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10, 2025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by 헤매이는 자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녀는 오늘도 표창장을 받았다. 그녀의 직업명은 '상장 콜렉터' 이다.

"... 투철한 사명감과 책임의식으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여 ...

기여한 공이 크므로 이에 표창합니다."

그녀가 들어 마땅한 칭찬이다.

그녀의 복근과도 같은, 아플 때까지 운동한 허벅지와 엉덩이와 같은, 끈기와 저력이 아름답다.


나의 2025년 1분기는 시작이 좋다.

추운 날씨에도 사람들은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덜덜 떨면서 자신의 신념을 외치고,

지구 여기저기 동사하는 사람들, 큰 산불이 나서 집을 잃고 대피하다가 사망하는 사람들,

지진으로 백명 단위의 사상자가 나는 2025년의 첫 시작에,

죄책감이 들 정도로 나만 세상에서 제일 따뜻하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녀와 같이 이 세상을 지켜주는 사람들 덕분이리라.

나의 이번 분기는 '그녀의 분기' 가 될 것이다. 그녀와 여행도 하고, 그녀와 함께 살기로 했다.

그녀는 그녀의 이번 한 해가 통째로 '그의 해' 가 될 것이라 이야기해준다.

달콤함에 녹아버릴 것 같다.


나는 그녀를 챙겨줄 수 있을 때 가장 행복감을 느낀다.

12월에 여행할 때, 정말 한 순간 한 순간이 행복했지만, 가장 행복했을 때는 어찌 보면 사소했다.


한 커피숍을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그녀는 '세상 사람 모두가 딸기 케익을 먹나봐~' 하는 표정으로 아련하게 쳐다봤다.

하지만 자기 관리의 아이콘인 그녀는 '안 먹겠다' 는 눈치로 가만히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녀가 안 보는 사이, 독단적으로 딸기 케익 한 조각을 시켰다.

'안 먹겠다 했는데 왜 시켰어~' 말하는 그녀의 입은 옷걸이에 걸린 것마냥 입동굴이 생겨났다.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조금이라도 웃게 해줄 수 있는 무언가를 알아서 챙겨줄 수 있어서 뿌듯했다.

좀 더 가격이 있는 선물을 주고받는 것보다도, 그 딸기 케익 한 쪽이 제일 자랑스러웠다.

그녀의 눈빛만 봐도 딸기 케익 한 쪽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의 성장이리라.


그녀가 동안인 이유는, '성장하고 싶다' 는 마음이 그녀의 눈빛과 인생에 아직 서려있어서이다.

사람들은 꿈과 희망을 잃었을 때 갑자기 늙는다.

하던 사업이 갑자기 주저앉거나, 즐겁게 일하던 일자리를 잃었을 때 폐인이 되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거나, 그 누구에게도 잘 보이고 싶지 않을 때 나이가 든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에서 배우 르네 젤위거는 전성기의 연기를 보여줬고,

32살의 여성이 '노처녀' 로 보이는 당시 시대상을 보여줬다.

연기 뿐 아니라 외모 전성기 시절의 콜린 퍼스와 휴 그랜트도 돋보이는 영화이지만,

여주인공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사랑받고,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기 때문이리라.


내가 사랑하는 그녀는 32살보다는 살짝 좀 더 지혜를 쌓았는데도,

20여년 전에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이다. 자세히 뜯어봐도 정말 그대로이다.


외모도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지만, 그녀 같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도 추한 사람들이 세상엔 많다.

나는 연예인보다도 아름다운 척을 하면서 속은 시커멓게 썩어있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하지만 그녀는 겉만큼이나 속이 꽉찬 사람이다.

어두운 곳에 덮어놓기보다는, 누구나 올 수 있는 미술관 제일 밝은 곳에 전시하고 싶은 사람이다.


돌이켜보면 그녀는 어릴 때부터 이미 당차고, 자신감 있고, 성장하려는 사람이었다.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지도 몰랐지만, '이 사람은 분명 뭔가 될 거야' 라고 알고 있었다.


20여년이 지나 다시 만나도 여전히 그대로일 줄 알고 있었다.

변한 모습에 실망하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좋아하게 될 줄 알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똑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과거보다는 미래를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래서 나도 여느 피가 끓는 청춘과도 같은 사랑을 하고 있다.

그녀는 나를 그 누구보다 젊게 해줬다. 첫사랑 같은, 아니 첫사랑보다 강렬한 마지막 사랑으로.


강렬한만큼이나, 이번 한 해는 여유롭고 차분하게 사랑하고 있다.

앞에서 버스가 떠난다고, 배차간격 몇분을 아끼려고 헐레벌떡 따라잡으려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집에 도착할 것이기 때문에 천천히 걸어가며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지혜를 그녀에게 배웠다.

조금 늦게 도착할지언정, 걸어가며 바라본 주변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나의 '편협함' 이 '조급함' 에서 온다는 사실을 최근 알게 됐다.

마음이 급하면 평소엔 화를 안 낼 것에도 내게 된다. 마음을 다스리는 일은 중요하다.

그녀는 나와 함께 있을 땐 내가 '마음이 너그럽다' 고 말해주곤 했다.

나는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이 아닌데, 그녀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 너그러운 사람이 되었다.


애초에 인격 자체도 너그러우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

그녀와 사귄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그녀는 아래와 같이 손편지를 써줬다.


"너는 뭐든지 나보다 뛰어나. 타고난 재능도, 능력도,

또 다른 사람을 널리 품을 수 있는 마음의 크기도.

그래서 늘, 너와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면 내가 노력을 많이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게 돼."


겸손하기 그지없다. 그녀와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하는 건 나인데 말이다.

'다른 사람을 널리 품을 수 있는 마음의 크기' 는 그녀가 낸 특허인데 말이다.

'편협한' 나는 그녀의 글과 말과 표현에서, 매일 지혜를 얻는다. 사랑을 느낀다.


사귄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내 본색을 몰랐을 때 그렇게 썼다고 그녀는 반농담한다. 사실이다.

나만을 위해 써준 글이란 게 아름답지만, 너무 아름다워서 자꾸 이렇게 공개하게 된다.

그녀만은 널리 품을 수 있는 더 큰 마음을 가지는 것으로, 저작권료를 대신하기로 한다.


살다보면 나의 삼백안을 뜨고 정신없이 비장하게 일해야할 때가 종종 있지만,

나는 아무리 바빠도 그녀를 생각하며 웃음을 찾는 여유가 생겼고, 그래서 일이 더 잘 된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더 좋은 업무능률과 결과물로 나타났다.

모든 일을 즐기면서 할 순 없다. 하기 싫은 일도 해야할 때가 있다.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을 하는 사람은, 즐기며 일하는 사람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


독서광 그녀 덕에 알게 된 조선희 씨의 "세 여자" 라는 장편소설을 읽고 있다.

박헌영, 임원근, 김단야 씨 같은 남자들의 이야기가 더 알려져있을지 모르겠지만,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 씨 같은 여자들이 어떻게 역사에 이름을 남겼는지,

장르는 '장편소설' 이긴 하지만 작가가 최선을 다해 사실에 입각해 기록한 것이 마음에 든다.


젊음도, 분노도, 열정도 지나간 역사의 자리에, 한낱 인간들의 희생은 의미없어 보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인간이 존엄함을 입증하기 위해 살아간 사람들 덕에 세상은 고귀하고 따스하다.

김단야가 주세죽에게 말하는 장면이 지금의 나에겐 크게 와닿았다.


"세죽 씨, 모스크바에 온 후로 당신이 웃는 걸 본 적이 없소.

혹시 화장실 가서 나 몰래 웃는 건 아니오? 농담이오.

지금껏 당신 인생에 고난이 아니었던 때가 없었소 ...

그래도 당신은 잘 웃는 사람이었소.

그 어여쁜 얼굴에 함박웃음을 터뜨릴 때 우리가 얼마나 마음 든든해졌는지 당신은 모를 거요.

한데 당신이 그 웃음을 잃어버린 것 같소 ...

지금 웃지 않으면 웃을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오.

요새는 유쾌하고 낙관적인 마음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소.

지금 내 가장 큰 소망은 당신의 웃는 얼굴을 보는 것이오.

당신과 나의 미래, 우리 아이에게 분명 지금 우리는 알지 못하는 어떤 행운이 기다리고 있을 거요."


당시 역사적 상황과, 실제 단야와 세죽 간 일어난 일의 사실관계와 결과를 떠나서,

내가 그녀에게 종종 해주고 싶은 말 그대로이다.

작가는 세죽의 상태를 '깨진 거울' 같다고 표현하고 있었다.

'깨진 거울' 이란 단어의 조합을 보니, 그녀가 써준 손편지가 또 하나 떠올랐다. 다시 소중히 들춰본다.


"한 번 깨져나간 마음자리는 원래대로 돌리기는 참 어려운 것 같아.

금 간 거울처럼, 뭘 비춰도 이제는 깨진 채로만 보이고,

그래서 애초에, 깨지지 않도록 소중히 다루는 게 중요해 ...

깨진 자리에 대한 쓰임을 섣불리 예단하지 않을게.

특히 마음은, 만들어 나가기 나름이라 생각해."


'조급함' 을 다루는 그녀의 자세가 현명하다.

그녀의 말대로, 나는 오늘도 그녀를 위한 마음을 천천히 만들어나간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의 그녀는 나란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모습을 안아주고 싶었고,

진심어린 칭찬으로 나란 사람을 더 예쁘게 빚어주는 모습을 본받고 싶었고,

말 뿐 아니라 본을 보임으로써 매순간 나에게 깨달음을 주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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