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이제 해가 짧아졌다. 아침 6시에도 어둡다.
하지만 그녀와 나의 아침은 빛나디 빛난다. 그녀의 후광으로.
그녀의 일터에서, 처음으로 월급을 받은 신입 사원이,
그녀를 포함한 동료들에게 환영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정성 어린 글과 선물을 돌렸다.
참 보기 좋다. 게다가 심지어 나와 같은 동성동본이라, 조선시대 사람인 나로선 더 반갑다.
그리고 그렇게 유쾌한 일터에서, 신임을 받으며, 충실하게 할 일을 해내는 그녀가 보기 좋다.
그녀가 어떤 선물인지 사진으로 찍어보내준다.
연하게 색을 바른 그녀의 작고 예쁜 손톱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나는 그녀의 손을 좋아한다. 이번 여행 중에도 손을 놓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그녀의 손은 내 것이다.
오늘도 우리의 집에서, 그녀가 가져와줬으면 하는 그녀의 옷을 좀 더 챙겼다.
패션에 젬병인 나는, 분명히 같이 산 옷인데도 그냥 봐서는 구별을 못 한다.
그녀가 입은 걸 봤는데도, 언제나 처음 보는 것처럼 마음에 들고, 볼 때마다 마음에 든다.
같은 옷을 볼 때마다 새로운 기쁨을 느끼는 내 눈썰미가 '경제적' 이라서 좋다며, 그녀가 빵 터진다.
그녀의 옷장을 들여다보며 더 절실히 느낀다.
분명 이렇게 뒤적여보면, 내 눈엔 다 똑같이 생긴 옷이고, 브랜드도 잘 구분이 가지 않고,
디테일도 잘 모르겠고, 색깔이 다른지도 모르겠고, 옷 자체가 아름답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그녀가 입었을 때는, 왜 이리 그 어떤 옷이든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옷이 되는 건지.
결론은 역시 그녀의 미모가 모든 옷을 예쁘게 만들어준다는, 너무 당연한 사실이었다.
나는 평생 그녀에게 옷을 입혀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녀의 모습이, 내 인생에서 제일 잘 빚은 예술품이 될 것이다.
아끼고 아껴서, 잘 해주고 잘 해줘서, 사랑하고 사랑해줘서,
그녀가 선홍빛으로 반짝거리도록.
오늘은 정말 습하고 더운 날이다. 아직 여름은 찬란하다.
그녀와 여행을 떠날 때는 가을이 완연했으면 좋겠다.
그녀와 9월을 함께 하는 것은 평생 처음이다.
너무 기대가 된다.
어서 날씨가 선선해져서, 그녀가 가을 옷을 입은 모습을 보고 싶다.
그녀는 봄에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가을 같은 이미지의 여자였다.
어렸을 때 처음 만났을 땐, 여름에 만나서인지, 정말 여름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화려한 이목구비에, 인상이 강렬하고, 눈에 총기가 가득차 있고, 발랄하고 활동적이었고,
누가 봐도 독립적인 사람이었고, 무던하고, 털털하고, 시원시원한 말투에, 발칙하기까지 했고,
무슨 공부를 하는지도 몰랐지만 큰 꿈을 품은 듯 보였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이미지가 있었다.
솔직히 내면이 어떤 사람인지도 몰랐는데, 그냥 외모만 보고 덜컥 좋아져버렸다.
천성은 변하지 않는다지만,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굉장히 긴 가방끈과, 수많은 업무경험과,
수천 수만 명을 만난 사회경험으로, 더욱 다채로우면서도 더 정갈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책을 읽는 것이 제일 어울리는 사람이 됐고, 말과 행동에서 교양과 배려가 넘치고,
정중하고, 신중하고, 진중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아니,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데 내가 처음에 외모만 좋아해서 몰랐던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더 아름다워져 있었다.
그녀의 외모만 눈에 들어오던 시절보다, 더 예뻐져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구석구석마다 철저한 자기관리가 느껴지는 사람.
스스로를 가학적으로 몰아붙이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까지 한 사람.
하지만 남에게는 한없이 자애로운 사람.
나처럼 내 자신에게는 자애롭고 여유로우면서, 남을 재단하며 매도하는 사람과 반대였다.
외면도, 내면도, 그녀의 절반만 따라갈 수 있으면 좋겠다.
프리웨딩 촬영이 너무 기대가 되면서도 너무 걱정이 된다. 내가 그녀에게 어울릴 수 있을까.
나를 선택해준 그녀의 시선을 믿어보기로 한다.
그리고 내 곁에 이렇게 빛나는 사람이 있다는 자랑스러움과 기쁨으로 임해보기로 한다.
약간 서늘해진 날씨에, 그녀가 마음까지 따뜻한 스웨터를 입고 출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끝이 보이지 않는 다리가 드러나는 반바지를 입은 그녀와 황금색 시원한 샴페인을 마시고 싶다.
그녀도 나만큼 설레는지, 내가 가고 싶던 아트페어 표까지도 미리 그녀의 돈으로 예약해준다.
그녀가 돈을 많이 쓴 게 너무 미안하면서도, 정말 고맙고 설렌다.
세계 유수의 그 어떤 아트페어에서 가장 비싸다는 작품들을 봐도,
그녀만큼 빛나는 존재는 없었다.
그녀는 상품화할 수 없다. 수치화할 수 없다.
그녀는 대체 불가능하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의 그녀는 더운 날씨에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안아주고 싶었고,
좋은 일터에서 좋은 동료들에게 신임을 얻고 일하는 모습을 본받고 싶었고,
세상에서 제일 가치 있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