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딸~ 이것 좀 봐줘. 상조 보험인데 나중에 내가 죽으면 장례식 비용을 다 처리해 준다고 하더라~ 요즘 우리 친구들은 이런 거 다 하나씩 가입한다고 하는데..."
아니 인생은 60부터라는데 이제 환갑이 지나신 지 얼마 안 된 울 엄마가 벌써 장례준비 보험이라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런데 엄마가 내미신 상조보험 홍보 팜플렛엔 장례비에 대한 설명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일단 보험금을 납입하다가 일명 '전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는데 거기에 크루즈 효도여행 항목이 눈에 들어왔다.
" 얘~ 내가 생각보다 오래 살면 크루즈 한번 타보지~뭐 "
얼핏 보기엔 단순한 장례보험이 아닌 노년을 준비하는 실버 보험에 가까워 보였다.
어쨌든 나에게 '크루즈(cruise)'라는 건 상조회사에서 판매하는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가는 여행 정도로 인식되었다.
1912년 4월 10일 영국의 사우스햄프턴을 떠나 미국 뉴욕으로 향하던 대형 크루즈 선박은 첫 항해를 시작한 지 5일 후 빙산과 침몰했다. 1,514명이 사망한 이 사고는 영화 '타이타닉'의 러브 스토리를 통해 우리들에게 알려졌고, 많은 사람들에게 '크루즈'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선상파티를 즐기고 경제능력에 따라 출입이 제한되기도 한 계급사회가 존재하는 럭셔리 여행이다. 동시에 운이 나쁘면 망망대해에서 배가 침몰해 물귀신이 될 수도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도 갖게 해 줘 일반 사람들이 가기엔 좀 꺼려지는 여행이기도 하다.
물론, 100년이 훨씬 더 지난 이야기이고 영화 주인공 잭 도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로즈 드위터 버케이터(케이트 윈슬릿 )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에 몰두하다 보면 호화 여객선의 침몰은 영화의 배경일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신랑과 결혼 준비를 하면서 나는 신혼여행을 미국으로 가고 싶었지만 신랑은 유럽으로 가길 원했다. 보통은 신부의 리즈를 맞춰주는 게 순리라던데 미국은 총기 소지 자유로 위험한 국가라며 질색을 표했다. 아름다운 봄이 시작되는 3월 우린 어디로 갈 것인가? 여러 차례 고민한 끝에 지중해 크루즈를 타보기로 했다. 크루즈 그거 타면 노인들만 많은 거 아니냐며 걱정했지만 밥도 자주 주고 의외로 즐거운 액티비티가 많다며 결혼 전 이미 알래스카 크루즈를 경험해 본 신랑은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신랑을 따라 생전 처음으로 유럽 대륙, 어느 이탈리아 로마에 도착했다.
로마에서 가까운 항구가 있는 치비타베키아에서 출발하는 COSTA 크루즈를 타기 위해서였다. 기차역에 내려 항구로 가는 버스를 탔다. 기차역에서 불과 3k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 노란 크루즈의 첫인상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내가 상상했던 거 보다 훨씬 더 거대했다. 사진을 찍으려고 해도 한 프레임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형 유람선은 많이 타봤지만 일주일을 먹고 자고 하는 크루즈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3500명의 승객과 일하는 크루 1100명 총 4,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배에 탈 수 있는 대형 선박이었다.
14층으로 구성된 덱(deck)과 2개의 야외 수영장과 2개의 실내 수영장, 자쿠지, 9개의 레스토랑은 물론 선상 위로 올라가면 배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러닝 트랙과 매일 파티가 벌어지는 야외무대, 영화와 뮤지컬을 볼 수 있는 극장, 마사지 숍과 카지노 등 정말 없는 게 없는 그야말로 하나의 움직이는 도시였다.
여행 중 유럽 크루즈에서 만나기 어렵다는 한국 사람들도 만났는데 TV를 통해 잘 알려진 중견 배우였던 걸로 기억한다. 12명 정도 대가족이 함께 왔었는데 물어보니 환갑 기념으로 가족여행 중이라고 했다. 당시 우린 조촐한 두 가족이었지만 가족단위로 온 다양한 국적의 여행객들을 보면서 크루즈가 대가족이 함께 하기에 더없이 좋은 여행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도 아이를 낳으면 꼭 다시 크루즈를 타자고 그리고 기회가 되면 양가 가족들도 모두 함께 모시고 오자고 약속했다.
크루즈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다 보니 소문처럼 비싼 럭셔리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정말 비싼 럭셔리 크루즈나 세계 일주 루트 등도 있긴 하다. 하지만 여행 루트나 기간, 계절에 따라 아주 저렴하고 가성비 좋은 상품도 꽤 다양하게 나와 있다. 패키지여행을 주로 선택하는 사람들이나 대가족 여행을 계획하면서 많은 인원을 인솔할 엄두가 안 나는 사람들, 그리고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어떻게 여행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의 크루즈 여행 경험담이 마중물이 되어주길 바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상엔 하늘길도 있고 바닷길도 있고 그리고 다양한 여행의 길도 있으니 그 길이 어디든지 원하는 곳으로 떠날 수 있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