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와서 처음으로 잠을 설쳤다.
피곤했음에도 오로라에 대한 1%의 기대감 때문인지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슬란드를 떠나기로 한 아침이 밝았다.
원래 여행 첫날 일정에 있었던 블루라군은 화산 트레킹으로 일정 마지막 날로 옮겨지게 되었다.
(다행히 예약 홈페이지에서 일정 변경은 무료로 가능했다.) 블루라군에서 온천욕을 한 후 바로 공항으로 가는 걸로 일정을 잡아서 아침 일찍 짐을 챙겨 블루라군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숙소를 나왔다.
아침 공기가 상쾌하다. 멀리 하버에 정박해 있는 크루즈를 보니 벌써 다음 여행지는 어디로 가면 좋을까 하고 고민을 하게 된다.
잠시 후 Bus Stop #14 - Skúlagata에 작은 미니밴이 도착했다. 생각보다 작은 버스라 의아했는데 이 버스는 몇몇 정류장에서 사람들을 모아 Bus Hotel로 가는 셔틀이었다. 그곳에서 다시 블루라군으로 가는 전용 버스로 갈아타고 바로 출발했다.
전용 버스는 천장까지 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이 버스 안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환상적일까?' 하고 잠이 덜 깬 양 중얼대는 나 자신이 우습기도 하다. 아직도 미련이 남았단 말인가? 내가 이렇게 끈질긴 사람이었나? 아무래도 수년 안에 오로라를 보긴 봐야겠다.
시내에서 블루라군까지는 45km, 약 45분이 소요된다. 외곽으로 나와 블루라군이 있는 그린다비크 방향으로 접어드니 주변은 다시 외계 행성의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화산이 폭발해 만들어진 화산암들과 그 안에서 피어난 이끼 식물들. 조금 더 달리니 멀리서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보이는 게 거의 도착한 느낌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대형 아이슬란드 국기가 파란 하늘 아래 춤추고 있다. 이 자연 한가운데 만들어 놓은 초대형 온천이 이들에게는 얼마나 큰 자랑거리일까?
수화물 등의 큰 짐을 어디에 보관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주차장 바로 앞에 설치된 대형 수화물 보관소가 마련되어 있다. 무거운 캐리어들을 맡기고 나니 홀가분하다. 주차장에서 온천 입구로 들어가는 길은 용암지대를 관통하는 보행로 느낌으로 디자인했는데 200미터 정도를 쭉 따라 들어가는 동안 화산석이 높게 쌓여 있어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많은 사림이 버킷 리스트에 담아 놓은 아름다운 온천.
블루라군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전 세계 25대 관광 명소 중 한 곳으로 소개되었고, 유명 여행 잡지인 '콘데 나스트 트래블러'는 전 세계 10대 스파 중 한 곳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2018년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관광지에 명단을 올리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고 많은 사람의 버킷 리스트에 오르게 되었다.
특히, 가고 싶은 신혼여행지로도 손꼽히는 이곳을 난 가족여행을 하기에 좋은 장소로 선정하고 싶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수질의 우수성과 유명세 탓에 입장료 또한 만만치 않은데 13세 미만은 무료입장이기 때문이다. 입장료에 포함된 실리카 머드팩과 음료 쿠폰도 동일하게 제공된다.
성인들은 맥주를 마시고 아이들은 슬러시를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는데 온천을 하며 마시는 맥주도 꿀맛이지만 아이들에게 온천수보다 더 파란 소다맛 슬러시는 그야말로 천상의 맛이겠다.
시원하게 목을 축였으니 이번엔 실리카 팩을 하러 갔다. 실리카는 규소와 산소로 구성된 용암의 구성 성분으로 지하 깊은 곳의 지하수와 지열 해수와 결합하여 만들어진 블루라군만의 보물이다.
천연 미네랄이 섞인 백색 실리카를 스태프들이 한 주걱씩 손에 나누어 주면 각자 얼굴과 목에 하얀 팩을 바르고 온천을 왔다 갔다 하는데 강시처럼 얼굴이 하얗게 된 사람들은 서로 보면서 미소로 인사를 나눈다. 어떤 대머리 아저씨는 얼굴부터 머리까지 전체에 하얗게 발라 주변인들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실리카 팩은 10~20분 정도 지나고 그냥 온천수로 세수하면 된다. 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머드팩까지 하고 있지만, 수질은 상당히 깨끗하다. 물이 계속해서 블루라군으로 흘러들어오는 구조이기 때문에 40시간이 되면 전체 용수가 완전히 교체되어 언제나 깨끗한 수질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성인 입장료가 10만 원을 훌쩍 넘는데 동반하는 아이들에게 이 모든 서비스가 무료라니 매우 훌륭한 옵션이 아닌가?
다만 내부에서 판매하는 음식이 상당히 비싼 편이라 꼭 간단한 도시락은 챙겨야 한다. ( 예약 당시 검색을 해보니 먹을 만한 도시락 1팩이 2~3만 원대였으니 우리 네 식구가 한 끼 먹으려면 만만치 않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 우리 가족은 샌드위치와 몇 가지 과일로 런치 박스를 준비해 갔다. 1층 식당 테이블은 외부 음식 취식이 금지라 2층 휴게실로 갔는데 자리도 한가하고 여유로워 편하게 식사할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지만, 오늘 기온은 영상 10도 미만이다. 데크 위 안전요원들은 모두 두꺼운 파카를 입고 있다. 한 스텝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더니 가족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한다. 그 스텝은 우리의 대화를 보고 한국 사람인지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러면서 본인이 영국사람인데 손흥민 선수의 열렬한 팬이라고 했다. 요즘은 해외에 나가면 종종 우리나라 스포츠 선수나 유명 연예인들 덕분에 수월하고 친절한 서비스를 받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손흥민 선수 덕분에 우리 가족은 블루라군에서도 예쁜 가족사진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어릴 적 가족들과 워커힐 수영장에 가끔 놀러 갔다. 넓은 수영장에 유수풀이 있었는데 깊지도 낮지도 않은 도넛 형태의 유수풀의 흐름에 몸을 맡겨 둥둥 떠다니며 즐기던 장면이 가끔 생각날 때가 있다. 온천은 아니었지만, 가족이 함께 모여 편안하게 즐겼던 장면이 한 장의 사진처럼 머릿속에 진하게 남아 있는데 따뜻한 온천에서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여기저기 탐색하듯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우리 아이들도 성인이 되어 행복한 장면으로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지난번 미바튼 온천에 방문했을 땐 려환이 가 많이 힘들어했는데, 다행히 블루라군은 천연 온천수임에도 유황 성분이 많지 않아 냄새 도깨비(유황냄새)가 살지 않았고 온천 최적의 온도라는 38도의 실리카 미네랄이 듬뿍 함유된 온천수는 아이슬란드를 마감하는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
Some people came to the water for healing. Others for pleasure. But all who came, left with a profound sense of wonder.
어떤 사람들은 치유를 위해 왔고, 또 어떤 사람들은 즐거움을 위해 왔습니다.
그러나 방문한 사람들은 모두 깊은 경이로움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BLUE LAG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