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잠깐 이리 와 봐.” 선배가 나를 불렀다

그날, 처음으로 내일 출근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by 완작가
5화. 나를 만든 순간들.png 식어버린 커피 캔을 보며 선배의 말을 곱씹다


나는 쓸모 없는 놈이 아니야



다음 날 아침, 회사로 향하는 발걸음은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죄수와 같았다. 밤새 수십 번도 더 퇴사를 고민했다. 하지만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따뜻한 아침밥을 차려주시는 어머니의 얼굴이 아른거려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사무실에 도착한 나는, 투명인간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선배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의 침묵이, 어설픈 위로나 질책보다 더 무섭게 나를 짓눌렀다. ‘오늘 안으로 불려가서 잘리겠구나.’ 그렇게 체념하며 의미 없이 모니터만 보고 있을 때였다.


“어이, 신입. 잠깐 이리 와 봐.”


선배의 목소리였다. 올 것이 왔구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쭈뼛거리며 그를 따라나섰다. 선배가 향한 곳은 회의실이 아닌, 옥상으로 향하는 비상계단이었다. 낡은 철문을 열자, 회색빛 도시의 풍경과 서늘한 바람이 나를 맞았다.


선배는 말없이 자판기에서 캔 커피 두 개를 뽑아, 하나를 내게 건넸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커피 캔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먼저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아 입을 열었다.


“선배님, 어제는 제가 정말…”

“마, 됐다. 어제 일은 고마 잊고.”


선배는 내 말을 잘랐다. 나는 더욱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니 어제 하루 종일 죽상이더만.”

“……”

“근데, 내가 어제 니가 정리한 거 다시 보니까,”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실수는 했는데, 이 부분. 제품 스펙 비교해놓은 표 있다이가. 이건 생각보다 정리를 꽤 잘했더라. 한눈에 딱 들어오게. 다음부터는 이 표처럼만 해라. 꼼꼼하게. 알긋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선배는 나를 꾸짖고 있지 않았다. 그는 나의 실수를 덮어주면서, 그 안에서 아주 작은 가능성을 찾아내어 내게 건네주고 있었다. ‘너는 쓸모없는 놈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따뜻한 온기가, 차가운 커피 캔을 쥔 손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기 위해, 나는 아무 말 없이 커피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커피가, 유독 짜게 느껴졌다.


자리로 돌아온 나는, 처음으로 내일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다른 감정을 느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벨이 울렸다. 선배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며 “밥 묵으러 가자”고 외쳤다. 나는 함께 가고 싶어 내심 그들이 나를 불러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끼리 뭉쳐, 누구 하나 내게 “같이 가자”고 말해주지 않고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어제 내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아직 어색한 것일까.


뻘쭘하게 앉아 있던 나는, 결국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끌벅적한 식당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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