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오늘은 월요일이다. 창밖으로 아침 해가 뜬다.
우리가 같이 살고 있을 때 그녀는 창가에 앉아 떠오르는 해를 보곤 했다.
어제 저녁에 저물어가는 해를 보면서, 그녀를 생각했다.
사람들이 해가 지는 것을 보는 이유는, 노을이 그만큼 아름답기 때문이다.
해가 뜨는 것도, 지는 것도, 그녀를 생각하게 한다.
밤이 된다.
이미 저문 해가 남긴 빛을 반사하는 달.
달조차도 그녀를 생각나게 한다.
그녀는 나에게 태양처럼 빛나는 사람이다.
해는 진 적이 없다.
단지 다른 곳을 비출 뿐.
해는 어느 방향에 있어도 아름답다.
이렇게 아름다워야할 그녀의 하루인데, 그녀는 오늘 즐거운 일보다는 힘든 일이 많았다.
일터에서도 점점 일이 바빠지고, 데드라인들이 다가오고, 그녀를 진빠지게 하는 요인이 많다.
나와 곧 여행을 떠나야하기 때문에 마음이 바빠지고, 여기저기 불을 끄고 다녀야 한다.
게다가 주말엔 내가 별 것도 아닌 일로 멘탈이 나가서, 그녀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의 주변에서 황망한 일까지 일어났다.
이 공개된 플랫폼에 자세히 적을 수는 없지만, 그녀가 얼마나 힘들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힘든 몸과 마음에, 충격적인 일까지 들고 홀로 퇴근해야 하는 그녀.
'큰 욕심 부리지 말고, 우리 소소하게, 행복하게 살자' 라고 말을 건네는 그녀.
눈물이 났다.
살아가면서 그녀가 이렇게 힘든 날들이 올텐데,
그런 날을 대비해서 나는 그녀를 언제나 더 따뜻하게 안아주고 있었어야 하는데,
왜 나는 주말 내내 그녀와 내 자신을 들들 볶고 있었는지.
멘탈이 나가서 브런치 포스팅을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을 쉬었다.
그녀와 같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이틀 연속으로 쓰지 못한 건 처음인 것 같다.
제3자가 보기엔 정말 아무 일도 없었는데, 뭐 이리 힘들 일인지, 참 내 자신이 비루했다.
그녀는 훌훌 털고 일어난 일인데, 아무 일도 아닌 일을 왜 이리 키우는지.
그녀가 뭔가 잘못한 일이 있는 건 아니다.
차라리 그랬다면 일이 더 단순하고 쉬웠을 것 같은데,
어떤 사건이 있어서 마음이 힘들었던 건 아니고,
정작 그녀가 미안해하거나 했던 사건들은 그 사건들의 타이밍에는 정말 신경쓰인 적 없다.
그 타이밍에는 나도 전혀 별 생각 없이 잘 넘어가고 잘 지내고 있었는데, 진짜 고민은 따로 있었다.
그녀가 사과해야하는 상황이 자꾸 생겨 그녀가 내 눈치를 보거나, 나를 통제하는 사람으로 보거나,
나 때문에 그녀의 몸과 마음이 불편할까봐,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게 무서웠다.
언제나 그랬듯 그녀는 어안이 벙벙하게,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사과하고 위로해줬다.
주말 내 그녀의 배려로 푹 쉬면서, 내가 왜 이리 생각이 많은지 스스로를 들여다봤다.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전적으로 내 자신의 문제였기 때문에, 자의식을 과잉공급해 봤다.
나와 내 자아의 관계에서 나 자신과의 싸움으로 인해, 나와 그녀의 관계가 악영향을 받고 있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앞에 나서기를 좋아했다.
우리 때의 초등, 아니 국민학교나 중학교 때에야 그냥 전교 1등인 학생이 학생회장이었기 때문에,
나는 반장이나 학생회장을 언제나 하는 편이었고, 앞에서 선서를 할 일이 많았다.
대학에서도 언제나 학생회장을 했고, 그 어느 협회에서든 언제나 임원이었고,
교회에서는 전도사 일도 하고 언제나 찬양팀의 리더이거나 성가대의 반주자 혹은 지휘자였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은근히 즐겼던 것 같다.
무대에 서는 일도 해봤다. 조악하지만 음반을 만들고, 홍대와 대학로 클럽에 공연을 하러 다녔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축제에서 공연을 하기도 하고, 다른 교회들에서 음악을 리드하기도 했다.
퍼블릭 스피킹을 하면 평소보다 목소리가 흔들리긴커녕 더 뚜렷한 톤과 말투가 나왔고,
지인들이 결혼식 사회를 많이들 맡겼고, 회사 일에서도 발표 및 리딩을 제일 자신 있어 하곤 했다.
그리고 실패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시험에 떨어져본 적이 없고, 목표로 한 일은 언제든 이뤘다.
친구들은 '너는 언제나 자신감이 넘친다' 고 얘기해줬다.
사실 그렇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스스로 보기에 부족한 역량으로도 그렇게 앞에 설 수 있었던 데에는, 사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번째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는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고,
두번째는 나 자신에게만 떳떳할 정도로 노력하면, 내 최선을 다하면, 나는 할 일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앞에 서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정말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예의를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돌아설 땐 칼 같곤 했다.
다른 사람의 눈에 잘 들기 위해서 아부해 본 적도 없고, 인맥을 이용하려 해본 적도 없다.
아직도 제일 친한 친구들도, 나처럼 차가운 사람은 처음 봤다고 말한다. 마음의 벽이 높다.
나는 거절하는 데에 거침이 없었다. 한 번 마음이 떠나거나, 내 눈 밖에 나면, 다시는 보지 않았다.
다행히 지금 내가 하는 일터와 업계의 성격이, 친목을 다진다든가, 협업이 중요한 일이 아니라서,
나는 인맥이 점점 좁아져만 갔다.
나도 대학원을 처음 졸업했을 때는, 스프레드시트에 만날 사람들 리스트를 만들어서 관리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감사하게도 네트워킹이 필요없는 위치에서의 삶을 살고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어차피 혼자 사는 세상이며, 나는 남의 도움이 필요없다는 신념으로 살았다.
그래서 친구들, 동료들, 상사들, 가족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신경쓰지 않았다.
나는 나이고, 내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나는 이미 내 삶에서 내가 원하는 모든 걸 이루었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들은 나의 인연이니 끝까지 책임지고 챙겨줄 것이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은 나의 인연이 아니니 갈 길을 가도록 뒀다.
그렇게 살다가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나의 소유물이 아니지만, 살면서 이렇게 무엇인가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은 처음이었다.
너무 소중해서, 잃어버릴까봐, 꽉 쥐는데 미끄덩하며 튕겨나갈까봐, 안절부절했다.
그녀의 눈에 잘 보였으면 좋겠고, 그녀가 나를 좋은 사람으로 봤으면 좋겠고,
그녀가 내 민낯을 보기보다는, 내 좋은 모습만 보고, 나에 대해 칭찬할 것이 많길 바랐다.
부작용은 확실했다.
나는 쓸데없는 노력으로 그녀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 통제하려 했고,
최선을 다해서 그녀를 믿고 사랑해주기 전에, 그녀가 나를 불편해하는 것 같다는 의문을 가졌다.
그녀는 나보다 여러 면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처음 사귈 때부터, 나는 그녀와 결혼하기로 작정했고,
내가 머릿속으로 그린 그녀의 미래의 모습은,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눕고 싶은만큼 눕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고, 살고 싶은 삶을 사는, 자유로움 그 자체인 삶이었다.
그녀가 그린 꿈들을 내가 모두 이뤄줄 순 없지만,
그 모든 꿈들을 좇을 수 있는 자유로운 삶을 주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녀가 내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들이 많이 생겼고,
나 때문에 몸과 마음이 불편하고, 운신의 폭에 제약이 생기는 부분들이 있었다.
나는 내가 나쁜 사람이 될까봐 전전긍긍했고,
그녀는 나의 그런 모습까지 나란 사람 그대로 안아주고 품어주기에 바빴다.
사실 곁에 딱 붙어있을 때는, 다른 문제는 있을지언정, 이런 부분은 없었다.
오히려 내가 그녀와 시간을 100% 보내지 못해 그녀가 토라질 일이 생기면 생겼지,
나 때문에 그녀가 불편할 일은 별로 없었다.
물론 그녀가 내가 가까이 있기 때문에 더 조신한 행보로 조심한 덕분이긴 하다.
어찌 보면, 지금 이런 나의 고민도, 결혼해서 함께 살면 자연스레 없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고, '함께 있으면 없을 문제' 이니 이 문제를 회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생각했다.
내 개인적인 신념이지만,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떨어져있을 때도 온전히 설 수 있을 때,
함께 있을 때도 더 든든하게 의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떨어져 있을 때, 나에게 무한한 믿음과 신뢰를 더욱 보이곤 했다.
하지만 나는 똑같이 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열등감과 조급함이 못생긴 머리를 다시 들이밀었다.
2025년 나의 새해 목표는, 열등감, 조급함, 책임감을 덜어내는 것이었다.
1년 중 8개월 정도는 나름 잘해 왔다. 그건 몇달 간 같이 살았던 덕이 컸다.
그녀가 내 곁에서 멀리 떨어지자마자, 책임감만 덜어낸 채로, 열등감과 조급함이 돌아온 꼴이다.
나는 세상 그 누구보다 그녀를 믿는다. 하지만 내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있다.
왜 이리 내 자신을 못 믿는지, 스스로를 들여다봤다.
'그녀가 나의 눈치를 보고, 나를 불편해한다' 면, '그녀를 잃을 것만 같다' 고 느꼈던 것이었다.
근데 그것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법으로,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말아줘' 라 호소하고 있었다.
'나의 눈치를 보지 말아줘', '나를 불편해하지 말아줘', '나를 떠나지 말아줘' 라고만 부탁하고 있었다.
더 나은 자세의 답이라면 '내가 그녀를 더 이해하고, 배워가고, 더 사랑해야겠다', 혹은
'그녀는 나보다도 나를 더 사랑해주기 때문에, 나의 눈치를 보거나 불편한 게 아니란 걸 깨닫자',
'그녀가 나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나에 대해 수백번 칭찬의 말만 하는데,
나를 치졸하고 나쁜 사람으로 본다면 그러겠어? 그녀는 어차피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있어'
'그녀는 내가 강요하지 않아도 이미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고, 자기 뜻대로 잘만 하고 있어'
이런 건설적인 반응을 갖기 전에, 그녀가 나를 불편해할 것만 상상했다.
주말 내내 머리를 굴려서,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는 내가 평생 본 사람 중 자존감이 제일 높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 어떤 대가나 목적 없이도 다른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고,
자기주도적으로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긍정적이고,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잘 알고 있고,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하고,
내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침착하고 사려 깊게 천천히 답해주곤 했다.
나는 매일 브런치에 그녀를 본받고 싶다고 쓸 시간에,
그녀의 자존감을 닮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와 같은 사람이 나에게 해준 사랑의 말들을 곱씹으면서,
자의식 과잉이나 자만심까지 가지 않되,
내가 정말 그녀에게 사랑받을만한 사람이란 걸 깨달아야한다.
그녀를 본받고 싶다는 나의 말들이,
지켜지지 않는 헛소리가 되지 않도록.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녀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는 통제할 수 없고,
그녀에게 떳떳할 정도로 노력하면, 내 최선을 다하면, 그녀는 그 이상으로 나를 사랑해줄 것이다.
내 자신의 마음도 통제를 못하는 사람이,
그녀의 마음을 통제하려고 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내 자신에게 물어본다.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냐고.
나는 정말 살면서 그 누구도 이렇게 사랑해본 적이 없다.
그녀가 원하고 필요로 한다면 무엇이든 해낼 자신이 있고,
그녀에게 내 건강을 줄 수 있다면 줄 것이고, 내 가진 모든 돈이 필요하다면 다 건네줄 것이고,
내 남은 모든 시간과, 내 관심과 애정을 그녀의 그릇에만 가득 채우고 싶을 정도로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그만큼 실제로 그녀를 사랑해주고 있다.
그러니 나는 그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녀는 지구 반대편에 있더라도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다.
그녀는 보이는 곳에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다.
그 무엇보다 나를 위해주고, 아껴주고, 걱정해주는 사람이다.
나를 평생 사랑해주겠다고 약속한 그녀의 말은 철썩같이 믿었다면서도,
내 자신을 믿지 못하고, 바보처럼 그녀의 다짐을 밀어냈다.
결국 오늘처럼 그녀가 하루종일 일터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황망한 일까지 받아들었을 때,
나는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일로 그녀에게 도움이 하나도 되지 않는 존재가 되어있었다.
밖에선 전쟁이 나고 있는데, 집에 장난감이 없다고 떼쓰는 아이가 되어있었다.
우리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가.
그걸 잊지 말아야 한다.
내게 제일 중요한 것은 그녀다.
눈물이 나면서 쓰느라 위에 뭐라고 썼는지도 잘 모르겠다.
힘든 일들을 겪고 있는 그녀는 의연한데, 왜 나 혼자 이러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만 울고, 이제 정말 그녀를 본받아야할 시간이다.
이제 정말 그녀에게 집중하고, 그녀를 위로해줄 시간이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의 그녀는 힘든 하루를 보내고 홀로 퇴근하는 모습을 안아주고 싶었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