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26, 2025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by 헤매이는 자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녀와 데이트를 하며 수많은 커피숍을 갔다.

분위기마저 잔잔한 숍에서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혹은 수많은 사람들의 시끄러운 대화 속에서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찾으며,

그녀의 곁에 딱 붙어앉아 그녀의 다리에 한 손을 올린 채 커피를 마시는 것이,

내겐 가장 행복한 일이다.


그녀와 그런 숍에 갈 때마다, '시그니처 픽' 혹은 제일 칼로리가 높은 것으로 시키곤 했다.

그녀와 떨어져 있는 동안은 다이어트 목적으로 커피를 아예 끊었다.

그녀는 나와 달리, 언제나 최대한 건강하게, 기본 라떼만 마시는 사람이다.

한 잔을 끝까지 다 마시지도 않는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라떼까지도 끊으려고 하고 있는데, 프로틴 음료와 건강 두유만 먹으려 하는데,

동료들은 알아서 그녀의 책상에 라떼를 올려준다.

괴로워하면서도, 배려가 담긴 라떼를 마시는 그녀의 입술이 아름답다.


오늘 그녀는 웨딩 촬영에서 어떤 머리스타일을 할지 검색을 해본다.

모델이 그녀보다 예쁘지 않아서 (모자이크가 되어있긴 하다) 잘 매칭이 안 되긴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인 것 같아서, 아주 마음에 든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무슨 머리를 한들 안 예쁠 수가 없다.

머리를 올리든 내리든, 길게 하든 짧게 하든, 무슨 색으로 하든, 그녀는 아름다울 것이다.

그녀는 내가 그녀에게 예쁜 옷,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시계, 그녀가 좋아할만한 스타일 등,

그녀의 취향을 잘 찾아준다며 칭찬하지만, 실제로는 그냥 그녀가 뭘 해도 예쁠 뿐이다.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모습을 어서 보고 싶다.

신랑 분장을 받은 게 지워질 정도로 눈물이 날까 벌써 걱정되긴 하지마는.


그녀가 비싼 값을 주고 티켓을 선구매해준 아트페어를 보고 난 뒤,

저녁을 먹을만한 곳들도 함께 살펴본다.

그녀가 준 두 가지 선택지 모두 맛있어보인다. 나도 그녀도 정말 좋아할만한 음식들.

그녀의 곁에 딱 붙어앉아 함께 먹을 생각을 하니, 너무 기대된다.


저녁엔 독서 모임 관련 창업을 하려는 동생들을 만나, 대화도 나누고 좋은 시간을 보낸다.

그녀는 20년간 독서 모임을 가져온 사람이라, 분명히 그들이 배울만한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평생 그녀처럼 책을 많이 읽고, 책을 진지하게 읽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물론 책을 많이 읽는다고 무조건 똑똑한 것은 아니며, 나쁜 책은 오히려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고,

책도 결국은 사람이 쓴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 완벽한 책은 없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중심이 잡힌 상태에서, 여러 장르, 여러 나라, 여러 작가, 여러 주제로,

정말 다양한 스펙트럼의 책을 읽었다는 점이 멋있다.


'여백의 미' 를 추구하고, 그 누구보다 책상이 깨끗하고,

쓸데없는 물건을 모으기보다는, 정말 필요한 것을 알차게 채우는 것을 추구하는 그녀인데도,

그녀가 자료를 프린트하는 것을 좋아하고, 이런 지면 저런 지면에 손글씨를 쓰는 것을 좋아하고,

공부도, 계획도, 연애도, 업무도, 독서도, 빳빳한 종이로 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이기에,

그녀와 살다보니 내 주변에도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책이 쌓였다.


내 주변을 돌아본다.

그녀가 좋아하는 책, 그녀가 쓴 글씨, 그녀의 손길이 묻은 것들이 가득하다.

요즘은 작년에 그녀의 추천으로 읽었던, 조선희 님의 "세 여자" 를 다시 읽고 있다.

그녀가 매일 머물던, 우리 집 테이블 위에는, 헬로키티의 50주년 기념 특별판 타임지 책이 있다.

내 회사 책상엔 그녀가 써준 편지를 가져다놨다. 머리가 지끈거릴 때마다 읽곤 한다.


하지만 그녀가 제일 깊게 남긴 글씨는,

종이가 아니라, 내 마음 속에 있다.


카카오톡 속 사랑한다는 한 줄 한 줄의 노란 말풍선.

나를 만나기도 전에 산 물건이지만, 내게 쓰려고 꺼내서 꾹꾹 진심을 눌러담은 카드.

잠들 때마다 따뜻하게 내 귓가에 속삭여주는 숨결.

그녀로 인해 조금은 변해버린 내 삶의 모습.


이 모든 것이 그녀의 흔적이고,

그녀의 글씨체가 드러나는 기록이다.

그래서 더 책임감을 느낀다. 그녀가 쓴 '나' 라는 책이, 더 훌륭한 책이 됐으면 좋겠다.

혹자가 나 홀로 서있는 모습을 봐도, '와이프가 대단한 사람인가보다' 싶게 말이다.


그리고 그녀가 나를 바라볼 때마다, 세상에서 제일 자랑스러운 사람이도록 말이다.

그녀가 내게 그런 사람인 것처럼.


수없이 많은 책을 읽어온 그녀에게,

가장 읽고 싶은 책이 되고 싶다.

읽고 또 읽어도 지루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녀처럼.


그녀는 내가 평생 읽은 책 중 가장 흥미로운 책이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의 그녀는 긴 하루를 보내고 피곤한데도 목소리를 들려주는 모습을 안아주고 싶었고,

라떼를 끊어도 동료들이 가져다주고, 독서모임 노하우를 친구들이 구하는 모습을 본받고 싶었고,

그 어떤 문학보다 비옥한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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