓았다.
그녀는 내게 해준 게 없다고 항상 겸손한 말로 미안해한다.
그럴 때마다 진심으로 답했다, 그녀는 이미 내게 온 세상을 다 줬다고.
내 세상을 바꿔놓았으니까.
나 자신보다 너를 더 사랑한다고 말했다.
가진 것을 다 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내가 그럴 필요 없단다.
그녀다운 대답이다. 그리고 그녀는 실제로 내가 필요없는 사람이다. 혼자서도 아쉬운 것 없이 잘만 살 사람이다. 내가 없어도 똑같이 잘만 지낼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내 말을 지킬 예정이다. 오기라고 부르든, 승부욕이라 부르든, 상관없다.
나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그녀가 동안이든, 옷을 잘 입든, 얼굴이나 몸매가 어떻든
솔직히 이제는 별로 상관없다.
그녀와 똑같은 얼굴과 몸 속에, 조금이라도 다른 영혼이 들어있다면
지금처럼 사랑할 수 없을 게다.
그녀라는 사람이 좋다.
그 영혼이 좋고,
내가 어떤 말이든 건넸을 때의 대답이 아름답고,
모든 상황에 의연하게 대응하는 기개가 올곧다.
시간이 흘러,
그녀의 주름이 깊어지고,
허리가 굽어지고,
손이 거칠어졌을 때,
그것은 아름다움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후회 없이 살아왔음을 증명하는 나이테인 것을 알아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