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오늘은 이상한 날이었다.
예전에 그녀에게, 딱히 좋은 선물은 아니지만,
그녀가 나를 배려하는 마음에 별로 사용하지도 않지만,
돌봄의 징표스러운 물건을 준 적이 있다.
그녀는 그 물건을 한동안 부적처럼 가지고 다녔다.
그녀가 나와 함께 곧 여행할 설렘을 담아,
'자기에게 돌려드릴 날이 얼마 안 남았네' 라고 애교스럽고 달달하게 얘기해줬는데,
내가 그 물건의 원래 주인이자, '그녀의 주인' 이라고 사랑을 표현해준 것이었는데,
나는 내가 준 징표를 돌려주겠다는 사전적인 의미로 잘못 받아들이고 서운해했다.
너무나 즐거울 여행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는 쓸데없는 오해로 그녀를 깜짝 놀라게 했고,
잘못한 것이 하나 없는 그녀 입에서 '미안하다' 는 말이 나오게 했다.
너무나 미안했다.
그렇게 입에 쓴맛이 배어있는 날,
전두환 정부 이후 제6공화국이 출범한 이래 45년 만의 첫 계엄령이 내려졌다.
내가 '서울의 봄' 에서 보던 일을 내 인생 처음으로 봤고,
그녀가 '소년이 온다' 에서 읽은 일을 그녀 인생 처음으로 겪었다.
한낱 한 명의 인간의 행위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지 보고 있으며,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쳤을 때 어떻게 그 파도를 막아내는지 지켜보고 있다.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각각의 개인은 힘없이 휩쓸려가기 십상이다.
아직 인명피해가 나지 않았지만, 과거엔 이런 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스러져갔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간 그 사람들에게도 가족이 있었고, 애인이 있었으며,
꿈이 있었고, 정의가 있었으며, 계획과 미래가 있었다.
너무 호들갑스러운 말일 수도 있고, 너무 악담스러운 말일 수 있으나,
이런 날이 올수록, 그녀에게 더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목숨이란 날파리의 그것과 같구나 싶은 생각에,
이런 날이 올수록, 그녀를 더 붙들고 아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상이 어떻게 되든, 우리네 작은 삶에 무슨 일이 있든,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든,
눈을 감을 때 그녀를 온 힘을 다해 사랑했다고 후회 없이 말할 수 있도록.
비상계엄 상황이 종료되었다.
2024년 연말 한국은 얼어붙을 것이다.
더 큰 고성이 오갈 것이고, 서로에게 더 차가워질 것이며, 민생은 더 힘들어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각각의 체온은 더욱 달아오른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족들과,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 더 불을 밝힌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더 따뜻해져야 한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