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느꼈을 공포는 얼마나 컸을까
피곤하지만 외출을 미룰 수 없는 일요일이었다.
밖으로 나돌다 집 앞에 다다랐을 때, 놀이터 옆 작은 공터에서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가을 공기가 서늘해서 숨을 크게 들이쉴 때 콧속이 시원했다. 크게 숨을 내쉬고 불을 붙였다. 이어폰은 뺀 상태였다. 소박한 소음이 들리는 일요일 밤을 나는 좋아한다.
담배를 몇 모금이나 빨았을까. 그때 나는 어디를 보고 있었을까.
열 걸음도 안 되는 발치에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가로등은 나를 마주하고 있었고, 그를 등지고 있었다. 나는 그 남자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는 내 얼굴을 보았으려나.
'그런데, 저 남자가 언제부터 저기 있었지?'
그때였다. 그가 휘청대며 다가왔다. 손에 뭔가 쥐고 있었는데 두툼하면서 끝은 뾰족했다. 그가 서너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술에 취했는지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말이 나올 틈도 없었다. 손에서 담배가 툭 떨어졌다. 그저 꾸물대며 뒷걸음질만 칠 뿐이었다. 사나운 맹수를 보면 등을 보이지 말고 천천히 무르는 게 상책이라던데, 두려우면 자연히 그렇게 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머릿속에서는 당장 누구냐고 강하게 소리치라고 명령했지만, 입에 침이 고여 그 침을 삼켜야만 했다. 타이밍을 잃었다. 거뭇한 몸뚱이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쪼그라든 목구멍을 뚫고 ‘뭐야 당신 누구야!’ 소리치려 할 때였다. 낯이 익었다. 동생이었다.
동생은 러닝을 하고 오는 길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스프라이트를 사서 들고 오던 중이었다. 담배 피우는 내 모습을 멀리서 보고 일부러 놀래주려고 했단다. 걸음걸이를 과장해서 걸어가면 분명 놀라겠지 생각했단다.
잔뜩 긴장한 내 모습을 보고 동생은 웃음을 터뜨렸다. 다 큰 내가 겁에 질려있는 모습이 자기 딴에는 재밌었나 보다. 나는 가슴을 쓸며 민망하게 웃었다. 흉기로 착각했던 500ml짜리 스프라이트 페트병에 담긴 투명하고 청량한 액체가 찰랑거렸다. 뚜껑으로 좁게 모이는 그 부분이 이제야 뭉툭하게 보였다.
동생과 집에 들어갔다. 씻은 뒤 안락한 내 방 침대에 누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낯선 실루엣이 동생이 아니었다면. 전과 10범의 범죄자였거나 무자비한 사이코패스였다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
그간 있었던 ‘묻지마 살인’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불과 몇십 초, 그 짧은 순간에 나는 두려웠고 섬뜩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난 살아있고 실제 피해자들은 죽었다. 그들이 느꼈을 고통을 헤아릴 수 없다.
그들은 살고 싶었을 것이다. 목숨이라도 건지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죽었다. 두려움과 공포는 물론 전신에 퍼지는 고통을 견디다 죽었다. 어떤 말도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 죽인 사람과 죽은 사람을 아끼던 사람들만 남았다. 죽은 사람만 떠났다.
주먹과 발길질에, 온몸에 피멍이 들고, 창백한 날붙이가 살과 뼈를 파고들 때 얼마나 아팠을까. 되돌릴 수 없는 허망한 시간이 얼마나 야속했을까. 살 수 없겠다고 느낀 찰나에 얼마나 사무쳤을까. 생에 마지막으로 마주한 얼굴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일면식도 없는 끔찍한 얼굴이라 얼마나 한스러웠을까.
한 달 전쯤 순천에서 술 취한 30대에게 일면식 없는 여고생이 무참히 죽었다. 경찰을 꿈꿨다던 그녀가 하늘에선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그녀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