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정신없는 세태에 자연스레 우리의 다음주 여행계획은 어그러졌다.
괜찮다. 미리 산 공연들 따위 보지 못해도 상관없다.
서로 30분, 아니 1초를 만난다 하더라도 나에겐 태양을 안는 따뜻함이리라.
그녀는 자신의 욕심보다는 나를 배려하는 마음이 더 큰 사람이라,
1초만 볼 수 있는데 오라가라 말할 성격의 사람이 아니긴 하지만,
농담으로 '남편~ 나 오늘 늦게까지 일하는데, 집에 나 쓰는 화장품 좀 가져다 주면 안 돼요?' 하고 묻는다.
나는 '부인은 농담 반이겠지만, 나는 1초라도 너를 볼 수 있다면 어디든 언제든 갈 거에요' 라고 답했다.
그녀는 마음이 꽉 찬다며, 조금 감동받은 모습을 보이며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그녀가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는 동안, 2차 계엄을 하네 마네 하는 동안,
나는 돈만 오가는 단순하고 무식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 따뜻한 사무실 안에서 혼자 밥이나 먹고 있다.
오늘처럼 한국이 어지럽고, 전국, 아니 세계 여기저기에서 촛불이 밝혀질 때,
나 혼자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평화롭게 보내고 있노라면,
나의 이런 작은 행복을 위해 피와 땀을 흘린 사람들의 존재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나는 부모님께서 없는 살림에 가난과 싸우며 나를 교육시키셨고,
젊은 날의 우리 부모님 세대가 자유와 평화를 외치며 쓰러져갔기에 민주주의를 얻었고,
한 나라가 둘로 쪼개어지도록 서로 죽고 죽이다가 결국엔 멈춰냈고,
긴 역사 내내 외압과 침략과 지배를 당하면서도 끝까지 나라라는 형태를 지켜냈다.
그리고 나는 운 좋게도 단 한 번도 피 한 방울은 커녕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그 이점만 만끽하고 있다.
난 그래서 항상 열등감이 있었다.
나는 내가 먹고 사는 문제 말고는, 내가 믿는 것을 위해 치열하게 싸워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는 실제로 의롭게 전쟁에 나서는 사람이다.
오히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에 일조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녀와 같은 사람들 덕분에, 난 따뜻한 사무실 안에서 혼자 밥이나 먹고 있다.
유시민 씨는 항소이유서에서 러시아의 시인 니콜라이 네크라소프의 시를 인용하며,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라고 썼다.
그녀는 내가 본 사람 중에 조국을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눈 앞에서 벌어지는 참담함에, 슬픔과 노여움이 끓어오르는 것을 꾹 누르면서,
시국에 대해서는 종종 냉정하게 말하면서도 뜨겁게 행하고, 동시에 나에게는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다.
전국에서 촛불이 또 밝혀지고 있다.
따뜻하다. 아니, 뜨겁다.
그녀만큼이나 뜨거운 불들이 여기저기서 솟아오른다.
She rises.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