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19, 2024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오늘의 그녀는 오랜만에 치마도 입고, 반지도 끼고,
기분이 좋아보인다.
그녀는 각선미가 정말 예쁘다. 바지도 너무 잘 어울리지만, 치마가 더 예쁘다.
평생 보고 싶다.
오늘은 비가 많이 온다.
가을이 끝나간다.
바쁘게 일하다보니, 우리는 단풍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하지만 길가에 떨어져있는 낙엽 한 장만 봐도 그녀가 생각난다.
그녀는 내게 사계절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다.
봄의 따뜻한 꽃이 어울리는 사람이고,
여름의 뜨겁고 푸른 날에 만났던 사람이고,
가을에 읽는 책이 어울리는 사람이며,
겨울에 안기면 더욱 포근한 사람이다.
함께 손잡고 다음 계절로 뛰어들고 싶다.
그녀는 주말에도 계속 일하겠지만, 다행히 오늘은 야근을 안 하기로 했다.
안쓰럽지만 너무 마음이 좋았다.
그런데 몸의 컨디션도 좋지 않고, 너무 피곤했는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잠들어버렸다.
그녀는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재워줘' 라고 했다.
나도 일하다가 달려나와서 새벽 3시까지 통화했다. 너무 행복했다.
재워주긴커녕 그녀의 잘 시간을 뺏는다.
그녀의 목소리를 한 번 들으면 쉽게 멈출 수가 없다.
오늘도 한 치의 어김없이, 그녀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
그녀가 오늘 신문에서 본 이야기를 해준다. 아니 글쎄, 파인애플이 벼목이란다.
'과일' 이라 불리지만, 오히려 곡식인 벼와 가깝다고 한다.
사실 벼도 열대 식물이다.
이런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쓸데없는 정보일 수 있으나,
함께 깜짝 놀라고, 웃음 짓고, 한 가지 더 머릿속에 박히고, 그렇게 우리의 추억은 쌓여간다.
이젠 파인애플을 볼 때마다,
벼를 볼 때마다,
그녀가 떠오를 것이다.
인간처럼 이런저런 사물에 광범위하게 의미를 먹이는 동물은 없다.
그녀가 내 몸과 마음에 가득차 있는지, 이젠 무엇이든 그녀를 상기시킨다.
디저트 가게에 진열된 치즈케익을 보면 그보다 달콤한 그녀가 생각나서 함께 먹고 싶다.
노랗게 낡은 헌 책을 보면 헌책방을 다니던 그녀가 떠오르고 같이 책을 읽고 싶다.
좋은 여행지를 보여주는 할인 프로모션 광고를 보면 그녀와 떠나고 싶고,
그 어느 장소에서 어떤 운동을 하든, 자기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그녀가 떠오른다.
좋은 차, 좋은 시계, 좋은 가방, 좋은 옷, 비싼 것들
그런 물건들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주고 싶고 함께 나누고 싶고
반짝거리는 장소와 즐거운 놀거리들을 보면 그녀가 떠오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건데,
신기한 것은 전혀 연결고리가 없을 것 같은 것도 그녀로 귀결되니 미칠 노릇이다.
심지어 부정적인 것들도 좋은 추억으로 바뀐다.
그녀를 만나기 전에는 맛집이라고 줄서서 먹는 사람들을 보면 한심해 보였는데,
그녀와 줄을 서서 젤라또를 함께 맛본 이후로는 어디든 줄을 서고 싶어졌다.
그녀를 만나기 전에는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보면 자리를 피했는데,
그녀가 와인을 마시는 모습을 본 이후로는 세상 모든 와인을 맛보고 싶어졌다.
그녀의 말대로 좀 더 안전하게 운전하는 내 모습에 그녀의 걱정이 묻어있다.
그녀의 말대로 좀 더 일찍 잠드는 내 모습에 그녀의 배려가 묻어있다.
그녀의 말대로 좀 더 건강해진 내 모습에 우리의 미래가 묻어있다.
그녀는 오늘도 내게 해준 것이 없다고 미안해한다.
진심으로 답해줬다. 그녀는 내게 모든 걸 줬다고.
평생 갚아야한다.
정신없이 일하다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에 그녀가 떠있다.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바탕화면에 그녀가 떠있다.
브런치 웹사이트를 열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새하얀 바탕에, 그녀가 이미 떠있다.
글이 길어질수록, 그녀만 점점 선명해진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의 그녀는 옷도 못 갈아입고 잠들어버린 모습을 안아주고 싶었고,
깨어나서 나에게 재워달라고 손을 내미는 모습을 본받고 싶었고,
밤새도록 내게 목소리를 들려주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