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추운 베란다에서 이사 가는 날

by 왕드레킴

그야말로 대박이 터졌다.

나의 예상은 적중했고 내가 좋아하는 만큼, 주변의 지인들도, 그리고 SNS를 통해 '왕드레킴'을 알게 된 사람들도 나의 햄프 가방에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니 열광하기 시작했다.

햄프 원단을 주문하고, 마침내 엘리자베스 여왕의 우표가 붙어 있는 박스를 받았을 때의 기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어떤 명품백을 직구했을 때보다 더 설레고 기뻤다. 100년이 넘은 유럽의 햄프가 긴 여정을 거쳐 한국 강릉, 그것도 사천면 판교리에 도착한 것이다.

다행히 원단의 상태는 양호했다. 얼룩이나 작은 구멍이 있어도 전혀 불만이 없었다. 세기를 건너온 원단이라면 그 정도의 흠조차 아름다웠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빨리 판매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 원단으로 무얼 만들 수 있을지,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너무 궁금했다. 아이들 저녁을 차리고, 집안을 정리하면서도 온통 머릿속은 디자인 생각뿐이었다. 머릿속에서 가방이 그려지고, 손끝이 근질거렸다.


틈만 나면 가방을 만들었고, 만든 직후 바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그러면 5분도 안 되어 “살 수 있나요?”라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신기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이상했다.

신보를 낸 아이돌처럼, 나의 햄프 가방은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주라비 사장님도 계속해서 주문을 하셨는데, 나의 첫 가방을 구매하셨던 삼척의 손님이 지인들에게 입소문을 내 주라비를 통해 가방 문의가 빗발쳤다. 사장님은 나를 “사천에 사는 어떤 아뜰리에 장인”이라 소개했다고 한다. 갑자기 장인이라는 칭호까지 받다니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더 멋지고 예쁜 가방, 진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지인들 사이에서도 내 가방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오랜만에 연락 온 친구는 "온라인에 올리기 전에 먼저 보여줘!"라며 지인 찬스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난 두 아이의 엄마였다. 두 살, 다섯 살. 육아만으로도 하루가 벅찬, 평범한 엄마였다.

밤 9시, 아이들을 겨우 재우고 나면 남편은 뉴스를 모니터링했고, 나는 베란다에 있는 작은 작업실로 향했다. 주문을 다 소화하려면 밤에 일할 수밖에 없었다. 한 밤중 작업실로 출근해 불을 켜는 순간, 나의 또 다른 하루가 다시 시작됐다.

새벽 1시, 2시는 기본이었다. 꼴딱 밤을 새우는 날도 많았다. 피곤했을 텐데, 그때는 피곤을 몰랐다. 밤새 마법처럼 완성한 가방을 아침에 ‘짜-잔!’ 하고 업로드할 생각에 밤샘조차 즐거웠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주문이 늘수록 베란다는 점점 좁고 추웠다. 작은 히터를 발 밑에 두고 수면 양말을 껴 신어도, 손은 여전히 시렸고, 두꺼운 햄프를 자를 때마다 손가락 관절이 욱신거렸다. 작업량이 많아질수록, 나에게는 더 큰 공간과 복지가 필요했다.

넓은 정원이 있는 주택에 살고 있었지만 남는 방도 이렇다 할 공간도 없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정원 한쪽에 컨테이너를 두고 작업실로 사용하면 어떨까?"

남편의 제안에 솔깃했다. 중고 컨테이너를 들이면 공방처럼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작업시간은 대부분 밤. 아이들이 자다 깨서 엄마를 찾거나, 중간에 기저귀를 갈아야 할 수도 있는 시기였다. 컨테이너가 아무리 근처라도, 집과 떨어진 공간에 있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난 가방 디자이너이기 이전에, 엄마였다.


고민하는 나에게 "놀이방을 작업실로 바꾸면 어때?"

남편의 발언은 꽤나 쇼킹했다. 아이들 공간을 나에게 내어줄 생각을 하다니.

200만 원만 빌려달라 했을 때도 1초의 망설임 없이 흔쾌히 허락했던 그가, 이제 아이들의 놀이방을 포기하자니. 마치 회사 사장님이 날 디자인 실장으로 발탁한 듯한 느낌이었다.

난 뛸 듯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들의 놀이 공간을 뺐는다는 생각에 미안하기도 하고 그 많은 장난감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도 막막했다. 2층은 아이들이 아직 어려 위험할 수 있어 결국 아이들 장난감을 거실로 옮기기로 했다. 심플하고 깔끔했던 거실은 놀이매트와 장난감 수납함으로 가득 찼다. 여백은 사라지고 거실은 어린이집이 되었지만 난 더 이상 춥지도 않고 주방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재단하지 않아도 됐다.

드디어 4평짜리 나만의 작업실이 생겼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3화2. 엄마의 이중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