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사람의 '마음' 은,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어렸을 때 '어린 왕자' 를 읽고 배운 교훈이자 내린 결론이다.
내 마음은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동성친구이든, 이성이든, 가족이든, 회사 동료이든, 서로 일면식 없는 사람이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억지로 싫어할 수 없으며,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억지로 좋아할 수 없다.
노력은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서 긍정적인 부분을 찾는 것은 중요하다.
연쇄살인범조차도 가족에게는 다정할 것이고, 나보다 뛰어난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런 노력만 지속된다면, 스스로를 속이는 삶이다.
그리고 남이 아닌 스스로를 속이는 삶은 망가질 수밖에 없다.
나는 나 자신을 24시간 바라보고 있다.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 나 자신은 무너지게 된다.
남의 마음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누군가 나를 아껴주고, 보고 싶어해주고, 사랑해준다는 것은 기적이다.
세상 그 어떤 부귀영화를 주든, 총을 겨누고 협박하든, 심지어 진심으로 사랑을 주고 또 부어주든,
강제로 나를 좋아하게 할 순 없다.
진심으로, 아니 겉으로라도, 나의 사랑에 사랑으로 답해주는 사람은
절대로 놓치거나 잃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는 행운아다.
그녀를 우연히 만나고, 우연히 사랑하고, 우연히 사랑받았는데,
필연으로 느껴지는 사람과 그리 되었다.
그리고 억지로 참고, 억지로 이해하려 하고, 억지로 사랑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하루 종일 생각나고 사랑하는 마음이 솟아난다. 오히려 좀 억눌러야 할 정도이다.
영원하지는 않겠지- 라는 생각보다 영원히 이러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먼저 든다.
그녀는 '사실 그녀는 내 사랑이 필요없다' 는 표현을 싫어하는 것 같다.
'바쁜데 나 신경쓰지 말아요' 라는 배려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내 머릿속에서는 너무나 사실이고, 나름 로맨틱한 표현들이라 생각했는데, 들을 때마다 달가워하지 않는다.
달가워하지 않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그녀가 내게 '나는 너의 사랑이 필요하고, 너에게 신경을 쓸 거야' 하고 말을 내뱉지 않아도
그녀의 말과 행동과 분위기에서 나를 향한 따뜻함이 느껴진다.
회의에 다시 달려들어가느라, 메세지를 급하고 짧게 보냈다.
'회의 6시간이래도.'
그녀는 '까먹어서 미안' 하다고 했다. 나는 아차했다.
그래서 '몇십 번이고 다시 말해줄게' 라고 답했다. 그렇게 보내놓고 또 아차했다.
'6시간이래도~' 라는 애교말투였는데,
'왜 기억 못 해' 라고 들렸을까 걱정됐고,
'몇십 번이고 다시 말해줄게 내 사랑' 이라는, 까먹어도 괜찮고 신경쓰지 말라는 말투였는데,
'몇십 번이고 계속 알려줘야 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매도하는 투로 들렸을까 걱정됐다.
나는 메신저 단체방을 혐오한다. 내가 있는 단체방은 부모님과 가족들과 함께 있는 방이 유일하다.
제일 친한 친구라고 하는 친구들과 1-2년에 한 번 메세지를 주고 받는다.
부모님과 가족들과 그녀 이외에는 대화하지 않는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에게 1대1로 용건이 있어서 말을 걸어오는 것이 아닌 다수를 향한 쓸데없는 대화에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같은 말을 해도 메신저에서 이야기하면 더 차갑게 느껴지고, 내가 오해하는 말투를 쓰는 것 같아서다.
사실 현실에서도 같은 문제가 있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너 되게 차갑게 생겼다' '왜 이리 표정이 차가워' '너는 벽이 있는 것 같아' 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가족관계이든 우정관계이든 이성관계이든 같은 문제가 있었다.
어렸을 때 -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즈음이다 - 는 사람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이 제일 즐거웠던 것 같은데,
어느샌가 나는, 바라보고 들어줄 뿐, 내 말은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 말이 오해받는 게 싫었고, 내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고,
지적수준이 비슷한 것을 떠나서, 나와 결이 비슷하고 서로 진심으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타인에게서 안정감을 찾는 것이 지겨웠다.
그런데 그녀는 내가 따뜻하고 다정하고 명랑하다고 말해준다.
실제로 그렇게 되긴 한다.
내가 그런 사람인지는 상관없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대하고 싶지도 않다. 그녀에게만 특별하게 대하고 싶다.
그녀에게만은 세상에서 제일 따뜻하고, 가장 다정하고, 한없이 명랑하게 대해서, 사랑받음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하지만 정작 오늘 잠깐 바쁠 때는, 다정한 말투가 아니었다. 그래서 메신저로 말하는 게 싫다. 메신저로는 나의 '톤' 을 전달할 수 없어서이다.
현실에서, 귓가에 말했다면 다정한 톤으로 '6시간이래도~' '몇십 번이고 다시 말해줄게 내 사랑' 이라고 느껴지게 할 수 있었을텐데. 꼬옥 안아주면서 말이다.
그래서 그녀와 통화하는 것이 즐겁다. 스마트폰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누가 전화를 걸어오면 '문자나 이메일을 하지, 짜증나게 왜 전화를 해?' 라고 느껴지고, 10분 이상 누구와 통화해본 적 없었는데.
그녀와는 세 시간을 넘게 통화해봤다.
그녀는 잠들기 전에 '바빠서, 일하느라 연애 못 하는 나 같은 사람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라고 말한다.
더 미안해졌다.
바쁜 와중에도 나를 신경써주고
본인의 지정 업무가 아닌 일까지 도맡아서 행하며,
아무리 피곤해도 화장 브러쉬를 세척하고 잠드는 사람이다.
지금 모습 그대로도 완벽한데.
왜 나도 그녀도 쓸데없이 자책하고 있을까.
'사랑하니까' 라는 인과관계를 무시한 답보다는,
바쁘게 일하는 동안에도 연애를 잘 하는 커플이 되면 잘 해결되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그녀를 '바쁘게 일할 때도 연애 잘 했던 여자' 로 만들어주겠다.
어떤 우여곡절이 있든 결국 잘 맺으면 연애를 잘 한 것이다.
난 살면서 단 한 번도 연애를 잘 해본 적이 없다.
그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의 '잘한 연애' 였으면 좋겠다.
영화가 1시간짜리이든 4시간짜리이든 해피 엔딩이면 되는 것이다.
똑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리라.
왠지 모르게 오늘은 우주의 크기가 떠올랐다. 사실 자주 떠올리는 주제이다.
이 도시는 너무나 크고, 이 나라는 더 크고, 이 지구는 더 크고, 이 태양계는 더 크고, 이 은하수는 더 크고, 이 우주는 더 크며, 신의 섭리란 더 큰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란 과거와 미래로 끝없이 펼쳐져 있으며, 상대성이론에 따라 시간이란 다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고,
지금까지 세상을 살았던 사람의 수를 세면 지금 살아있는 사람보다 많으며, 앞으로 세상에 태어날 사람의 수를 세면 그보다도 많다.
나라는 존재와 감정과 삶은, 내가 손가락으로 눌러죽이는 하루살이의 그것보다도 하찮은 것이다.
예전에는 그 사실을 떠올렸을 때, 비관적이거나 부정적인 결론이 나를 감쌌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하나',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라든가, '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 라는 식.
하지만 요즘은 자연과 우주의 거대함을 떠올릴 때 드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아무리 내 몸과 마음이 노곤하다한들, 앞으로 그녀 덕에 더욱 행복해지고 신이 날 날들에 비하면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고,
거의 무한한 시공간에서 나는 그녀를 알아보고, 개미 목숨 같은 삶을 함께 보내기로 결정했으며,
그녀 덕분에 나는 너무나 유한하고 작은 것들에서, 우주를 다 가진 듯한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눈은 신적인 존재를 볼 수는 없으나,
우연히 빅뱅이 일어나고, 우연히 지구가 생기고, 우연히 생명체가 생기고, 우연히 진화하여서, 우연히 나라는 사람이 태어나, 우연히 그녀를 만나서, 우연히 그녀와 같은 훌륭한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면,
신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이럴 순 없다- 고 되뇌이게 되는 것이다.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중에 그녀는 나를 택했다.
그 점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갚아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