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벽보가 붙었다. 이 아파트에 18년 살면서 처음이다. 아래는 전문이다.
세대 간 층간소음 마찰의 민원
**동 세대 간 층간소음 마찰의
여러 민원이 발생하고 있으며
세대의 요청으로 다음과 같이 공지합니다.
‘1. 위층 천정을 두드리는 것은
위협으로 느끼니 삼가 바랍니다.’
‘2. 취침시간 코고는 소리 자제 바랍니다.’
첫 번째는 납득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코골이를 단속이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코골이 명단을 작성해서 처벌이라도 하겠다는 소린가?
대체 누가 주민들의 코골이를 빌미로 민원을 넣었을까. 이런 사람이 내 이웃이라니, 착잡할 뿐이다.
이 짧은 문구를 보면, 민원인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취침시간’이라는 말은 얼핏 추상적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그가 말하는 ‘취침시간’ 앞에는 ‘나의’라는 단어가 숨겨져 있다. 그가 말하는 ‘취침시간’이란 곧 ‘내가 자는 시간’을 뜻한다.
결국, 그는 ‘코를 고는 주민들’에게 ‘나’의 취침을 방해하지 말 것을 공표한 셈이다. 내가 잘 자는 것이 중요하니 당신들은 나중에 자거나 밤새라, 그런 뜻이다. 이기적인 부탁이 아닐 수 없다.
코골이가 스스로 노력해서 고칠 수 있는 일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비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코골이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내 이모부만 봐도 그렇다. 오래전에 코골이 수술을 받으셨지만, 지금도 여전히 코를 곤다. 평소에는 코를 골지 않는 내 친구도 피곤하거나 술을 마신 날에는 여지없이 코를 곤다. 이처럼 코골이는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문제다.
아파트는 군대가 아니다. 정해진 취침시간이 있을 리도 없고, 한 공간에서 단체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다. 각자 다른 생활 리듬을 가지고 사는 만큼,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내 권리가 소중한 만큼 남의 권리도 아껴주어야 한다. 그게 싫다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듯 아파트 생활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득 ‘코골이를 층간 소음으로 볼 수 있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민원인이 내 글을 보고 억울함을 느낄 수도 있으니 최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찾아보기로 했다.
먼저 환경부 자료를 찾아보니, 코골이는 층간소음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다. 민원인에겐 안타까운 일이다.
소리의 크기를 기준으로 보면 어떨까? 환경부에 따르면 층간소음은 주간(오전 6시~오후 10시) 39dB, 야간(오후 10시~오전 6시) 34dB을 초과할 경우 인정된다.
한편, 코골이 소음은 보통 50~70dB 정도로, 심한 경우 80dB까지 나올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지하철 소음과 비슷한 수준이며, 야간 기준인 34dB을 훨씬 웃돈다.
다만, 이런 수치는 바로 옆에서 측정했을 때 이야기다. 아파트 벽을 이루는 콘크리트의 방음은 매우 우수하다고 알려져 있다. 때문에, 코골이 소리가 두터운 벽을 통과해 전해질 때, 법적 기준을 초과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 중론이다. 민원인은 매우 예민한 성격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코를 골까? 통계에 따르면 정상 성인의 약 25~45%에서 코골이가 나타나고, 성인 남자의 50%, 성인 여자의 30%가 코를 곤다고 한다. 한 집에 최소 성인 남녀 한 명씩은 있을 테니, 못해도 두 집 중 한 집은 코를 골 확률이 크다. 맞닿은 이웃집에 코골이 환자가 있을지는 결국 운에 달린 셈이다. 민원인은 그저 운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코골이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앞서 언급했듯, 수술이라는 방법이 있긴 하다. 하지만 재발률이 50~60%로 높아, 코골이 수술을 선택하는 사람은 드물다. 전문가들은 식이요법이나 꾸준한 운동을 권하지만, 그 또한 간단한 일은 아니다. 이건 민원인이 감당할 영역은 아니다.
민원인은, 아무래도 약간은 오버한 게 아닐까 싶다.
정리하면, 코골이는 층간소음의 대상이 아니다. 소리의 크기로만 보면 층간소음 기준을 넘지만, 아파트 구조상 법적 기준을 초과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모든 집에 코골이 소리가 없는 이상적인 환경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수술로도 100% 해결되지 않는 만큼, 이웃의 코골이를 단속하려는 시도는 접는 것이 편할 것이다.
약간의 불편함조차 참기 어려운 시대다. 차분하게 마음을 다스릴 필요가 있다. 민원인의 마음도 이해가 전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 또한 군대에서 코골이 때문에 밤을 지새운 적이 있다. 불과 1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들려오는 탱크 같은 코골이 소리는 지금도 아찔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같은 공간에서는 옆 사람을 흔들어 깨우거나 자세를 바꿔줄 수라도 있다. 하지만 아파트에서는 옆집으로 건너가 코 고는 이웃의 고개를 돌려줄 수가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해하는 수밖에 없다. 다른 것도 아니고, 고작 이웃의 코골이 소리라면 더욱.
민원인이 들은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는 모르지만, 나 또한 옆집에서 들려오는 자잘한 코골이 소리가 거슬렸던 적이 있다. 다른 주민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모두가 한 번쯤은 경험했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탓하며 살지 말자. 사소한 불편함은 웃어넘기는 편이 낫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저렇게 코를 골까’, ‘오늘 하루도 고생이 많았나 보다’라고 생각을 바꿔보자. 그 정도 아량은 품고 살자.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떤 것도 참을 수 없게 되는 법이다.
‘그럴 수도 있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참고 넘기는 것이 삶의 지혜일지 모른다.
어떻게든 내 것을 챙기려 들기보단, 조금 놓기도 하고 비우기도 하는 것이 삶일지 모른다.
가뜩이나 빡빡한 세상이다. 숨 좀 쉬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