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녀는 오늘도 길고 바쁜 하루를 보낸다.
우연이겠지만 피로가 쌓였는지, 그녀는 다른 사무실에 키카드로 진입을 시도하다가 당황한다.
그녀처럼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사람이, 이렇게 인간미까지 갖췄다.
언제나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답고 본받을만 하지만,
그녀의 긴 한숨이 안쓰럽다.
그럴수록, 내가 그녀가 기댈 수 있는 든든한 휴식처가 될 수 있도록,
나의 일에도 박차를 가해본다.
그녀는 오늘 외근도 하고, 틈틈이 독서도 한다.
저녁에는 회사에서 공연도 거창하게 하길래,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에게 끌려가기도 한다.
겨우겨우 친구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다행히 안전하게 퇴근.
얼마나 힘든 하루였는지, 집에 사놓지도 않은 라면이 먹고 싶어졌단다.
하지만 날씨도 덥고, 마트에 가야하는 귀찮음 때문에 라면 먹기를 내일로 미뤄본다.
그녀는 내일도 라면을 먹지 않는다에 베팅해 본다.
자기 관리를 잘 하는 사람들은 다 이유가 있다.
오늘도 여느때처럼 프리프리웨딩 사진 촬영 때 뭘 입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드레스를 세 벌 입을 수 있는 데에 비해, 사복은 한 벌밖에 할 수 없어서 더 신중해진다.
그녀는 어떻게 입어도 예쁜 사람이지만, 그녀에게 어울리는 옷은 내가 제일 잘 안다.
나는 패션에는 문외한이지만, 내가 보기에 예쁜 그녀의 모습에 대해서는 전문가다.
사복을 어떤 브랜드와 어떤 스타일로 찾아볼지도 고민해보고,
우리 커플시계로 장만한 그녀의 시계에 다른 색깔 스트랩도 알아보고,
누가 보기에도 예쁘면서 그녀의 마음에도 쏙 들 물건들을 떠올려본다.
와이프를 너무 트로피 취급하는 것 아니냐고 하면 할 말 없다.
누군가의 트로피가 되기엔 너무 유능하고, 똘똘하고, 꿈이 큰 사람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것 중에 제일 반짝이는 존재라,
오늘도 나는 그녀라는 인형으로 인형 놀이를 한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거나,
평소 나의 식성을 따라오지 못하는 그녀가 나보다도 빨리 먹어치우는 음식을 보거나,
너무 예쁘다며 사진을 연신 찍어대고 탄성을 지르며 먹는 디저트를 찾거나,
그녀의 미간이 찌푸려지며 '자기가 내 미간 시술해줘야 해' 할 정도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내 자신이 행복할 때보다 더 행복해지곤 했다.
나의 행복보다,
그녀의 행복을 먼저 구하는 사람이 됐다.
그래서 내가 가진 걸 다 주고 싶다.
그녀가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1부터 100까지 세심하게 챙겨주고 싶다.
그녀의 눈치를 지나치게 보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오늘은 점심식사 후 디저트가 먹고 싶어졌다.
점심식사를 부리또 집에서 픽업해서 들어오는 길에, 구내식당에서 딸기케익 한 조각을 사왔다.
그녀와 먹을 때만큼의 맛은 없다.
하지만 그녀가 더 생각나게 하는 맛이다.
나는 혼자 디저트를 사먹어본 적이 없다.
혼자 커피숍에서 공부를 하거나 할 일이 있으면 커피만 마셨다.
빵집에서 빵을 사먹거나, 선물로 케익 한 통을 사본 적은 있지만,
밥을 먹고 후식으로 디저트를 먹거나 하는 일은 없다.
특히 남자들끼리 모이거나 하면, 딸기케익을 먹자고 하는 사람은 없다. 남성성을 부정당한다.
그녀와 수많은 식사를 했다.
한식. 일식. 중식. 이탈리아식. 프랑스식. 미국식. 태국식. 베트남식. 분식. 야식. 간식.
하지만 건강, 식단, 칼로리, 운동, 자기 관리에 혈안이 된 그녀가 제일 약한(?) 음식은,
그녀의 눈빛만으로 봤을 때는 언제나 디저트였다.
작은 케익 한 쪽도 다 먹지 못하는 그녀인데도,
그래서 나는 디저트를 두 개씩 시키곤 했다.
Dessert 라는 단어에 S 가 두 개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두 판씩 시키곤 했다.
그리고 디저트 한 종류를 사이좋게 나눠먹는 사랑스러운 커플들에게 알량한 우월감을 느꼈다.
딸기케익을 두세 입에 다 먹고, 덩그러니 빈 플라스틱 용기를 보니,
갑자기 내가 음식을 정말 전투적으로 빠르게 먹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어렸을 때부터 아빠와 남동생의 먹는 속도를 따라가느라, 씹지도 않고 삼키곤 했다.
어머니는 음식을 차려놓고는, 이빨이 안 좋으시다며, 고기를 싫어하신다며, 한 입도 못 드시곤 했다.
빠르게 많이 먹는 게 자랑인 줄 아는 혈기왕성한 대학 친구들과, 네 명이서 치킨윙 200개를 먹었다.
그녀는 건강하게 꼭꼭 씹어먹고, 음식 맛을 음미할 줄 아는 교양 있는 사람인데,
나와 수많은 식사를 하면서, 나에게 맛있는 것을 먼저 밀어다주고,
내 속도를 조금이라도 맞춰주려고 노력하고, 전쟁이 난 듯 말이 줄어든 나를 이해해주고,
디저트를 먹는 순간에도 그렇게도 크고 작은 배려를 해줬겠구나- 하고 갑자기 생각났다.
얼마나 자주 나를 참아주고, 용서해줬을까- 하고 울컥했다.
그녀는 언제나 알게 모르게 나를 물심양면으로 챙겨줬다.
자신은 썼던 수건을 쓰더라도, 내가 샤워를 할 때는 뽀송뽀송한 새 수건을 건네주곤 했다.
집 구석구석을 예쁘게 해주고, 나와 있을 공간을 청소하고 치우고, 나만 먹을 음식을 만들어줬다.
일이 너무 힘들고, 심신이 너무 지쳤는데도, 내가 통화하길 원할 때마다 언제나 목소리를 들려줬다.
새벽 늦은 시간까지, 졸면서도 나의 장황한 이야기를 듣다가, 잠이 들어버릴 때까지 들어줬다.
나에겐 말 한 마디 한 마디, 단어의 선택, 생각의 정리, 글의 한 줄 한 줄을 고심해서 뱉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 없이는 딸기케익도 맛있게 먹을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앞으로 딸기케익은 평생 그녀와만 먹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녀를 만나기 전의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 걸까.
이젠 그녀 없인 살 수가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렸다.
세상에서 제일 달콤한 맛에 중독돼 버렸다.
그녀는 디저트보다 달콤한 사람이다.
그녀 자신보다, 나를 더 챙겨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 자신보다, 그녀를 더 챙겨주려 한다. 절반이라도 되갚아주려 한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의 그녀는 라면을 먹고 싶은데도 참는 모습을 안아주고 싶었고,
나를 참아주고, 챙겨주는 모습을 본받고 싶었고,
딸기케익처럼 달콤한 목소리가 아름다웠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