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11, 2026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by 헤매이는 자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2026년 처음으로 출근하지 않은 날이다.

오랜만에 그녀 없이 혼자 쉬는 주말이기도 하다. 뭔가 좀 어색하다.

그녀와 쉬거나, 아니면 일하거나, 둘 중에 하나여야 하는데.

그녀가 더 보고 싶어진다.


그래도 2주 후면 그녀와 함께 살게 된다.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필요한 게 있나 살펴본다.

일단 Wilson 에서 테니스화를 샀다. 그녀와 함께 테니스를 배워보기로 했다.

그녀에게는 이미 테니스복을 입혀보고 구매한 터이다. 그녀는 '테니스룩'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아름답고 탄탄하게 다져진 그녀의 몸매에 정말 잘 어울리는 탑과 치마를 보려, 테니스를 치련다.


'귀족 스포츠' 로 시작한 테니스의 역사에서, 테니스 여성복은 시대의 담론이 담겨있다.

역사가 오랜 스포츠이기 때문에, 초기 테니스를 치는 여성이란 '스포츠' 라기보다 '보는 대상'이었다.

1800년대 테니스에선 여성스러움을 강요하며 걷기도 어려운 코르셋과 긴 치마를 입게 강제했다.

그러다 기능성을 더 중시하며, 탑은 민소매가 되고 치마는 속옷이 보이도록 짧아지기 시작했고,

성적 대상화가 우려될 정도로 변한 패션은 스포츠 본연의 가치보다 외형적인 부분이 강조됐다.


안나 쿠르니코바나 마리아 샤라포바가 '얼마나 잘 치는지' 보다는 '얼마나 예쁜지' 가 뉴스가 됐고,

남자보다 근육질인 세리나 윌리엄스는 혈전을 방지해야하는 건강상 이유로 전신 타이즈를 입었다가,

전신을 가리는 옷을 입는 것은 '장소와 경기에 대한 존중이 아니다' 는 이상한 이유로 금지당했다.

유지니 부샤드에게 뉴스 미디어가 '옷이 예쁘니 한 바퀴 돌아봐 달라 (Give us a twirl)' 라 말했던,

통칭 트월게이트 (Twirlgate) 는, 남자 테니스 선수의 반바지는 받지 않을 성차별적 이중잣대였다.


정작 이런 배경을 떠나서, 나는 그녀의 테니스룩을 보고는 너무 반해버릴 수밖에 없었다.

테니스룩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녀의 수려한 스타일을 탓해본다.

나는 운동에 워낙 소질이 없고, 평생 꾸준하게 해본 운동이 하나도 없어서, 걱정이 되긴 하고,

그녀와 둘이서만 치면 발리(volley) 를 몇번이나 할 수 있을지,

똥개훈련(?) 만 할지, 앞으로 갈 길이 요원해보이긴 한다.


하지만 누구보다 예쁜 그녀와 함께 배우고 연습하는 것만으로도, 그녀와 보내는 시간은 의미가 있다.

또한, 그녀처럼 싱그러운 사람과 새로운 액티비티를 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그녀와의 새로운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너무 기대된다.


삶이란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네 삶이란 비참하고, 어둡고, 결핍되어 있고, 오르락 내리락하고, 너무나 쉽게 끊어지기도 한다.

먹고 사는 것만도, 무탈하게 지내는 것만도, 자유로운 것만도, 생계를 이어나가는 것도, 힘이 든다.

다른 사람이 없으면 살 수 없고, 다른 사람 때문에 살기 싫고, 끝이 보이지 않지만 끝이 무섭다.


그래서 삶은 더 아름답다.

해변가의 모래 알갱이보다 많은, 각각의 영혼들의 삶은 모두 다른 이유로 아름답다.


최근에 그녀와 손을 잡고, 류현경 감독의 독립 장편 영화 '고백하지마' 를 봤다.

그녀와 친한 분이 류현경 감독님과 친분이 있어, 초청표로 관람할 수 있었다.

68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이긴 하지만, 지루한 타이밍이 많지 않은 영화.

명랑하고 넉살 좋은 영화였다. 개인적으로 6.5/10점.

단순한 멜로 영화라기보다는, 다양한 군상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유명 여배우였지만 독립 영화계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실망을 맛봐야 하는 여배우.

내가 좋아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를 좋아하는 고민을 들어줘야 하는 성소수자 남자.

살도 좀 찌고 평범하고 조용한 일상을 살아가지만, 집도 장만하며 삶의 내실을 다졌는데,

하지만 친구에겐 왜 이렇게 살고 있냐고 음식과 외모에 대해 핀잔을 받아야하는 남자.

배우로서의 커리어가 풀리지 않아 고향에 내려가 아르바이트하다 하루만에 잘리는 사람.


흥미롭게도 모든 배우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진 대사 없이 모두 즉흥으로 연기했다고 한다.

나란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야기들로, 배우들 자기 자신의 삶을 반영한 것이다.

사람들은 '아무튼' 제각기의 모습으로 열심히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렇고. 그녀도 그렇고.


그녀는 생일 주말의 일환으로 오늘 마지막으로 친구들에게 축하를 받는다.

친구들과 밥도 먹고, 달항아리 케익 위 촛불도 불어보고, 강추위를 견디며 카페를 찾아본다.

'내 생일마다 왜 이리 추운 거야' 라는 불평이 절로 나오는 날씨인데도, 가는 카페마다 만석.


일곱번째로 들러서야 우연히 찾은 특이한 카페에는, 천수관음보살상이 놓여있다.

내가 시계를 너무 많이 사줬다며 천수보살을 언급하던 그녀에게 어울리는 세팅일지도.

천수보살 뒤엔 그녀가 나에게 알려준 소설 Call Me By Your Name 의 영화 OST 의 LP판이 놓였다.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가 가히 돋보이는, 아름다운 영상미의 영화. 다시 보고 싶어진다.


나도 그녀는 지금 내 곁에 없지만, 카페에 앉아 그녀를 생각하며 커피를 마신다.

이런저런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웃는 사람. 무표정인 사람. 가족들과 함께인 사람. 홀로인 사람.

모두 아름답다. 삶이란 정말 아름답다.

모두들 다른 이유로 아름답다.


내 삶은 왜 아름다울까. 그녀가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 있는 삶이기 때문에.




오늘의 그녀는 추운 날씨에 좋지 않은 컨디션에도 약속에 다녀오는 모습을 안아주고 싶었고,

내 건강을 먼저 걱정해주는 모습을 본받고 싶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받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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