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8, 2025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by 헤매이는 자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오늘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다.

목소리만 들어도 너무나 즐겁고, 10분을 이야기한 줄 알았는데 한 시간이 지나있다.

그녀는 살짝 컨디션 난조가 와서 운동을 평소처럼 하지 못했다. 몸살 기운일까 걱정이 됐다.

하지만 그녀답게도,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고 나니 오히려 생기가 돈다.


날씨가 춥기도 하고, 워낙 일이 바쁘기도 하지만,

원래 잡혀있었던 술자리에, 어차피 같이 시간을 보내기 아까운 사람이 나오기 때문에,

그녀는 술 약속을 취소하고, 좀 더 집중해서 일한다.


예전 그 남자와의 술자리에서, 사실 그 사람이 그녀의 손을 조물딱 조물딱거렸고,

직접고용 상하관계는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 성희롱이라고 하기에는 어렵겠지만,

내 기분이 나쁠까봐 그땐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이제야 솔직하게 고백해준다.


나의 기분을 1번으로 생각해주는 그녀의 마음이 참 고맙고 예쁘다.

사실 나는 두 달 전쯤인 그 술자리 당일부터, 불필요한 스킨십이 있었겠거니- 하고 알고 있었다.

그녀의 배려의 마음이 고마웠고, 나도 진심으로 위로해줬었다.


2024년 11월 15일, 한 금요일 밤이었다.

그녀는 메신저에서 "ㅠㅠ" 라는 이모티콘을 거의 쓰지 않는 편인데,

이 날은 두세번씩이나 반복하며, "오늘은 썩 유쾌한 자리는 아니었어요ㅠㅠ" 라고 하소연했다.


그녀가 귀가한 뒤 평소보다 짧게 통화하며, 자세하게 묻진 않았다. 그녀가 잠든 후, 나는 노파심에,


"자기 무슨 일이 있어서 무슨 이유로 썩 유쾌하지 않았는지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 거는,

자기 신변과 마음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차피 이야기해봤자 우리 자기에게 기분 좋을 이야기도 아니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알아서 할 것이고 하기 싫은 이야기는 말을 아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

다만 취조해서 안 좋은 것을 파묘하고 싶지 않을 뿐이야, 하하-

자기 유쾌하지 않았던 하루를 걱정하지 않거나 신경 안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만 알아주기!"


라고 얘기해줬다.


그녀는 상대방 남자가 "승진 못했다" 는 이야기를 계속했다는 것과,

"잘 생긴 직원" 을 데려오겠다고 말한 것과,

"정치적인 분들" 과 자리하면 재미가 없다면서 완곡히 얘기했다.

그 정도의 일들로 그녀의 기분이 상하지는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다른 일이 있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녀가 말을 아끼려고 애써 둘러대는 태도에, 예의를 갖추고 싶었고, 더 묻지 않았다.


다른 업계이지만, 나도 살면서 "정치적인" 남자들을 정말 많이 봤다.

나는 '정치적인 남자들' 로 가득찬 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남자이기 때문에, 술자리에서 남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더 잘 봐왔기 때문이다.

최악의 부류이다.


나는 나 자신의 이름을 걸고 사무실을 내보기도 했지만,

나의 업계 성격 상 술, 접대, 어두운 구석에서의 영업이 반강제되는 한국적 현실을 맞닥뜨렸을 때,

나는 죽을 때까지 평생 외국계기업에서 샐러리맨으로 살기로 결심했었다.

그녀가 남초 업계에서도 조신하면서도 의연하게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어서 참 다행이다.


내 브런치 2권 6화, "November 16, 2024" 에는 이렇게 썼었다.


"오늘 그녀의 술자리는 썩 유쾌한 자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의연하게 잘 견뎌내고, 프로페셔널하게 그리고 조신하게 마무리하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답다.

그녀의 기분을 조금은 풀어주기 위해서 통화를 한다.

그녀는 쓰러지기 직전인 몸과 마음 상태인데도, 내게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녀의 기분을 조금 풀어주고 싶었을 뿐인데, 정작 그녀의 목소리에 기분이 더 좋아지는 건 나였다 ...

그녀의 고된 하루를 닫아줄 수 있는 사람이 나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

'집에 돌아왔다'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뱉을 때,

내가 '집' 이고 싶다.

그녀가 나의 '집' 인 것처럼.

그렇잖아도 집돌이인 나는, 그녀 덕분에 더 집에 집착하게 되었다.

그녀와만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녀와만 술을 마시고 싶다.

그녀와만 놀고 싶다 ...

뭐 이쯤 되면, 이것이 나의 정신 건강이나 우리의 관계에 도움이 되는지는 상관없다.

나는 내가 알아야 할 모든 사람들을 이미 알고 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모든 일들을 이미 하고 있다.

내 우선순위는 오직 그녀 뿐이다. 다른 누가 말리든, 나를 잘못 됐다 하든, 나는 그렇게 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녀는 언제나 내 기분을 우선시해준다.

나에게는 그녀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 신경쓰지 말라, 버릇처럼 이야기하면서,

정작 내가 조금만 아픈 티가 나거나 기분이 안 좋아보이면, 계엄령이 터졌을 때보다도 호들갑이다.

내게 1번인 사람이 나를 1번으로 생각해준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나는 술자리를 싫어한다.

10번 중 9번은 뒷맛이 쓴 해프닝이 있고, 취기어린 사람들의 치기어린 짓거리들을 많이 봤다.


술에 취한 여자가 "오빠~" 라고 목소리를 바꾸고 안겨오며, 기분 나쁜 향수 냄새를 풍겨오곤 했다.

"어머~ 남자 손이 이렇게 이쁜 거 처음 봐요" 라며 내 손을 허락도 없이 조물딱거린다.

내가 정색하고 손을 빼며 여자친구가 있다고 말해도, 본인도 남자친구 있는데 무슨 상관이냐며 오늘밤 자기 집에 오라 한다.


술에 취한 남자가, "성공하셨으니 모아놓은 돈도 많으시겠어?" 라면서 사업 제안을 해온다.

다음 번에 마주치면, 무슨 사업 아이템이었는지조차도 기억하지 못한다.

얼마나 많은 여자들과 잠자리를 했는지 거짓말이 뻔히 보이는 무용담을 늘어놓고 음담패설을 한다.

병이 옮을까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다.

'취중진담' 을 중요시하는 사람 중에서, 믿을만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밖에서 제 정신으로 만나면 상종조차 안 할 인간들이었다.

술자리의 사람들은 모두들 외로워보였다. 불행해 보였다. 측은하다는 마음마저 들었다.

삶에서 채울 수 없는 구멍이 있을 때, 애써 다른 사람으로 틀어막으려고 한 거겠지. 그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으로 행복과 만족감을 주고,

존재만으로 가슴 벅차게 해주는 그녀가 나의 구멍을 틀어막아줘서 감사하다.


구입한 후 단 한 번도 빼지 않은 커플링을 내려다본다. 로즈 골드색 영롱한 빛이 난다.

평생 다른 이성과는 손을 닿지 않으리라 다짐해본다.

오직 그녀와 둘이서만 술을 마시고,

이성과 둘이서는 차 한 잔도 하지 않고, 이성이 한 명이라도 있는 술자리는 가지 않으리라는 나의 약속을 상기시켜본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이 혐오스럽다고 이렇게 말해놓고, 내 말과 행동이 다르게 살지 않으리라.


나는 그녀가 싫어하는 남성상이 되지 않겠다. 그녀가 피하는 사람들을 닮지 않겠다.

그녀가 직접 목격했을 때 기분나쁠 행동은 어디서든 절대 하지 않겠다. 그녀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겠다.

그녀를 말로 사랑해주는만큼, 행동으로 보여주고, 그녀에게 가장 자랑스러운 사람으로 남겠다.


그녀는 집중해서 야근하고, 뿌듯해하며 퇴근한다. 그녀와 같은 낙관적인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다.

미래에 대해 낙관을 가진 사람일수록, 오늘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가고, 자신이 해야할 일을 잘 미루지 않는다.

인생을 살다보면 분명히 크고 작은 파도들이 계속 올텐데, 그 하나하나에 모두 일희일비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세상은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과, 나와 부딪히는 것들로 가득차있다.

그래서 산속에 숨어살던 나를, 우물 속에서 갇혀있던 나를, 그녀는 긍정적인 힘으로 꺼내줬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이해해줄 사람이 한 명쯤은 있다는 사실을 믿게 해줬다.


절망할 시간이 있으면, 맛있는 걸 먹고 자면 된다. 살도 찌고 좋다.

낙담할 시간이 있으면,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 된다. 온 세상이 밝아진다.

사람에게 실망하면, 나에게만은 완벽한 그녀를 바라보면 된다. 인류애가 회복된다.


그녀는 내가 사랑한다고 자주 말해줘서 고맙다고, 나 같은 사람을 만난 건 행운이라고 말해준다.

글쎄, 사랑한다고 자주 말해줄 수밖에 없는 사람을 만난 내가 더 운이 좋은 거 아닐까.


오늘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의 그녀는 나의 기분을 1번으로 걱정해주는 모습을 안아주고 싶었고,

어떤 자리에서 어떤 상황이 있어도 지혜롭게 처신하는 모습을 본받고 싶었고,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세상만사를 대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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