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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드레킴 Sep 27. 2024

1. 꿈만 같았던 나의 첫 지중해 크루즈


 2010년 3월 6일

결혼식을 무사히 마치고 피로연을 끝으로 가족과 친구들의 환송을 받으며 허니문카를 타고 우아하게 손은 흔들며 장미 꽃보라를 맞으며 신혼여행지로 떠나는 ~ 그런 로맨틱한 장면은 영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었다.

크루즈는 비행기처럼 매일 떠나지 않기 때문에 '지중해 크루즈'의 일정에 맞추어야 했는데 결혼식 일주일이 지난 3월 14일이 되어서야 신혼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설레고 완벽한 허니문을 꿈꾼다.

태어나서 아마도 딱 한번 갈 수 있는 여행이기에 어느 나라로 갈지 숙소는 어디로 할지 등을 결정하기까지 신중하고 또 신중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결혼 전 캐나다에서 지냈기 때문에 자연스레 북미 문화권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신혼여행도 미국 쪽으로 가길 원했다. 아직 돌아보지 못한 도시들도 많았고 무엇보다 언어적으로 편안해 신랑과 함께 미국을 여행하고 싶었다.

하지만 신랑은 총기 소유가 자유로운 미국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대신 유럽의 크루즈 여행을 제안했다. 크루즈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않았던 난 갸우뚱했다. 게다가 언어도 이탈리아어나 스페인어가 주로 사용되는 거 같아 의사소통에도 걱정이 되었다. 은근히 보수적이고 새로운 환경에 낯설어하는 당시의 나는 유럽 대륙은 '미지의 세계' 그 자체였다. 심지어 난 임신 중이었다. 결혼을 할 시기엔 벌써 6개월을 넘어서고 있을 때라 몸도 점점 무거워지고 어쩌다 혼전 임신으로 변해가고 있는 나의 몸매에 대해 더욱 예민해져 있을 때다. 이쯤 되면 신부이자 예민한 아내를 위해 신혼여행지쯤은 좀 양보해줘야 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겠지만 신랑은 '크루즈여행'을 고집했다. 도대체 내 배안에 아이가 있다지만 그 배안에 뭐가 있길래 저러나,,


그렇게 일주일 늦게 출발한 신혼 여행지, 태어나서 처음 밟아 본 유럽은 공기부터 달랐다. 초록초록한 나무들과 파란 하늘에 대비되는 길거리의 흔한 담배 냄새, 고풍스러운 엔틱 한 건물들과 다채로운 색상 현대 상점들이 공존하는 길거리 풍경등 모든 게 새로웠다. 우리가 탈 배는 이탈리아 밀라노 근처의 항구 도시 사보나에서 출발한다. 출항 이틀 전에 밀라노 공항으로 들어가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이미 두 차례나 밀라노를 다녀온 신랑이 유럽 땅을 처음 밟아 본 신부를 위해 가이드를 자청했다. 사진에서만 보던 밀라노 대성당과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도시의 골목골목을 을 직접 눈으로 만나니 내가 살아왔던 세상과는 또 다른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의상 디자이너로 일한 나에게 패션잡지나 매스컴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었던 밀라노는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밀라노에서 기차로 2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항구도시 사보나(Savona)로 왔다. 우리가 탈 배는 Costa Cruise로 이탈리아 국적 선박이다. 그중에서 Costa Pacifica 라인으로 3,780명의 승객과 1,068명 총 4,848명을 태울 수 있는 대형 선박으로 크기가 정말 어마어마하다.

7박 8일 크루즈는 사보나 (이탈리아) - 바르셀로나(스페인) - 팔마 데 마요르카 (스페인) - 튀니스 (튀니지) - 리야 (몰타) - 카타니아 (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 해상 전 일정(선상 파티) - 치비타베키아(이탈리아)로 돌아가는 일정이다. 대부분 크루즈 루트는 이렇게 서클 형태로 돌면서 승객을 태우고 또 내려준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승선하는 도시도 하선하는 도시도 고를 수 있다. 물론, 일찍 내린다고 요금이 더 저렴해지는 건 아니니 한 바퀴를 야무지게 돌면서 즐기는 게 가장 이상적일 수 있지만 하선 후 내리는 여행지에서 다음 여행을 계획한다면 고려해 볼 만하다. 우리는 한 바퀴를 다 돌고 내린 후 1시간 거리에 있는 로마로 이동해 여행을 계속했다.

*선사마다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일찍 하선하는 경우 요금에 대한 환불은 없지만 선상팁은 감해준다.


크루즈의 최대 장점은 여행지를 옮겨 다닐 때마다 무거운 트렁크를 끌고 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나라를 이동해도 숙소를 옮길 필요가 없으니 짐을 쌌다가 풀었다가 하는 수고도 하지 않아도 된다. 7박 8일 동안 객실 안 옷장에 집처럼 수납을 해놓은 유일한 숙소일 것이다. 보통은 여행 가서 숙소에 들어가더라도 서랍장에 옷을 수납하는 일은 거의 없다. 어차피 하루, 이틀이면 다른 숙소로 이동하기 때문에 대충 트렁크를 열어두고 지내기 마련이다. 첫날 승선하면서 짐을 맡기고 배를 둘러보고 저녁을 먹고 배정된 방을 찾아와 보니 체크인 때 맡겼던 트렁크가 방 앞에 놓여있고 문에는 WElCOME KANG&KIM이라고 쓰여 있다.


 이른 아침 객실 문틈으로 신문이 배달되는데 매일 다양하게 진행되는 크루즈 내의 이벤트와 도착하는 도시에 대한 설명은 물론 기항기 관광에 대한 이야기, 일출과 일몰의 시간 그리고 날씨등이 들어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 크루즈 신문을 체크하고 조식을 먹으며 그날의 기항지 관광을 준비한다. 간단한 소지품만 챙겨 나가 하루종일 정박한 도시를 중심으로 구경하다가 배가 출항하기 전에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배는 아침에 도착하고 밤에 출발하기 때문에 저녁 식사도 배로 복귀해 먹으면 된다. 배에 돌아와 미리 예약해 준디너 정찬을 먹고 나면 여기저기서 다양한 공연이나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다. 그날의 컨디션 맞게 공연을 볼 수도 있지만 피곤하다면 숙소에 들어와 휴식을 취해도 된다. 그러는 사이 배는 어느덧 뿌뿜~~~~ 우렁찬 뱃고동 경적을 울리며 다시 다음 기항지를 향해 출발하고 있다. 배에서의 생활은 흔들림 없이 완벽했다. 때때로 미세한 움직임을 느낄 때도 있지만 갑판 위로 나가거나 객실 창문을 보지 않는다면 내가 바다 위에 떠 있다는 걸 느끼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다.


호화롭게 준비해 준 크루즈의 시설들을 최대한 잘 활용해야 비용이 아깝지 않으니 배에서도 열심히 놀았다. 상영되는 영화를 확인하고 극장에 가거나 뮤지컬이나 댄스쇼 등도 볼 만하다. 카지노에 가서 탕진잼도 느껴보고 운 좋게 돈을 좀 딴다면 작은 규모지만 면세점이 있으니 쇼핑도 가능하다. 290미터 길이에 폭이 35미터의 배를 천천히 구경하고 산책하는 것도 당시 나에겐 큰 태교 운동이었다. 배안에는 4개의 수영장과 5개의 자쿠지가 있다. 뱃속의 아가를 생각해서 수영장에 뛰어들진 않았지만 따뜻한 자쿠지에 몸을 담그고 청량한 지중해의 햇살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소중한 태교의 시간이었다.


늦게까지 놀다 들어와 자고 일어나면 밤새 항해한 배는 또 다른 나라에 도착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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