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12, 2025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by 헤매이는 자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녀와 오랜만에 여행을 떠나는 날에 선물을 주고 싶었다.

나는 잠시라도 떨어져 있다가 만날 때마다 꽃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녀는 아름다운 꽃이 어울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생화를 준비해 오기 어려울 때는, 반영구적으로 얼린 꽃이나, 레고로 만든 꽃을 주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꽃처럼 생긴, 꽃이 아닌 물건이 세상에 별로 남지 않았다.

조화는 쓸모없이 자리만 차지할 것 같아서, 사고 싶지 않았고,

곧 만날 날을 대비해 이번에는 꽃 모양의 브로치/핀을 준비해 봤다.


나는 그녀에게 서프라이즈- 를 잘 못한다.

입이 근질근질한지 언제나 먼저 이야기해주곤 했다.

그녀에 대해서 브런치에 몰래 쓰기 시작하자마자 며칠도 지나지 않아 주소를 알려줬고,

그녀를 위한 작은 선물들을 준비할 때마다 미리미리 보고하곤 했다.


그녀가 진정 놀랐던 경우는 두 번 정도인 것 같다.

그녀가 깜짝 놀라도록 내가 살이 빠져 있거나, 처음으로 생화를 들고 그녀를 맞은 날.

꽃을 들고 있던 내 모습에 너무 기뻐하고 반가워하는 그녀의 밝은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때 내 자신과 약속했다.

내 평생 동안, 이틀 이상 못 본 후 그녀를 맞을 때마다 꽃을 들고 있겠다고.


그녀는 내가 세심하게 골라준 게 고맙다며, 내가 돈을 들이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며 걱정해주면서,

나의 선물은 평생 잘 하고 다니겠다고 약속해준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녀는 어제도 긴 하루를 보냈는데, 천근만근일 몸을 이끌고 오늘 아침도 운동으로 하루를 연다.

천국의 계단을 천 계단 이상 오른다. 이쯤 되면 지옥의 계단이다.

그녀의 가녀리지만 탄탄한 다리가 보고 싶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다리.


오늘은 그녀의 회사에서 귀여운 토끼 인형을 나눠줬다. 가방을 꾸미는 아이템으로 제격.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화 The Velveteen Rabbit 의 토끼와 닮았다.


'주렁주렁 달고 다녀야 MZ 세대라' 고 하며, 이미 달린 크레용 신짱 인형에 추가해 본다.

그녀는 얼굴과 몸매가 이미 MZ 세대인데, 오히려 MZ 세대를 따라가려는 모습이 MZ 같지 않다...

외모만 MZ 이지, 언제나 한국사를 논하고, 이 해에는 조선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보며,

나보다 언제나 높은 정신연령을 보이는 걸 보면, MZ 세대를 논하는 것 자체가 너무 귀엽다.


그녀가 아끼는 후배가 오늘 작은 실수를 했나보다.

그녀와 친한 사람이고, 내가 직접 뵌 적은 없지만,

그녀에게 전해 들은 말만으로도 유능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인데,

오늘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고 한다.


그 모습을 위로해주던 그녀도 울컥했다고 한다.

그녀는 쉽게 울컥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아직도 그녀가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걸 본 적 없다.

가 그녀 앞에서 몇 번을 울컥해도, 내 눈 앞에선 의연한 테토녀(?) 그 자체인 사람인데,

그녀는 나를 포함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힘들어하거나, 어려운 일을 겪으면,

나보다도 크게 -- 하지만 따뜻한 -- 호들갑을 떨어주는 사람이다.


후배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니, 그녀가 과거에 힘들었던 나날들이 떠올랐나 보다.

그녀가 남몰래 눈물 짓던 날, 겉으로 의연해도 속으로 울던 날, 몸과 마음이 아프도록 지쳐버린 날.

그런 날들이 지금의 그녀를 만들어왔지만, 다시 돌아가서 겪으라면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날.

그게 떠올라서 그녀도 마음이 아렸을 것 같다. 그리고 나도 마음이 아린다.


얼마 전 그녀가 그녀가 몇년 전 일했던 지역을 구경시켜준 적이 있다.

그녀가 출근하고 퇴근하던 길을, 이제 나와 함께 손잡고 걸었다.

그녀가 좋아하던, 서울에서 둘째로 잘하는 집에서 단팥죽을 함께 먹었다.

단팥죽을 먹다가 눈물이 목청까지 치고 올라왔다. 그녀가 묵묵히 걸어온 길이 느껴져서.


그녀가 그렇게도 열심히 일했던 시절은 나의 눈물버튼이다.

그녀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 그녀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파워 E 인 사람이고, 그녀는 은근 파워 I 인 사람인데도, 그녀는 나보다 친구가 열배 많다.

믿음직한 그녀이기에, 명철하고 유능한 사람들이 그녀 주변에서 그녀를 도와줬고,

그녀는 꾸준히 성장해 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쉬운 길은 아니었다.


나도 홀로 걸어봤다.

안개가 자욱한 길을, 혼자 걸어가는데, 그 아무도 곁에 있어주긴커녕 격려조차 없었다.

인생은 어차피 혼자 사는 거라며 내 자신을 북돋아왔다. 다들 하는 고생이라며 자신을 위로했다.

하지만 안개 속에서 그녀라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더니 나를 안아줬다.

본인도 외롭게 혼자 걸어왔으면서.


눈물 흘리는 아끼는 후배를 보며, 자신의 눈물인 듯 안타까워하는 그녀의 모습.

나도 작게 다짐해본다.

앞으로 그녀는 더욱 성장할 사람이고, 더 큰 일을 할 사람이고, 자신의 꿈을 이룰 사람이기 때문에,

아직 갈 길이 멀고, 가끔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아서, 또 크고 작은 눈물을 흘릴 날들이 오겠지만,

나는 그녀를 울게 하는 존재가 되지 않겠다고.


그리고 그녀가 울 때마다 곁에서 말없이 안아주겠다고.

등을 도닥여주고, 그 누구보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겠다고.

함께 웃고, 기쁨의 눈물을 주고, 함께 일어나겠다고.

내게 제발 그럴 수 있는 힘이 있길.


그녀의 따뜻한 위로에 그녀의 후배는 넘어져 있지 않고 일어난다.

다함께 식사도 맛있게 하고, 언제 울었냐는듯 깔깔대는 웃음으로 하루를 씩씩하게 마무리한다.


그녀는 일으켜주는 사람이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의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모습을 안아주고 싶었고,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모습을 본받고 싶었고,

이제는 나와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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