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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드레킴 Jan 09. 2024

화력발전소에서 관광도시로 (호주-뉴캐슬)

우리 가족은 학원 대신 여행 간다(호주 편)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 뉴캐슬이라는 팀이 있다. 일반적으로 축구팀은 각 지역의 명칭을 따서 만드는데 뉴캐슬은 영국 남부 지역에 있는 지역이다. 호주에서 온 진이와 율이를 만났을 때 호주에도 뉴캐슬이라는 도시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러고 보니 호주에 유난히 영국 도시들의 이름을 그대로 쓰는 도시와 거리의 이름들이 많은 걸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알게 되었다. 뉴캐슬은 호주의 뉴사우스웨일스 주 일대의 공업 중심 도시로 시드니 남쪽의 포트 킴블리와 함께 호주의 공업화를 담당하고 있다. 광공업이 흥했던 영국의 뉴캐슬이 정신적 모체라서, 시내의 주요 지명이나 도로명도 영국과 같은 게 많다. 헌터강어귀 태평양에 면해있는데 와인으로 유명한 헌터밸리도 축복받은 호주의 기후와 헌터강의 입지로 유명해졌을 것이다.

뉴캐슬은 호주 최대의 석탄공업 도시이자 해양도시이다. 태평양 바다를 면하고 있어 선박산업의 요충지 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세계 2차 대전으로 전 세계가 들썩일 때 안전했던 호주의 땅에서도 포탄이 터지기는 했었다고 한다.


시드니에서 차로 2시간 남짓거리에 있는 뉴캐슬을 첫 번째 여행지로 고른 이유는 진이와 율이를 만나기 위해서다. 호주에서 태어난 쌍둥이 진이와 율이는 강릉이 고향인 엄마를 따라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고 강릉에서 초등학교 생활을 반년정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렇게 들어온 학교가 려환이가 다니는 작은 학교였다. 한 학년 한 반인 이 작은 학교에 단기 전학을 온 한국어가 서툰 이 쌍둥이 호주 친구들은 금세 아이들의 주목을 받았고 함께 친해지는 건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학교 아이들은 호주국적을 가졌지만 한국말을 잘 못하는 진이와 율이에게 한국어 선생님이 되어주고, 또 진이와 율이는 학급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영어 선생님이 되어 주기도 했다. 아이가 다니는 작은 학교 운양의 특징 중 하나인 '반모임'이 열렸다. 한 달에 한번 담임교사와 학부모들이 저녁에 모여 한 달 동안 있었던 아이들이 학교 생활 이야기를 나누고 또 고민해 보는 아주 좋은 활동 중 하나인데, 이 모임에 진이와 율이 엄마도 참석을 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두 번째 반모임이 끝날 무렵 진이&율이 엄마가 신랑에게 다가오더니 인사를 한다.

"선배님?!?! 과학고 강규엽 선배 아니세요?"

"저,, 3기 최보배예요."


"어??? 오잉? 아니 여기 어떻게.... 호주에 공부하러 갔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호주에서 공부를 마친 그녀는 대학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이번에 안식년 휴가를 받아 한국을 찾았다고 한다. 호주도 자연주의 교육을 중시하는 환경이라 자연스레 아이들을 데리고 바다와 산이 있는 고향 강릉을 찾았고 집에서 가까운 운양으로 단기 전학을 올 수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6개월의 짧은 시간이지만 간간히 호주의 육아와 교육에 대해서도 들어볼 수 있는 흥미진진한 시간이 이어졌고 지난겨울 호주로 돌아가는 진이와 율이 에게 머지않아 꼭 호주를 방문하게 되면 연락하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그렇게 마음에 담아놨던 진이와 율이 가족을 만나러 가기 위해 시드니 중앙역에서 기차를 탔다. 기차는 급행이 아닌 우리나라 '무궁호'와 같은 완행이라 두 시간이면 갈 거리를 3시간 3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이 기차는 여행객뿐 아니라 시드니에서 변두리로 통근하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빨리 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즐겁게 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느릿한 속도로 마을마다 정차하며 사람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풍경을 지켜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아이들은 챙겨 온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신랑과 난 사진도 정리하고 앞으로 호주에서 보내게 될 일정을 확인하며 시간을 보냈다.


11월의 호주는 초여름이다. 여름과 안녕한 지 두 달 만에 다시 얇은 옷들과 반바지등을 챙겼지만 생각보다 공기가 차갑고 바람이 불어 계속 긴소매 옷들을 입어야 했다. 계절이 반대인 나라로 여행 갈 땐 옷차림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 호주 가족들을 만나 바닷가에서 서핑을 하며 놀기로 해서 걱정이 좀 되기도 했지만 현지 사람들의 여름을 맞이하는 썸머 패션을 보니 차가운 바람쯤은 맞을 준비가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 반갑고 좋은데 참 어색하다. 언어의 장벽이 느껴진다. 진이와 율이는 영어로 얘기하고 려환이와 지환이는 한국어를 쓴다. 그런데 대화가 된다는 게 참 신기하다. 그 언어의 장벽을 넘어선 아이들의 세상엔 특별한 텔레파시가 있나 보다.

우리가 함께 지낼 숙소는 넬슨 베이에 위치한 잉게니아 홀리데이스 원 마일 비치. 넬슨베이에 위치한 수많은 숙소들 중 비교적 저렴하고 위치도 괜찮아 선택했는데 웬걸 너무 좋다. 일반적으로 숙소는 구글맵과 여행 사이트를 통해 주로 예약하지만 사진이나 후기를 바탕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실제로 예약한 숙소에 도착하면 예상과 달리 실망하는 경우도 꽤 많다. 이 숙소는 자연 친화적 숙소로 방갈로와 캠핑족을 위한 오토 캠핑장을 모두 겸비하고 있었다. 주변 숙소에 비해 저렴해서 시설이 낡거나 좁을 거라 예상했는데 넓은 리조트와 부대시설, 특히, 말하는 앵무새가 있는 대형 새장과 수영장과 트램펄린 등은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여행에 최고였다. 두 번째 호주 숙소에 머물며 발견한 특히 한 점은 일반적으로 숙소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물 대신 우유가 있다는 점이었다. 호주 사람들은 커피에 항상 우유를 넣어 마시는 게 일반적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라테와는 또 다른 플랫화이트(Flat white)다. ( 호주인의 커피에 대한 자부심은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이후 호주에 머무는 동안 모든 숙소에서 제공하는 멸균우유가 있었다.

다음날 우리는 모래사구에 가기로 했다. 한국인에게도 유명한 스폿이 있지만 현지인 찬스로 찾은 우리만의 프라이빗 사구로 갈 수 있었다.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공원 앞에 주차를 하고 내리니 30센티는 넘어 보이는 도마뱀을 발견했다. 그 도마뱀도 우리와 맞닥뜨릴까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얼음상태다. 아이들은 도마뱀을 보고 잠시 멈춰 장난을 치고 싶어 했지만 곧 우린 도마뱀을 무심하게 지나치기로 했다. 그것이 자연을 위한 최고의 배려라고 생각해서였다. 사구로 들어가는 길은 정글 탐험을 하는 것 이상으로 험난했다. 왜 이곳이 프라이빗 할 수뿐이 없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신기한 나무들과 열매를 지나는데 파리와 개미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니 우리가 그들의 영역에 들어간 것인가? 말로만 듣던 살을 깨무는 파리떼는 수십 마리 아니 수백 마리는 되는 거 같았다. 울루루에 가면 만날 수 있다는 파리를 호주 입성 3일 차인 뉴캐슬에서 만나다니 ,, 게다가 책에서만 보던 흰개미까지 발견한 환브로는 오두방정을 떨었다. 려환이는 소리를 지르며 옷사이를 뚫고 달려드는 파리를 쫓느라 펄쩍펄쩍 뛰어가며 춤을 췄다. 그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우여곡절 정글을 헤치고 도착한 모래사막. 호주가 넓은 나라인 건 알지만 마을 뒤편으로 10여분 정글을 지나 펼쳐진 끝이 없는 사구의 풍광은 정말 굉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몇 번이나 보드를 타고 샌딩을 즐기느라 방금 전 있었던 파리와의 사투는 잊은 듯했다.




점심을 먹을 겸 헌터밸리로 향했다.

끝없이 펼쳐진 와인농장들이 모여있는 헌터 밸리는 호주 와인 산업의 발상지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고급스러운 와인 품종인 세미용과 쉬라즈의 본고장이다. 이곳에는 120개의 와이너리가 있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매년 많은 사람들이 고급스러운 쉬라즈를 맛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우리도 그중 한 와이너리를 찾아 와인 테이스팅을 하고 저녁 바베큐와 어울리는 와인도 한병 구매했다. 다섯 가지 와인을 시음하는 비용은 단 돈 $5이고, 심지어 보틀와인을 구매하면 시음 비용은 계산하지 않아도 된다. 어른들이 시음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먹고 물을 샀는데 그 비용이 와인보다 더 비싸서 깜짝 놀랐다.



뉴캐슬은 과거 호주의 주요 에너지를 공급하는 최대 화력 발전소들이 모여있는 도시였다.

대표적인 전력회사 오리진 에너지(Origin Energy)가 호주 최대 석탄화력발전소인 에라링발전소(Eraring power station)를 계획보다 7년 앞선 2025년 가동을 중단한다고 전격 발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에라링발전소는 NSW 에너지소비에서 약 20%를 감당하는 주요 발전소 중 하나다.  

호주 전력시장에서 탄소배출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는 석탄 화력발전이 줄고 가스발전과 풍력 및 태양열 등 재생에너지 공급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은 국제적인 추세다.

내가 방문한 뉴캐슬은 석탄이 아니더라고 충분히 풍요로운 자연과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도시로 이미 공업 도시가 아닌 관광도시로 완벽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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