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더 가까이 곁에서 간호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우리의 삶은 올라갈 때가 있고, 내려갈 때가 있다.
그 어떤 높이든 함께 타고 싶다. 높은 파도는 즐겁게 즐기고, 낮은 바닥은 서로 지탱해주고 싶다.
당을 충전하라는 나의 첨언에,
그녀는 어젯밤부터 먹고 싶었다며 초코렛빵을 먹는 인증샷을 보내준다.
그녀만큼 달콤해보이지는 않는다.
나는 즐겁고 흥분되는 일 따위 없어도 좋으니,
아무도 건드리지 않고 안 좋은 일만 없기를 바라왔다고 그녀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걸 기억했는지,
그녀는 '사람이 극단적으로 지치면, 행복하기보다 불행하지 않기를 바란대' 라고 말을 전해준다.
'자기는 줄곧 극단적으로 지친 상태였나봐' 라고 나를 위해준다.
그리고 이미 며칠전 그녀는 나에게 그에 답할 말을 줬다.
나는 사실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었다고.
그리고 그때 그녀가 찾아와줬다.
오늘은 통화하다가, 같이 살기 시작할 때의 세부사항을 이야기했다.
함께 하는 미래를 그려나갈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서로의 그림의 결이 비슷하고, 상대방의 붓질을 배려해준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가져올 옷이 많아서 미안하단다.
배려심이 넘쳐서 쓸데없는 데에 미안하다는 말을 서로에게 남발하는 우리이지만,
내가 지금껏 들은 사과 중에 제일 어처구니가 없었다.
'가진 것 다 버리고 와' 라는 나의 수사적 표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나보다.
무엇을 입어도 아름다운 그녀가 옷을 많이 가져온다는데 내가 왜 사과를 받아야 할까.
하나도 버리지 말고 다 가져오라고 부탁했다. 매일 다른 옷을 보고 싶다.
꽃병을 가져와도 되는지 조심스레 묻는다. 한 번 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쯤 되면 병이다. 꽃병인가.
그녀라는 아름다운 꽃이 들어갈 사이즈인지 물어보려다 너무 썰렁해서 참았다.
그녀에게 꽃병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김에, 그녀에게 평생 꽃을 사주려 한다.
그녀는 미적 감각이 뛰어나다. 꽃병이든, 그릇이든, 이불이든, 허투루 된 물건이 하나도 없을텐데,
제발 다 가져왔으면 좋겠다.
그녀의 물건이라면 모두 아름답다.
성질 상 아름다울 물건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녀의 물건' 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아름다울 것이다.
그녀 같이 신중한 사람이, 사기 싫은 물건을 억지로 스트레스 풀자고 돈을 써서 샀을 리 없고,
항상 심미적 가치를 담은 시선으로 의미를 두고 소중한 것들을 적절하게 모아왔을텐데,
하나도 버리지 않기를 기도해본다.
우리의 집에,
나를 비우고 그녀를 가득 채우고 싶다.
내 몸과 마음에도.
20년 전 룸메이트와 같이 살아본 이후로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본 적이 없는 그녀는,
우리의 살림을 차릴 생각에 나만큼이나 기뻐하긴 하지만,
과연 그녀가 누군가와 함께 잘 살 수 있을까 걱정을 조금 한다.
근거 없는 자신감일 수 있지만,
지나친 겸손일 수 있지만,
그녀는 나 자신보다도 훨씬 나와 잘만 살 사람이다.
나는 내 자신이 진절머리 날 때가 있다.
왜 이렇게 사는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왜 이렇게 이기적인지, 왜 이렇게 내 생각만 하는지
나라는 존재를 24시간을 바라보다 보면 인류에 대한 신뢰가 깨져간다.
본능이란 비루한 것이고,
성악설은 과학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최악의 모습을 이미 보았고,
가끔은 나 자신보다도 내 생각을 더 잘 알고,
심지어 본인이 힘들 때에도 나의 안위를 살핀다.
그러면서도 아직 나를 사랑한다. 그 사랑이 따뜻하고 절절하게 느껴진다.
그녀는 미안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해 먼저 미안하다고 한다.
그녀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해 먼저 배려해준다.
그녀는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알고,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을 알아볼 줄 안다.
2명이 모여있든, 10명이 모여있든, 100명이 모여있든, 단체생활과 눈치게임에는 도가 텄으며,
공동체의 이익을 맹목적이지 않은 선에서 추구할 줄 안다.
나는 그녀가 필요하다.
그녀가 나를 필요로 하는 것 이상으로, 그녀와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사랑으로 모두 극복할 수 있다' 라는 비현실적이고 비논리적인 말이 아니라,
낭만이 식고 열정이 흐려질 즈음에도,
나와 영혼을 짜맞춘 듯한 사람이기 때문에 서로 대화로 풀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의심이 많고, 불신이 많고, 직업마저도 비판적 사고를 먼저 해야하는 직업이다.
그런 나의 인생에서 그녀만큼 믿을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믿는다.
나처럼 너무나 부족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해준 그녀의 안목을 믿는다.
세상 그 누구도 그녀를 나보다 사랑해줄 사람은 없다는 나의 약속을 믿는다.
우리는 잘 될 것이다. 확신한다.
나 자신보다 그녀를 사랑하고,
나 자신보다 그녀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