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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공유 Nov 15. 2019

용띠와 돼지띠는 상극이라던데?

feat. 시어머니

                                       

  나의 시어머니, 고영자 여사에 대해 쓰려면 그녀의 형제들부터 훑고 와야 할 것 같다. 고영자 여사네는 이북이 고향이고 칠형제다. 모두 봉평에서 자랐고, 지금은 서울 여기저기에 잘 살고 있다. 모두 영민하고, 순박하면서도 강단이 있다. 그러니까,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순박한 농사꾼 같은데, 강한 중심이 느껴진다.

  어머니는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군인인 남편의 적은 월급을, 애 셋을 키우면서도 살뜰히 모아 노후의 안정적인 생활을 확보했다. 시아버님 댁은 가난했고, 시할머니께서는 아들 가진 유세로 각종 행사마다 돈을 요구하셨다 한다.

  어머니는 새어나가는 돈이 많았음에도 적은 돈을 굴려 집도 사고 땅도 꽤 있으니, 살림살이를 얼마나 아끼고 사셨을지 짐작이 간다.




  규니를 임신했을 때, 카레를 한솥 끓이다 양수가 터졌다. 한솥 끓인 카레가 아까워 이천에서 수원까지 카레를 배달받아 드셨다고. 왕복 기름값이면 카레를 끓여먹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집에서 버리는 음식물이 생기면 ‘냉동실에 얼렸다 가지고 오라.’고 하신다. 개에게 줄 거라고 하시면서. 저런 말을 들을 때면 귀를 의심했다. 신랑은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사람이고 그의 누나 또한 그렇다. 시누는 예식장에서 비닐팩을 꺼내 간식을 싼다. 시매부는 그러는 모습이 싫다며 외면한다. 그러니까, 그 집 사람이 아니었던 나와 시매부는 그럴때마다 낯설음을 느낀다.

  시매부는 내 속을 벅벅 긁어준다. “어머니, 며느리 오면 밥은 사서 드세요. 며느리가 일해야 하는 거 부담스러워요.” 티낼 순 없지만 사이다 같다. 아 얘기가 새어버렸네. 그런 시매부와 12년을 살아서인지, 시누이도 이제는 어머니의 지나친 검소함을 경계한다. 신랑 또한 어머니에게 요즘 세상에 대해서 주입시키는 편이다.

  결혼 초보다 지금은 많이 매끄러워진 우리 관계지만, 여전히 우리는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다.


EP. 어머니는 청소 안 하는 며느리가 못 마땅 하지만 몇 번을 이야기해도 나는 눈치가 없다. 어머니 화법은 이런 식이다. 청소하지 않는 며느리에게 청소 좀 하라고 돌려 말씀하시는 편. 내 머리카락들을 훑으며

시어머니 : 너는 어디 가서 도둑질은 못하겠다. 머리카락이 이렇게 흘르니 말이다

나 : 맞아요 어머니 어우 전 왜 이리 털갈이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나마 머리에 숱이 많아 얼마나 다행인지 하하


EP. 정수기 점검하시는 코디분이 우리 방에 들어왔는데, 평소 방 정리 안 하는 나를 겨냥해하신 말씀

시어머니 : 정수기업체에서 왔는데 집이 엉망이라 내가 쪽팔렸어

나 : 하하 원래 저희 집 자주 오시던 분이라 아마 익숙하실 거예요.

    괜찮아요.     


EP. 방을 걸레로 훔치며 아이에게 하는 말

시어머니 : 규니가 여기 드러눕고 하는데 하도 먼지가 많아서 할머니가 싹 닦았어. 집이 아주 지저분해

나 : 어쩐지~ 바닥이 뭔가 자근자근한 게 없이 매끈매끈해진 거 있죠?  아, 어머니 계시니깐 좋네요     


EP. 어머니가 내 차 에 타실 때, 조수석 바닥에 있는 커피잔들과 각종 과자 껍데기, 휴지 등을 보면서 하는 말

시어머니 : 어이구 며느리 차가 아주 쓰레기 장이네. 분리수거도 안되어 있어. 깔깔

나 : 푸하하! 그러게요. 저는 왜 이렇게 정리가 안될까요? 이 쓰레기들이요 뒷좌석으로 갔다가 더 있으면 봉투에 담긴 채 트렁크로 가게 돼요. 그런 봉투들을 몇 달 동안 까맣게 잊은 적도 있어요. (시어머니는 나랑 깔깔대고 웃는다)     


EP. 어머니께서 우리 동네 한의원을 다니신다. 나는 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기 전부터 잡아놓은 약속이 있었고, 그날은 한의원 진료 후 모시러 갈 수가 없던 날. 어머님께 약속이 있음을 말씀드리고 한의원에 내려드리자

시어머니 : 오늘은 침 맞고 슬슬 집에 걸어갈 테니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약속 다녀오너라.

나 : 네 어머니~ 오늘 오래간만에 공기도 좋으니 걸어오시기 딱 좋을것 같아요.     


EP. 어머니께서 시할아버지 형제의 손녀 결혼식에 우리를 부른 적 있었다. 신랑이 일주일에 하루 쉬는 금쪽같은 주말에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예식장. 비좁고 사람이 많아 앉을 수도 없었다.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를 쫓으려 정장에 구두를 신고 이리저리 뛰다 보니 땀이 삐질삐질 났다. 그런 나를 보자 신랑은

“앞으로 이런 자리에는 나만 올게”라고 하길래 바로 어머님께 건의했다.

“어머님 신랑이 성수기 때는 일주일에 하루 쉬는 것도 힘들어요. 저희 가족이 주말에 같이 보내는 시간도 귀한데 도로에만 네 시간을 쏟고, 앉을자리도 없고 굳이 저희까지 오지 않아도 되는 경조사라면 앞으로는 어머님과 아주버님만 참석하시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저리 내 의견을 말하기까지 울퉁불퉁한 자갈밭을 운전하듯 많이도 휘청했었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던 결혼 전과 결혼 2년간의 내용이다.     


EP. 출산 후 한껏 예민한 어미 개마냥 날이 서 있던 시기. 그런 나를 보고 하신 말씀.

시어머니 : 그래. 아기 낳은 게 아주 벼슬이구나?     


EP. 출산 후 산후조리 중인 내게 정말 뜬금없이

시어머니 : 내가 아는 스님이 있는데 가서 앉기도 전에 다 아신다. 너 바람이라도 피우면 다 알게 되니 조심해라

어머니 눈에는 20킬로나 체중이 증가한 내 모습마저 이뻐 보이셨나 보다(좋게 생각해야지...)   

  

EP. 같이 여행에 관한 티브이를 보는데 어퍼컷이 훅 들어왔다.

시어머니 : 너는 제주도에는 누구랑 갔었니? 남자 친구랑 갔니?

나 : 회사 워크숍으로 갔었어요. 저는 신랑이 첫사랑이에요. 호호

시어머니 : 멍텅구리처럼 연애도 안 해보고 결혼했니~? 나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한다? 남자 좀 많이 좀 만나보지 그랬니?

나의 속마음 : (네 어머니 만나기는 참 많이도 만났어요. 다행이죠잉?)     


EP. 나는 요리를 잘한다. 다양한 식재료도 많이 구비해 놓는 편이었다. 내 산후조리를 해주러 오셔서 대량의 식재료를 보고는 흡족해하며 하신 말씀

시어머니 : 나는 네가 아주 맘에 든다. 하다 하다 이제는 1kg짜리 카레를 사는 것까지도 마음에 들어.

그 이후로 나는 묘한 반항심리(?)가 발동해 소포장 카레를 선호하게 되었다.     



EP. 조카며느리가 결혼 6개월 만에 출산을 했는데 그 다음 해 명절에  대뜸 그녀에게

시어머니 : 그 날씬한 몸에 어떻게 아기가 있었대 식장에선 전혀 몰랐네~? 누가 임신했다 생각했겠어? 깔깔

 조카며느리의 굳은 얼굴을 보았고, 집에 와서 신랑에게 말했다. 신랑이 어머니에게 한차례 업데이트해서 어머니도 행동 교정을 하심.      


EP. 시어머니는 작은 집 두채를 갖고 있다. 세입자에 방을 내주기 전 직접 도배도 하는데 세입자의 여동생이 방문했나 보다. 어머니를 도배하는 분이라 생각하고서는 그 여동생이 신랄하게 집주인흉을 봤다고 한다. 어머니는 내색도 않고 “예~ 그렇군요. 그러게나 말이에요. 집주인도 참 웃기네요.”하고 맞장구치셨다고... 후에 들어온 세입자가 여동생의 팔을 낚아채며 데리고 나갔다고...     



EP. 검소하고 겉모습에 신경을 안 쓰는 편. 한 번은 동네에서 말 많은 한분이 어머니의 남루한 행색을 흉보면서 어머니가 여기저기 돈을 꾸러 다닌다는 거짓말까지 퍼트리고 다녔다고 한다. 어머님은 그런 사람에게 한마디도 대응하지 않고 그런 말을 전해주는 동네 사람들에게 “예예 그렇지요 뭐~” 했다고 한다. 한참 후에 그 아주머니를 찾아가 땅문서를 보여주면서 “제가 땅을 좀 샀는데요. 까막눈이라 글씨를 못 보겠어요. 제 땅문서가 맞다고 써졌는지 한번 봐주실 수 있나요?”하며 그 아줌마 입을 막았다고.      



  비범한 어머니가 역시 비범한 며느리를 맞았으니 잘 맞으면서도 아슬아슬할 때도 있는 우리 고부사이는 이렇게 주욱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직설적인 화법을 가진 며느리로서 최대 장점을 꼽으라면, “뒤에서 시어머니 욕 안 합니다” 일 것이다. 시댁과 여행이나 행사도 이왕이면 즐겁게 하자 생각해 확실하게 준비한다. 일년에 두번 시댁 식구를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한다. 모두 참석하면 열명 정도 되는데 우리 집에서 일박과 함께 오락, 음식거리를 챙긴다. 묵힌 감정이 없으니 같이 있어도 불편한 마음이 덜 하다.     

  전에 잡지를 보다가 띠궁합을 봤는데, 어머니와 내 궁합을 보니 상극 중 상극이었다. 어머니는 용띠, 나는 돼지띠인데 용은 자신이 고결하다고 믿기 때문에 진흙탕에서 뒹구는 돼지를 보며 지저분하고 천하다 느낀다나?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난 잘 씻지 않는 편인데 어머님은 그런 나를 보면서 “내가 아기 봐줄게 씻어라.”라고 말하신다. 그럼 나는 “어머, 어제 샤워해서 오늘은 양치만 할 건데요?” 라던가, 외출 후 돌아와서는 발만 겨우 씻는 나를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어머님표 풍성한 식탁에 마음을 빼앗겨 그녀와 현관 비밀번호를 공유하는데, 뒤늦게 공부를 하러 다니는 며느리를 대신해 아이도 봐주고 저녁도 차려주신다. 한 번은 밤 열한 시에 밥도 못 먹고 공부하다 귀가 한 날, 머리가 핑핑 돌고 눈이 감겼다. 당장 자고 싶었는데, 어머님 성화에 못 이겨 겨우 입에 떠 넣은 우족탕 한 그릇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내 몸을 돌보지 않았더니 그야말로 밥심의 효과를 본 것. 이후 어머니는 밥을 안 먹는 며느리가 걱정된다며 각종 보신 재료들을 사다 해주신다. 그런 어머니께 나는 며느리와 시어머니외에 결이 다른 종류의 의리가 생기는 중이다.


  산후조리할 때 직접 뜯은 쑥을 말려 몸을 씻어주셨는데, 눈물이 흐르는지 쑥이 흐르는지 욕탕에 앉아 부끄러움을 잊은 채 씻기는 쑥물을 바라봤다.


아들 대신 며느리 좋아하는 음식을 한 솥 준비해 두고 가는 어머님께 감사한 마음과 함께 이제는 아늑함까지 느껴진다. 그리 따뜻하지 못한 며느리지만 그럴 때마다 “가식적이지 않아 좋다.” 이야기하는 어머니. 그녀가 자신의 삶을 존중하며 나날이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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