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30, 2025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by 헤매이는 자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오늘은 그녀도 나도 제일 바쁜 날 중에 하나다.

9월의 말일, 3분기를 마무리한다.

지난 3달을 돌아본다. 그녀 덕분에 잘 마쳤다.

지금 내 삶에 행복하고 좋은 것들은 모두 그녀 덕분이다.


회사에서 승진 선물로 차를 바꿔줬다.

2025년형 마세라티 그레칼레 모데나. 차체는 흰색, 인테리어는 이탈리아 빨강 (Rosso).

소비자가격은 1억 4500만원인 모델이다. 이렇게 비싼 차는 평생 처음 몰아본다.

자동차의 '자' 자도 잘 모르는 나인데, 이런 레이싱 SUV 를 몰아도 되는 건지.

하지만 다른 옵션이었던 포르쉐나 레인지로버, 제네시스에 비해서 훨씬 맘에 들어서 골랐다.


그녀는 자신의 일인 것처럼 기뻐해준다. 실감이 안 나고 무덤덤한 나를 한껏 치켜세워준다.

나는 내가 연봉이 얼마인지, 무슨 명품을 샀는지, 무슨 물건이 생겼는지 자랑할 사람이 없다.

멀리 살고 있으니 우리 부모님도 모르시고, 친구들도 안 만나고, 별로 이야기하기도 귀찮다.


그러나 그녀는 나의 배우자이기도 하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기도 하고,

내 차가 그녀의 차이기도 하고, 그녀가 혼자 운전할 일도 있을 거고, 그녀에게 더 어울리고,

그녀가 물심양면으로 나를 뒷바라지해준 덕에 내가 회사에서 승진해서 받은 것이기도 하고,

그녀만이 내 곁에 탈 유일한 여자이기 때문에, 곧바로 이야기해줬다.


그녀만이 내가 인정받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자랑하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든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잘 보이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에, 행복하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사는 삶은 불행한 삶이다.

우리는 타인에게 진정한 인정을 받을 수 없다. 알고 보면 그들은 나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다.

하지만 내가 자연스레 단 한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고, 그 사람의 취향과 기분을 살피고,

그 사람이 나를 잘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 자꾸 솟아난다면, 잘 보이고 싶어진다면,

그건 분명 그 사람을 좋아해서일게다.


차가 바뀌어도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녀가 조수석에 타는 날에야 와닿을 것 같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그녀의 것이다.


그녀는 내가 평생 본 사람 중에, 제일 검소하고 알뜰하며 비울 줄 아는 사람이다.

예쁜 물건과 좋은 옷을 알지만, 쓸데없이 더 채우기보다, 좋은 것을 아껴서 오래 쓰는 사람이다.

그리고 내가 그녀의 돈이나 다름없는 내 돈 십원 한 장을 그녀에게 쓸때마다 감사해하고,

나와 맛있게 먹었던 레스토랑의 영수증을 종종 모으고, 내가 준 선물을 최대한 자주 쓰고,

그러면서도 상대적으로 소박한 음식을 먹어도 나와 함께라면 더 맛있게 먹어주는 그런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성적 매력을 느끼는 포인트와 취향이 다르다.

그녀가 어릴 때 좋아했던 '오빠' 나, 괜찮았던 소개팅남이나, 전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녀는 자기 본업을 잘 하고, 능력 있고, 어디서든 돋보이는, 존중하고 존경할 수 있는,

'학생회장', '과대표', 혹은 어디서든 리더십을 보이는, 그런 본받을만한 남자에게 매력을 느껴왔다.


나는 어쩌다 보니 반장, 학생회장, 교회 찬양팀 리더, 협회 고문, 회사 임원 등을 계속해 왔다.

사람이랑 시간을 보내는 걸 싫어하면서도, 사람들이 모인 곳에선 관심종자의 기운이 오르는 것 같다.

하지만 행복해지는 데에 있어 가장 큰 방해물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 이며,

진정한 행복이란 '현실' 에서 '기대' 를 빼는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인간관계를 점차 정리해가면서, 혼자 살며 일만 집중할 수 있는 삶의 패턴과 루틴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다들 즐거운 모습만 올리게 되는 SNS 를 시간과 정력낭비라고 생각해서 모두 탈퇴했다.

SNS 를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특정 목표와 목적이 있다면 정말 좋은 도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친구라는 사람들이 대부분 멋지고 예쁘고 명품과 휴양지로 가득한 삶을 올리지만,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해보면 속이 썩어 문드러지고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걸 봤을 때, SNS 를 끊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내가 술을 한 잔도 마시지 않는 사람이라는 게, 그런 정리에 도움이 됐다.


그렇게 인간관계도 좁아지고,

딱히 능력이 출중하게 뛰어나다거나, '성' 이나 '섬' 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돈이 많은 것도 아닌데,

세상의 기준으로 집안도 별볼일 없고, 팝업 스토어에서 일하는 잘생긴 남자들처럼 생긴 것도 아닌데,

그녀는 언제나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주지시켜줬다.


그녀의 실제 외모는, 송혜교 씨, 이시영 씨, 김지민 씨, 문가영 씨보다 예쁘면서,

내가 그런 칭찬을 하면 질색을 하며 손사래를 치다가,

나는 차은우 씨, 이동욱 씨, 변우석 씨 같은 비현실적인 남자들보다 더 멋있다고 해줬다.

누가 봐도 사실이 아닌데도, 그녀의 눈에는 나름 진심이 서려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녀는 나를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도 한결같이 사랑해줬지만, 살이 찌든 빠지든 사랑해줬지만,

내가 승진을 하거나, 일을 멋지게 해낼 때나, 책임감 있고 꼼꼼하게 문제를 해결할 때,

나를 '남편' 이라고 불러주곤 했다.

그녀가 절대 자주 쓰는 단어가 아닌데, 몇달에 한번쯤은 그렇게 우리의 관계를 규정지어주곤 했다.


그녀 자신에게는 한없이 평가의 벽이 높고, 엄격하디 엄격한 사람이,

나를 평생의 배필로서 믿고, 존중하고, 존경해준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정말 기분이 좋다.


거울 속 내 자신은 초라하기 짝이 없을 때가 많은데,

그녀가 그려주는 내 모습이 나를 더 당당하게 만든다.


그녀는 내가 그녀의 자존감의 이유라고 항상 말해준다.

나는 더더욱 그렇다. 모두가 나에게 손가락질하고 욕하고 업신여겨도, 그녀는 나를 최고라 여긴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나의 약점만 공격하는 세상에서,

나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는 나의 장점만 기억해주고 칭찬해주는 사람이다.


그녀의 붉은 입술에는 나에 대한 칭찬이 여기저기 묻어있고,

나를 보며 반짝이는 눈에는 한없는 애정이 서려있고,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할 때도, 그녀 자신보다도 나를 더 사랑해줬다.


그래서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미래에 더 성장하고 싶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벌고, 직위가 올라가고,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춰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되든 상관 없으니, 그녀에게만은 세상에서 제일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그녀를 본받아.


몸과 마음이 쓰러질 때까지 일한 그녀는, 졸린 눈을 비비면서도 나의 목소리를 듣는다.

나의 목소리가 너무 좋다며, '꿀보다 달콤한 내 사랑' 이라고 나를 불러주며 잠든다.


그녀야말로 내게 세상 그 무엇보다 달콤한 사람이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의 그녀는 하루종일 집중해서 일하는 모습을 안아주고 싶었고,

나를 그 누구보다 칭찬하고 장점을 찾아주는 모습을 본받고 싶었고,

그런 나보다 훨씬 훌륭하고 본받을만한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이전 05화September 29,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