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오랜만에 그녀가 조금 일찍 퇴근했다.
마음이 정말 좋았다.
그녀가 야근하지 않았다고 나에게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내 기분이 좋아지는 걸까.
나도 이번주 오늘까지만 야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그랬지만, 요즘은 그녀에게 배울 것이 많다.
그녀의 일터에서의 해프닝들, 그녀의 인생철학, 그녀의 생각하는 방식 등을 듣고 있노라면,
그녀는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는 걸 느낀다.
20년 전 처음 만났을 때부터 후광이 있던 사람이지만,
여러가지 경험을 하면서 더욱 멋지게 성숙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다.
그녀의 일터가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남자들이 과반수를 넘어 대부분인 환경이다 보니, 별 일이 많다.
그녀가 바쁜 중에도 짬짬이 공부를 하고 있는 걸 보고,
'여자가 너무 똑똑하면 남자들이 안 데려가' 라는 성차별과 희롱이 섞인 말을 들어야하질 않나.
용모단정하고 미모가 뛰어난데, 체구는 작은 편이고 실제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여성이,
예의상 옅은 웃음을 지어도 입동굴이 보이다보니 쓸데없이 무시를 당하거나 물리적인 선을 넘어온다든가.
치기 어린 남자들, 취기 서린 자리들, 허세 섞인 승자들, 정신병 걸린 패자들, 질투하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자신을 지켜왔을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태도와 자세가 곧기에 그나마 덜 당했으리라 본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전형적인 인간의 모습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기보다,
나는 그녀가 너무 똑똑하고, 똘똘하고, 지혜로워서 데려가겠다.
동안에, 웃는 상에, 사람 좋아 보이는 미인이므로, 더 함부로 대하지 않고 조심하겠다.
덜떨어진 인간들과 반대로 말하고 행동하겠다.
그렇게 눈살 찌푸리게 하는 사람이 널린 곳에서도, 그녀는 먹이 묻지 않고 대나무처럼 서 있다.
선을 명확하게 그려놓고, 나만을 들여다놓고, 다른 사람들은 철저하게 막는다.
예의 없는 더 높은 사람들에게는 거칠게 말하고,
그녀에게 고개를 숙이는 사람들에게는 배려하고 더 낮게 고개 숙인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사람 보는 눈이 없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글쎄, 이상한 사람을 의식하고 신경쓰고 비판하고 걸러내는 능력은 좀 부족할 수 있으나,
그런 긍정적인 그녀의 기운에 좋은 사람들의 인복이 몰리는 것이다.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서, 그녀가 사람 보는 눈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이야기하려다 참았다.
결과로 보여주겠다.
그녀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다. 15분을 이야기한 줄 알고 시계를 내려다보면 이미 1시간이 지나있다.
솔직히 그녀를 사랑해서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는 그냥 말을 너무나 재미있게 잘 한다.
나에게는 자신을 너무 평가하지 말라면서, 그녀는 항상 자아성찰을 한다.
나에게는 반성하지 말라면서, 그녀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사과한다.
나에게는 노력하지 말라면서, 그녀는 나쁜 버릇을 만들지 않겠단다.
나에게는 진지하지 말라면서, 그녀는 생각이 깊고 진중하다.
나에게는 한없이 자애로우면서, 자신의 고삐를 단디 하는 사람.
정말 사랑스럽다.
시간이 지나면 보통은 마음이 좀 식게 마련인데,
물론 정열과 열정보다는, 정과 의리가 더 좋은 부분도 있겠지만,
점점 더 뜨거워진다.
알면 알수록 매력이 새로운 사람이고,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더 재미있는 사람이고,
사귀면 사귈수록 더 흥미로운 사람이다.
나의 이상형이 어떻고, 나는 이런 사람이 좋고, 저런 사람은 싫고,
나의 그런 취향을 이미 뛰어넘었다. 그녀는 내 이상형이 아니다. 내 이상이다.
그녀를 더 닮고 싶다. 평생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사람이지만,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겠다.
그녀와 통화하며,
조급해보이는 말이었지만,
그녀는 기다릴 가치가 있는 사람이지만, 기다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해줬다.
말을 참 잘 한다며 밝게 웃는다.
좋았다.
진심이다. 그녀는 언제까지고 기다릴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기다리고 싶지 않다.
어서 안고 싶다.
스스럼없이 사랑하고 싶다.
그녀가 어디선가 들은 말로는, 연인 사이는 가치관이 비슷하면서 취향이 다른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우리 이야기 같았다.
가치관이 똑 닮은 그녀를 통해,
나는 다른 관심사, 다른 일터와 업계, 다른 취미, 다른 물건이나 분야 등을 배웠다.
그녀의 세계가 나에게 달려들어왔고, 나의 세계는 더 확장했다.
그녀가 나와 다른 부분들을 배우고,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함께 경험하고,
새로운 장소를 다리가 아플 때까지 걸어서, 더 넓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마음을 흥분시키고 나서는,
함께 우리의 집으로 돌아와 쉬고 싶다.
전쟁을 치르고 오든, 잔치를 치르고 오든,
피곤한 몸과 마음으로
'집이다!' 라고 소리지르며 집에 들어올 때
거기에 오직 너만 있으면 좋겠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