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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드레킴 Nov 17. 2024

14. 떠날 수 있는 용기

 


일반적으로 크루즈 회사들은 2~3년 후의 일정까지 미리 만들어 상품을 내놓고 다양한 루트를 제공한다. 작년 겨울 12월 27일부로 항공 마일리지가 일부 소멸된다는 메시지를 받고 신랑과 함께 여행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크루즈 여행을 하고 싶어 하는 나도 신랑과 노트북을 마주 보고 함께 검색 엔진을 돌렸다. 그놈의 마일리지 소멸 메시지 때문에 안 그래도 바쁜 연말에 '구라미 여행사'는 또 문을 연 것이다. 아이들 방학 때인 성수기에 움직이려면 1.5배의 마일리지를 사용해야 하고 그렇다고 학기 중에 가려니 아이들 학사 일정이나 신랑의 회사 스케줄을 맞추는게 여간 쉽지 않았다. 보통 마일리지로 원하는 보너스 항공권을 '득템'하려면 일 년 전에 예약해야 그나마 내가 원하는 도시에 갈 수 있다. 일 년 전이라도 미주나 유럽의 주요 도시들 경우엔 마일리지가 있어도 보너스 항공권을 구매하기는 쉽지 않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학교 선생님께 문의한 후 중학생 아들의 학사 일정에 크게 무리가 없을 11월 초에 떠나기로 최종 결정하고 비교적 세금이 저렴한 동유럽으로 향하는 노선들을 알아봤다. 그중 눈이 가는 건 헝가리 '부다페스트'와 폴란드 '바르샤바'였다. 폴란드는 여러 차례 방문해 본 경험이 있으니 이번엔 헝가리로 가는 항공권을 구매했다.

왕복 노선을 마일리지 공제하고 내는 세금이 4인 가족  12만 원이라고 했다. 한 명당 3만 원꼴이니,, (일반적으로 20-30만 원) 정말 저렴하긴 하다.

일단, 세금이 저렴하니 부다페스트로 들어가서 다음 행선지를 정해보자는 게 신랑의 생각이었다. 부다페스트를 거쳐 크로아티아로 넘어가면 동유럽에서 출발하는 크루즈도 탈 수 있었기에 꽤 매력적인 동선이었다.

이렇게 여행 루트를 짤 때면 직장 때문에 힘들어하는 신랑한테 다 때려치우고 진짜 여행사를 차리면 어떠냐고 물어보고 싶다. 구글맵을 열어 놓고 인터넷에 나와 있는 추천 경로를 마다하고 일정을 만들어내는 신랑을 보면 감탄사가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검색에 검색을 거쳐 찾아낸 MSC SINPONIA는 크로아티아 스플리트를 출발해 지환이가 꼭 여행하고 싶은 아테네를 기항하는 노선의 이탈리아 크루즈였다. 우리가 예약을 한 시점이 지난 1월 초였으니 승선하기 11개월 전이다. 발코니 룸은 아니더라고 창문을 통해 바다를 볼 수 있는 오션뷰 객실을 예약하기로 하고 100만 원의 예약금을 보냈다. 나머지 잔금은 승선하기로 한 날짜 한 달 전에 자동 출금된다. 다사다난한 봄과 여름을 보낸 우리 가족은 잔금 출금일이 다가오고 있는 10월 고민에 빠졌다. 신랑의 회사는 정신없이 바빴고 나는 새로 시작되는 가을 시즌 가방 주문이 많아 매일 미싱 앞에 앉아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지환이는 학생회장에 당선되면서 학교 봉사와 학업에 한창 열심히였고 11월에 있을 새로운 프로젝트를 계획하느라 매일 바쁜 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우리 막내는 어떠한가? 갑자기 생긴 용인 민속촌 체험학습과 바이올린 영재 발표회, 활동하고 있는 합창단의 공연들까지 연초에 계획하지 않았던 일정들이 마구 쏟아지고 있었다. 가장 큰 부담은 역시나 경제적인 지출이었다.

이렇게 바쁜 일정과 잔금을 치러야 하는 부담감을 안고 예정대로 여행을 꼭! 가야 하나? 아니면

예약금 100만 원을 아깝지만 바다에 버릴 것인가?

미리미리 여행 계획을 잡고 예약을 한 것이 또 이런 어려운 고민을 안겨줄 줄이야~. 잔금 결제일이 다가올수록 고민은 깊어져 갔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이렇게 고민을 하는 경우가 아마 앞으로는 더 자주 생길 것 같다고 신랑이 말을 꺼냈다. 아이들은 계속 성장하고 이제 중3, 곧 고등학생이 되겠지? 그럴수록 가족이 함께 떠날 수 있는 기회와 횟수는 줄어들 테고 방학 기간을 이용해 짧은 구간을 여행하지 않는다면 가족 모두 함께 10일 이상의 장거리 여행을 한다는 건 점점 더 어려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예정대로 떠나자."

"떠날 수 있을 때 떠나는 것도 용기다."





11월 2일 토요일 4:00 pm


정확히 4시가 되니 배가 출발한다.

먹고 싶은 게 많은 웰컴 뷔페였지만 난 최대한 자제를 했다. 6시 30분 예약해 둔 첫 정찬을 맛있게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삐 풀고 마음 놓고 먹다가는 배에서 내릴 때 나의 몸은 3킬로 그램 이상 쪄 있을게 안 봐도 선하게 그려진다. 그리고는 후회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점심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14 deck sports Arena로 올라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농구대와 축구 골대가 있는 곳으로 매일 운동할 수 있다며 무척 좋아한다. 바다 한가운데 사방이 뚫린 야외지만 공이 바다로 빠지지 않도록 그물망이 설치되어 있어 안전하다. 공을 탕탕 튀기며 아빠가 먼저 드리블을 시작한다. 아빠의 패스에 슛을 시도하는 지환. 아빠의 스탭은 지환이보다 느리지만 그래도 블로킹을 당하는 모습을 보니 아빠의 체면은 유지되는 듯하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키가 훌쩍 큰 지환이는 이제 아빠 키를 거의 따라잡았다. 매일 공부하고 영상과 게임에 익숙해진 아들과 아빠에게 "등을 더 펴라고" 하면서 농구부 감독이 된 척 소리쳐 본다. 아직은 작은 12살 려환이도 그 틈에서 숨을 헐떡거리며 공을 뺏는다. 형아가 패스해 준 공을 붉은 노을을 향해 '슛', 다시 땅에 떨어진 공을 형이 주어 멋지게 넣어 준다.

스플리트를 떠나 베네치아로 향하는 배는 방향을 북서쪽으로 틀면서 붉게 타오르는 노을을 향한다.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며 아빠와 함께 농구를 하는 모습을 보니 그렇게 소중하고 행복할 수가 없다. 또 이렇게 떠나온 용기와 결정에 스스로 칭찬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24시간 365일. 하루하루를 의미 있고 특별하게 보낼 수 있는 건 '용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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