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기에 한 번은 꼭 A를 본다. 둘이 만나면 언제나 과음을 하고, 과음을 하면 절로 말이 많아진다.
술자리에서 나눈 대화는 아침 햇살에 녹아 사라지는 안개를 닮았다. 당시엔 의미가 있는 듯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날이 밝으면 찾을 수 없다. 찰나에만 그럴듯하고 심각해 보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술자리에서 나눈 대화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A와 술을 마시면 다르다. 열 마디 중 여덟아홉은 사라져도, 한둘은 어딘가에 남는다. 그와 술자리를 마치고 돌아와 글을 쓴 적이 없어 기록된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분명히 그의 한두 마디는 내 안에 존재한다. A와 술을 마신 다음 날이면, 문득 그의 말이 뇌리에 스며들어 있다는 걸 종종 느낄 때가 있었다.
어제의 술자리에서 기억에 남은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현실과 타협한 한때 꿈 많던 청년 A였고, 또 하나는 결코 리더가 될 수 없을 나 자신이었다.
A는 줄곧 영상업에 몸담아왔다. 학생 시절엔 영화제나 다큐멘터리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고, 작품을 만들 때는 언제나 감독이었다. 같은 학교, 같은 과를 다녔지만 (물론 내가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아 시야가 좁았을 수도 있겠지만) A는 돋보였다. 특유의 아이디어부터 예리한 관찰을 통한 독특한 표현력까지. 그를 따라올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A는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느낌을 감각적으로 화면에 담아낼 줄 아는 재능을 갖고 있었다. 후배든 동기든 교수든 그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랬던 A가 지역 농협에 들어갈 거라고 말했다. 방송국에서 유명한 프로그램들을 맡으며 조연출로 오래 버텨왔고, 입봉에 대한 기대 또한 컸던 그였기에 나는 충격이었다. ‘왜?’라는 질문에 A의 답은 의외로 건조했고 간단했다. ‘하고 싶은 건 잠시 미뤄놓고, 그보다 더 중요한 현실을 먼저 맞이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대화를 나눠보니 A는 어느새 여자친구와의 미래, 즉 결혼과 가정을 꿈꾸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가 말한 현실은 주로 돈과 연결돼 있었지만, 내게는 그 너머의 삶에 대한 욕망이 보였다. 그것은 건강한 욕망이었고, 나는 수긍했다.
그렇다고 A가 꿈을 아예 접은 것도 아니었다. 그는 ‘더 많은 경험과 생각이 쌓이면 성공 확률도 높아지지 않겠냐’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재능을 잘 알고 있기에 약간의 아쉬움을 내비쳤지만, 그의 눈은 체념이 아닌 기대로 차 있는 듯보였다.
그 뒤로 화제가 은근슬쩍 내 얘기로 넘어갔다. A는 나를 가리켜 ‘헤드가 될 순 없는 사람’이라 말했다. 구체적인 예시나 사건 없이 말했지만 그는 나를 오래 지켜본 사람이다. 함께한 시간이 있었기에 그 말에는 그만의 확신이 섞여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직접적이고 불편한 말을 면전에서 들은 건 오랜만이었다. 그럼에도 기분이 상하기보다는 오히려 수긍이 갔다. 과거를 되짚어보니, 누군가와 무언가를 할 때 나는 늘 조연을 자처해 왔다. 대신 그는 ‘맡은 업무에서는 빈틈없는 실무자 스타일’이라고 덧붙였다. 남에게 폐 끼치는 걸 싫어하고, 인정 욕구는 크지만 통솔형 리더는 아니라는 그런 말이었다. 뭐, 어느 정도는 인정했다. 어감이 다소 부정적일 수도 있지만, 사람의 유형이 저마다 다르다는 걸 생각하면 굳이 작아질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그건 그의 주장이다. 일부는 일치할 수 있지만, 전부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통해 스스로를 다시 들여다보게 됐다. 나는 불확실성을 두려워한다. 확실한 건 없고 완벽한 것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100%가 아니라면 의미 없다는 이상한 신념에 사로잡혀 있다. 모든 도전에는 리스크가 따르고 결과는 마지막까지 알 수 없다. 그런데 나는 머뭇거린다. 사람은 모두 다르지만, 사회는 그 다름을 이해해주지 않는다. 오늘의 신제품이 내일이면 구닥다리가 되는 세상이다. 시대가 원하는 인재는 10만 주어져도 일단 시작하고 10으로도 100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업무를 함께할 때, 나는 종종 ‘내 것이 더 잘 먹힐 텐데’라고 속으로 되뇐 적이 있다. 대학 때도 그랬고, 취업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내 것을 밀어붙여 결과물을 만들어본 기억은 많지 않다. 내 기질이 싫으면서도, 결국 거기에 이끌려 다닌다. 누군가와 부딪히고 논쟁하고 치열하게 싸우는 게 두렵다. 그 밑바닥에는 사람에 대한 공포와 나 자신에 대한 불확실함이 깔려 있다.
나는 상대의 의견을 내 것보다 우선시한다. 심지어 그 의견이 분명히 틀렸을 때조차도, 나는 거기에 적당한 힘을 실어준다. 어쩌면 그 의견을 낸 사람도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오지랖일 수도 있고, 동시에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지 않게 하려는 행동이다. 진심이 아닌 만큼, 비겁하다.
내 의견을 누군가에게 관철시키는 일, 타인의 의견을 밟고 내 것을 위에 올리는 행위는 어렵다. 그걸 두려워하는 게 잘못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해봐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사람에 맞춰주는 성향이라, 정작 부딪히기 전에 발을 뺄 가능성이 크다. 두꺼운 가면을 쓰고 살아온 탓에, 내 맨 얼굴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겁난다. 나는 그렇게 늘 쥐고만 있다.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한 채.
A는 버리고 나아간다. 나는 버리지 못하고 멈춰 있는 것 같다.
그의 모습을 부럽게 쳐다만 보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내려놓지 못하면 언젠가 폭싹 주저앉게 된다. 이젠 버려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