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땀쟁이의 땀서린 이야기
1.
빈둥대다 점심 약속을 위해 오랜만에 밖으로 나섰다.
훈훈한 바람과 적당한 햇빛이 조화로웠다. 11월임에도 포근한 봄 같았다.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평온했다. 버스가 오기 전까지는.
‘오늘따라 왜 이렇게 사람이 많지.’
버스 안이 빽빽했다. 승객들이 내뱉는 더운 숨이 가득 차서 나는 금방 열이 올랐다. 11월에 에어컨을 바란 것은 무리였을까.
지그재그로 겹겹이 서 있는 사람들 틈에 꼼짝없이 갇혔다. 얇은 겉옷과 앞으로 멘 가방은 갑갑한 갑옷과 무거운 방패 같았다. 문제는 둘 다 벗을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이대로 최소 30분을 버텨야 했다.
2.
더운 닭장이었다.
5분도 채 안 됐을 무렵부터 이마와 목, 등줄기와 겨드랑이에 땀이 흘렀다. 땀 많은 사람은 이를 자각한 순간부터 큰 민망함을 느낀다.
얼굴에 흐르는 땀은 닦고 닦아도 멈출 줄 몰랐다. 이마, 관자놀이, 목뒤를 닦다 보니 손수건이 흥건해졌다. 쥐어짰으면 짠 물이 후두둑 떨어졌을 것이다.
땀 한 방울이 기어코 눈을 찔렀을 때 자괴감이 밀려왔다. ‘한여름도 아니고 11월인데, 난 왜 이럴까.’ 한 번 내렸다 타야겠다고 결심했다. 뒷문으로 내릴지 앞문으로 내릴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내 옆에 안경 쓴 남자가 관자놀이에 흐르는 땀을 애처롭게 닦고 있었다!
그는 나와 같은 부류임 틀림없었다! 갑자기 강한 동료애를 느꼈다. 마음이 편해졌다. 그의 모습에서 내가 보였다. 위안을 얻었다. 땀도 잠시 멈춘 듯했다. 좀 더 버텨보기로 했다. 그와 함께라면 견딜 수 있었다.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쯤 사람들이 많이 빠졌다. 그 남자도 내렸다. 걸음걸이로 봐서 그는 내리고자 했던 곳에 알맞게 내린 듯했다. 그도 나를 봤을까. 만약 봤다면 그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으려나.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겨 답답한 겉옷을 벗은 뒤 팔에 걸었다.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열어뒀을 창문 쪽 자리가 빠져 그곳으로 몸을 옮겼다. 그제야 산들바람이 얼굴에 닿았다.
3.
약속을 마치고 돌아와 이어 쓴다.
나는 돌아오는 버스에서도 땀을 흘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창가 쪽 앉는 자리가 금방 생겨 몇 분 후에는 땀이 식었다는 점이다.
가을 버스는 야속하다. 가을 버스는 에어컨을 틀 줄 모른다. 지하철은 지금도 에어컨이 가동된다. 11월인데도 지하철 에어컨은 꽤 자주 돌아간다.
둘의 차이가 뭘까? 버스보다 지하철에 사람이 훨씬 몰리기 때문일까? 지하철 모바일 민원 어플로 땀쟁이들의 에어컨 요청이 빗발쳐서 그런가?
지하철이나 버스나 대중교통이란 이름으로 함께 묶이는데 왜 버스는 지하철처럼 에어컨을 켜주지 않는 걸까?
4.
지금은 11월이다. 기후변화 때문인지 한낮에는 나름 따스한 기운이 돌지만, 계절로 보면 엄연한 가을이다. 가을 중에서도 늦가을이다. 그러니 에어컨을 틀지 않는 것이 상식이고 당연한 셈이다.
버스는 이런 옛날 사고방식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해본다. 사계절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특히 봄, 가을은 여름과 겨울에 편입할 모양새를 거의 갖췄다. 아직까진 11월을 ‘늦가을’로 부르지만 10년 20년 후엔 ‘늑장여름’이라 부를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지하철은 이런 변화의 흐름을 읽으며 달리고 있다.
버스는 지하철보다 오래된 유산이다. 오랜 것일수록 바뀌기 어려운 법이다. 6살 아이를 변화시키는 것이 80살 노인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힘든 것처럼.
지하철은 달라지고 있는데, 버스는 아직 제자리다. 그 차이인 듯싶다.
5.
그래서 가을에 나 같은 사람은 버스가 어렵다. 특히 사람 많은 버스라면 더더욱.
버스에서 에어컨 좀 틀어달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땀쟁이라도 되고 싶다. 하지만 괜한 말 한마디에 이목이 쏠리는가 싶으면 땀은 더 발생하기 때문에 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버스도 지하철처럼 약냉방차, 냉방차로 구분해서 다니면 참 좋으련만, 당장 그렇게 되긴 어렵겠지 싶다.
하여튼 가을에 나는 버스가 밉다. 이렇게 말해도 나는 또 버스를 타겠지. 버스에겐 내가 불청객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