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시 여름 나라로 가고 있다.
다행히 폴란드도 코로나로 인한 마스크 의무화를 해제한 상태라 덥지만 답답하지는 않겠다.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 폴란드를 들르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비행기 표가 저렴해서,,,
물론, 마일리지 보너스 항공권으로 티켓을 구매하긴 했지만, 이것도 세금은 내야 하는데 동유럽 국가인 폴란드는 다른 유럽 국가와 비교했을 때 상당히 저렴하다.
서유럽권, 예를 들면 파리나 런던,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경우 4인 가족 항공 세금은 100만 원 ( 1인당 25~30만 원)을 훌쩍 넘긴다. 반면, 폴란드의 도시를 경유해서 한국까지 LOT ( 폴란드 항공)를 이용하는 경우 4인 가족 40만 원 ( 1인 10만 원 )이면 예약이 가능하다. 게다가 동유럽 국가를 경유하면 비행시간에도 부담이 없다. 보통 서유럽 국가와 한국 간의 비행시간이 13시간 이상인데 동유럽 국가를 경유하면 한 구간당 10시간 이하라 확실히 피로감도 덜하다. 이런 이유로 우리 가족은 이미 두 번이나 폴란드를 경유한 경험이 있다. 일반적으로 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를 경유하는데 이미 바르샤바 여행을 해본 우리는 마지막 경유지를 다른 곳으로 정해보자며 의견을 모았다.
첫 번째 후보는 남서쪽 지역에 있는 크라쿠프(Kraków)였다.
신랑은 크라쿠프로 들어가서 오시비엥침(아우슈비츠라는 이름으로 익숙한...)를 둘러보자고 했다. 난 아이들이 아직 어린 편이라 좀 걱정이 되었다. 박물관 홈페이지에도 들어가 보고 현지 투어 여행사들에 문의해본 결과 11세 어린이도 관람은 가능하나 다소 잔인하고 충격적인 곳들이 많아서 추천하지 않는다는 답변이었다. 독일~아이슬란드까지 즐거운 여행의 추억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가려는 동선에 암울했던 세계 역사의 그늘은 아이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을 거 같아서 우린 다른 도시들을 검색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꼭 방문해 보아야 할 곳임에는 틀림이 없다.
또 다른 후보지는 우쯔 (Łódź)였다. 작은 마을에 불과했던 우쯔는 20세기 섬유공업이 발달하면서 인구가 급격하게 늘고 현재는 폴란드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로 성장했다고 한다. 우쯔에 가면 문화 도시답게 다양한 동유럽의 현대 문화를 접할 수 있다고 했지만, 우리가 선택한 도시는 '그단스크(Gdańsk)'였다. 그단스크는 발트해에 면한 폴란드의 항구 도시다. 한때는 가장 부유한 폴란드의 도시였다고 하고 독일과 네덜란드의 영향을 많이 받은 문화가 발달했다고 해서 매력이 있었다. 이곳에서 3주간의 여행을 차분히 정리하기로 했다.
저가 항공사 Wizz 항공을 타고 비행시간 3시간 30분, 8월 26일 새벽 3시 30분에 그단스크 공항에 도착했다. 새벽 비행기이기도 했고 스톱오버로 딱 15시간의 시간이 주어져 있어 숙소는 공항 바로 앞 Hampton by Hilton으로 잡았다. 숙소에 얼리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가자마자 아침 9시에 일어나기로 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스톱오버를 잘 이용하려면 컨디션도 잘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 아름다운 항구 도시, 그다인스크>
9시 알람에 눈을 떠보니 밖은 이미 해가 쨍쨍이다.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 트렁크를 열고 새롭게 정비를 했다. 따뜻하게 입었던 옷들은 다시 수화물용 트렁크에 넣고 여름옷들을 꺼내고 등산화도 접이식 가방을 펼쳐 넣고 크록스를 꺼냈다.
새벽에 도착해서 못 느꼈는데 호텔 밖을 나와보니 세상에 덥고 습하다. 우린 10도의 겨울 나라에서 다시 27도의 여름 나라로 시즌 이동을 했다. 아이들은 숨이 막히고 덥다고 야단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어느새 추운 북유럽 날씨에 적응되어 호들갑이다.
걱정하지 말아라. 얘들아~
우린 또 금방 적응하게 될 테니.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연습이란다.
휴식을 취한 후 우린 택시를 타고 올드 타운으로 갔다. 폴란드에 오니 날씨만 달라진 게 아니었다.
달라진 게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물가!
저렴하다.
싸다.
택시비도 저렴한 편이지만 에어컨 작동이 제대로 안 되는지 후텁지근하고 냄새가 좀 나긴 했다. 공항에서 우리의 목적지는 올드타운까지 17km 정도로 택시비는 17,000원 정도 지불했다.
울퉁불퉁 수백 년 된 돌이 박힌 마차가 다닐법한 올드타운 길 양쪽으로 컬러풀하고 예쁜 동화 속 건물들이 여행을 처음 시작했던 독일의 빌링엔슈베닝엔과 많이 닮았다. 이곳 드우가(Długa) 거리에서 시작되는 구시가지의 롱마켓은 많은 관광객으로 분주하다. 길가 양쪽에 기념품 매장과 아이스크림 가게 등 상점들이 들어서 있고 노점에서는 호박 보석 (Amber)를 파는 상인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엄마도 하나 골라 보라는 아이들의 성화에 그냥 구경만 하다가 시어머니랑 친정 엄마 선물로 엠버 귀걸이를 하나씩 골랐다.
호박(Amber)은 송나무의 열과 압력에 의해 굳어지면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자연적으로 나무 수액이 굳어져서 호박으로 만들어지기까지 거의 100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주로 발트해 연안 지역에 호박 광산이 있어 보석을 채굴하기 때문에 발트해와 맞닿아 있는 그단스크 지역이 유명하다고 한다.
날이 더우니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당긴다. 소프트아이스크림이 1,400원 정도 하는데 물가 비싼 나라에 있다 와서 그런지 엄청 저렴하게 느껴진다. (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저렴한 소프트 콘은 1,500원 정도 했던 거 같다.) 길거리에서 연주하는 악사들, 큰 벌룬 꾸러미를 들고 다니며 어린 고객들을 부르는 상인들,,, 문득 한국으로 돌아가도 여기처럼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고 일상을 즐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계속 걷다 보니 롱마켓을 지나 그린 게이트 (green gate)가 나온다. 그린 게이트는 올드 타운 끝에 있는 문인데 이곳을 통과하면 모틀라와(Motława) 강변에 도착한다. 항구 도시답게 강변도 발달해 멋진 관광지로써 유럽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듯했다. 대부분의 유명 레스토랑과 호텔 등도 이 강가 주변에 모여 있다. 강물 위엔 관광객을 태운 큰 해적선도 있고 고급스러운 요트 형태의 배도 떠 있다. 오른쪽에선 택시 모양의 모터보트가 너무 귀엽게 지나간다. 날은 더웠지만, 우리도 보트를 타보기로 했다. 가림막 없이 햇빛이 내리쬐는 보트 안은 뜨거웠지만, 간간이 불어오는 강바람과 잠깐씩 만들어지는 건물의 그림자가 소소한 행복을 만끽하게 해 주었다.
아이슬란드에서 비싼 외식 물가 때문에 제대로 된 외식 한번 못하고 여행 중에도 계속 주방에서 식사를 담당했다. 물가가 저렴한 나라에 왔으니 오늘은 자신 있게 외식을 하자고 제안했다. 스테이크 요리로 거하게 배를 채우고 서로의 여행 소감도 나누었다.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일정까지 건강하고 즐겁게 임한 우리 가족. 13살 지환이와 10살 려환이는 이번 여행을 통해 한 뼘 성장했겠지? 큰 성장을 기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모험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모습은 영어나 수학학원에서 배워 성장해 나가는 것과는 확실히 큰 차이가 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빠 왈 "우리 가족은 여행을 많이 다녀서 너희들 학원 보내 줄 돈이 없다. 여행이 재산인 셈이야. 그러니까 학교 공부 열심히 하거라~~"
엄마 왈 "얘들아~ 우리 한국에 돌아가면 또 학교생활 열심히 하고 즐겁게 지내보자. 우리의 일상도 여행처럼 말이야"
그날 저녁 그단스크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바르샤바 공항에서 귀국을 위한 '코로나 신속 항원 검사'를 받았다. 오랜만에 코를 찔러본다. 그리고 다시 마스크를 하고 귀국편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