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천에서 쓰다
사람처럼 실수하지 않으려 기계처럼 움직였다.
일요일 오전부터 손님이 한 트럭이었다. 앉아있는 손님들 사이를 지나다니며 나는 여름날 땡볕 아래서 구보하듯 땀을 쏟았다. 손님들이 나가면 또 다른 손님들이 뭉탱이로 들어왔다.
단체가 유난히 많은 날이었다. 자리를 안내하고 주문받고 상차림을 내주고 계산을 마친 자리를 치우고 나온 음식을 날랐다. 공깃밥이나 반찬거리를 더 달라는 손님들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가 재빨리 냈다.
삼촌과 베트남 알바생 ‘안’, 그리고 나는 쉴 틈 없이 고개를 돌리고, 귀를 쫑긋 세우고, 분주히 움직이며 땀을 흘렸다. 우리 식당 마스코트인 고양이 ‘해피’만 선반 아래 쿠션을 깐 상자에서 고요한 낮잠을 자고 있었다. 길고양이 출신 주제에 아주 상전이 따로 없다.
오후 1시 반까지 꽉 차 있던 손님들이 2시를 기점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1층과 2층은 물론, 날씨가 좋아 바깥 테이블까지 앉아있던 손님들이 모두 귀신같이 사라졌다. 삼촌은 설거지를 맡았고, 나와 안은 상을 치웠다. 치우는 건 금방이었다. 안도 나도 치우는 솜씨는 베테랑이니까.
‘안’이 누구냐면,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공부하러 온 학생이다. 나이는 고작 스물밖에 안 됐는데 학비를 벌기 위해 여름 방학 시즌부터 삼촌 식당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 방학에는 거의 일주일 내내 8시간씩 일을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학기 중이라 주말에만 나오고 있다고 한다. 처음 만났던 때가 여름휴가철이었으니 나랑 안면을 튼 지도 반년쯤 됐다. 처음엔 서먹했지만 이번에 일손을 도우러 가면서부터 말을 붙이다 보니 많이 친해졌다.
안은 숨기는 게 없다. 내숭도 없고 씩씩하고 무엇보다 잘 먹었다. 삼촌은 안을 맨날 돼지라고 놀린다. 그럴 때면 안은 “우이쒸”하며 슬쩍 째려보는데, 손에 쥔 군것질거리를 끝까지 놓지 않고 입으로 가져가곤 한다. 요즘엔 귤을 많이 두는 바람에 안의 두 손은 껍질을 까느라 바쁘다. “먹을래요?” 물어보지도 않고 삼촌과 내게 귤 몇 조각을 건네는 모습이 철없는 막내 동생 같기도 하고 귀엽다.
안은 손님이 있을 때는 손을 잘 닦았는데, 없을 땐 아니었다. 자신이 만진 것에 대해 더럽다는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뭐만 하면 손을 닦으러 냉큼 주방에 달려가는 내게 안은 “옵빠, 손을 왜 이렇게 닦아요? 안 더러워요!” 말하기도 했다. 안에게는 행주나 그릇, 손님들이 먹다 남은 조개껍질이나 길고양이가 하찮고 더러운 것이 아닌 듯했다. 안은 자신이 만지고 쓰다듬는 모든 것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것처럼 보였다.
안은 가끔 설거지 후 물기가 남은 손을, 고양이를 만진 손을, 행주로 상을 닦은 손을 내 목에 갖다 대며 날 움찔하게 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자기 형제나 부모에게 스스럼없이 장난치듯 안은 내게 순진한 장난을 걸었다. 내가 "앗!" 소리를 내며 뒤돌아볼 때 안은, 약간의 추임새와 함께 개구진 웃음을 뱉었다.
그런 천진함은 오랜만에 느꼈다. 사람 사이의 정은 물론 웃음이나 농담도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사소한 실수에도 가혹한 시선이 쏟아지는 삭막한 세상에서, 우리는 서로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살아간다. 수십 개의 가면도 부족한 시대다.
안에게선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안과 내가 그전부터 서로의 존재를 알았다고 해도, 함께한 일수는 고작 열흘도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 안에게 나는 그저 외국인 사장님의 조카일 뿐이다. 그런데 안은 별생각 없이 내 뒷덜미에 손을 슬쩍 갖다 올리며 나를 놀래킨다. 참 신기하다.
그 가볍고 장난스런 스킨십은 뭘까. 내 생각에 그건 따스한 정과 신뢰의 표현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순수한 형태의 사랑이다. 안은 그렇게나 투명하다. 저 아래까지 훤히 보이는 맑은 호수를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안은 퇴근할 무렵 내게 “옵빠, 다음 주에는 안 와요?”하고 물었다. 나는 웃으며 “응, 안 와”하고 답했다. 삼촌도 “오빠 이제 가, 안 이제 혼자 열심히 일해야 돼”하고 말했다. 안은 잠깐동안 입술이 댓발 나왔다가 금방 다시 웃으며 “알겠어요. 빠이빠이. 담에 봐요.”하고 말했다. 통통 튀는 걸음으로 안은 자신이 묵는 기숙사로 향했다.
앞치마를 정리하다 보니, 주머니에 돈 봉투가 들어 있었다. 삼촌이 1시간 전쯤 안에게 준 월급봉투였다. 안은 바보같이 월급도 놓고 가버렸으면서 그렇게 해맑은 얼굴로 퇴근한 것이었다. 삼촌이 급하게 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 월급봉투 놓고 갔어. 다시 와서 가져갈래?”하고 물었을 때 안은 “아뇨 갱찬아요, 다음 주에 가져갈게요.”하고 답했다.
삼촌도 안을 귀여운 조카쯤으로 생각하는 게 보인다. 곁에서 봤을 때 삼촌은 안을 무지 아낀다. 안도 그걸 안다. 그러니까 그렇게 군것질을 하고 편하게 장난도 칠 수 있는 것이다. 하여튼 삼촌, 나, 그리고 안의 주말이 평화롭게 마무리 됐다. 안과 있었던 시간 동안 나는 마음이 훈훈했다. 덕분에 난 월요일에 넉넉한 마음으로 서울로 올라갈 수 있게 됐다.
안이 개구쟁이처럼 웃는 얼굴이 떠오른다. 티 없이 해맑은 웃음, 별것도 아닌 일에 즐거워하며 웃는 그 얼굴이 참 부럽다. 타지에서도 밝고 열심히 생활하는 안에게 언제나 행운과 행복이 따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