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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 Nov 15. 2017

04. 목차, 색인, 하이퍼텍스트 그리고 웹

1부 웹의 시작과 현재


나는 밀리지 않고 몰아붙였다. "그래도 <로미오와 줄리엣>을 <폭풍>보다 먼저 썼다는 것은 알잖아. 나는 그 사실이 내 책꽂이에도 그대로 반영되길 바라."

앤 패디먼 - 서재 결혼시키기



앞서 연재를 통하여 저는 인쇄술의 발명을 중심으로 정보 생산기술의 발달과 비용 절감이 오늘날 정보혁명을 이끌었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습니다. 보통 생산 혁명은 소비 증대로 이어지고, 보다 나은 소비 방법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지식 생산량의 증대와 함께 이를 보다 효율적으로 습득하고 이용하는 방법에 대한 혁신도 함께 진행이 되었습니다.


목차부터 색인, 도서 분류까지 2천 년의 역사


검색엔진이 등장하기 전, 우리는 대부분의 지식을 책과 문서를 통하여 습득하였습니다. 두루마기나 책의 제목을 보고 원하는 정보를 찾으려면 아마도 처음부터 끝까지 내용을 살펴야 할 것입니다. 문서가 많아질수록 정보를 습득하는 일은 점차 힘들어집니다.

그림 1. 1655년 출판한 책의 색인. 당시 색인의 작성은 꽤나 성가신 노동이었을 것이나, 독자에게는 유용한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정보 습득 UX 혁신 사례로 생각한다.


이러한 불편을 덜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습니다. 기원전 82년의 Pliny the Elder의 자연사 백과사전에서 목차가 처음으로 등장하였고 약 1600년 경부터는 색인을 사용한 기록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1700년대 에는 알파벳 순으로 내용을 정리한 백과사전이 등장하며 방대한 내용에 독자가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1876년에는 듀이의 십진분류법이 등장하는 등 문헌정보학과 사서학의 연구가 이어지게 됩니다. 정보를 습득하는 UX의 진화도 꾸준히 이어져 온 셈입니다.


그림 2. 도서관에서 사용중인 십진분류표



정보 습득의 혁명 텍스트를 넘어 하이퍼텍스트


정보와 지식에 대한 보다 쉬운 접근을 위한 노력과 발전은 이렇게 2천 년 가까운 기간 동안 어찌 보면 매우 천천히 이루어졌습니다. 컴퓨터가 등장하고 인터넷이 전 세계의 지식을 흡수하며 숨 가쁘도록 바쁘게 진행된 오늘날과 비교하게 되어 더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본격적인 인터넷 정보 혁명을 살펴보기 전에 우리는 먼저 컴퓨터가 탄생하기 조금 전인 1945년으로 가보아야 합니다.


아직 인터넷은 물론이고 컴퓨터도 나오지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두 번의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핵무기가 연구되는 등 과학연구가 무르익던 시절, 미국의 한 잡지에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개념을 담은 글이 기고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원자폭탄 프로젝트를 담당하기도 했던 과학자 버니바 부시의 글이었습니다.


그는 이 기고문에서 과학과 지식의 발달로 지식의 양은 엄청나게 늘고 있고 이를 습득하기 위한 노력과 어려움은 점점 힘에 겨워지고 있다는 생각을 밝히며, 지식을 습득하고 인간의 기억을 확장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비전을 제시합니다. 그가 상상하고 제안한 기기는 메멕스(Memex, Memory Extender)라고 명칭 한 기억력 확장 도구입니다.

그림 3. 메멕스에 대한 상상도.

모든 문서를 마이크로필름에 담고 (컴퓨터의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정보를 열람하다 복사하고, 독자의 의견을 담고 관련 문서로 엮을 수 있는 개념의 책상을 상상했습니다. 오늘날 컴퓨터와 유사한 일종의 스마트 데스크인 샘입니다.

그림 4. 메멕스에 대한 상상도

해군에 복무하던 엥겔바트는 부시의 글을 읽고 영감을 받아 훗날 마우스를 발명하고 컴퓨터와 인간의 상호 작용을 연구하는 등 하이퍼텍스트와 GUI의 개념을 발전시켰습니다. 테드 넬슨은 제너두 프로젝트를 통하여 하이퍼텍스트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제시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컴퓨터가 개발되고 정보를 처리하고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에 중요한 전진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팔로알토 연구소에서는 오늘날의 개념과 가까운 GUI를 만들어냈고 스트브잡스는 이를 상용화시키게 됩니다. 컴퓨터를 통하여 다양한 정보가 연결되는 '링크'기술은 이렇게 빠른 속도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림 5. 엥겔바트가 개발한 마우스의 초기형태. 그는 마우스를 발명하였고 GUI의 초기 연구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팀 버너스 리 인터넷을 발명하다


1980년대, 유럽입자물리연구소 (CERN)의 한 컴퓨터 과학자는 연구소에 쏟아지는 수많은 연구논문과 자료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습득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그리고 그는 1989년 새로운 정보 관리 시스템을 제안하였고, 1990년 그 결과물인 월드와이드 웹을 세상에 선보입니다. 그의 이름은 팀 버너스 리입니다.


그림 6. 팀버너스리, 그는 인터넷을 발명하였고 이를 특정인이 사유할 수 없는 공공재로 가꾸어나갔다.


팀 버너스 리는 하이퍼텍스트 기반 문서를 생산하고 공유할 수 있는 규약과 도구를 발명하였고, 중앙에서 누구에게 소유되거나 관리되지 않고 움직이는 철학을 제시했습니다. 또한 웹에 대한 특허를 포함한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고 모두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했습니다. 그를 인터넷의 발명자, 인터넷의 아버지라고 칭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림 7. 팀버너스리가 웹을 개발에 사용한 최초의 웹서버. 스티브잡스가 만든 넥스트 컴퓨터이다.



그가 웹에 대하여 발표한 핵심 개념은 아래와 같은데 오늘날도 널리 사용되는 웹의 핵심 요소들을 모두 발명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HTTP에 대하여는 다음 연재에서 보다 자세히 다룰 생각입니다.


웹 상의 자원을 전 세계가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공통된 식별자, 훗날 URL(URI)로 발전

하이퍼텍스트 문서를 작성할 수 있는 언어 HTML (하이퍼 텍스트 마크업 랭귀지) 및 저작도구, 원시적인 브라우저

하이퍼 텍스트 문서를 전송할 수 있는 규약(프로토콜)인 HTTP (하이퍼 텍스트 트랜스퍼 프로토콜)


전 세계를 효율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패킷 통신이 있었고 정보를 혁명적으로 연결하고 습득할 수 있는 하이퍼텍스트의 개념, 컴퓨터의 발전과 GUI가 있었고, 그 이전에 인류가 소통하고 지식을 생산하고 공유하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하이퍼텍스트는 정보를 더욱 찾기 쉽게, 그리고 더 가깝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지식을 습득하는 활동을 보다 능동적으로 만들었습니다. 하이퍼텍스트 이후 정보과학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거 인류 발자취 위에서 인터넷과 웹이 탄생했고 보다 나은 지식의 생산과 탐구를 위한 혁명들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림 8. 1999년 4월 30일 CERN은 월드와이드웹에 대한 모든 권리를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한다고 선언 했습니다.



지금까지 몇 편의 연재를 통하여 인류의 지식활동부터 웹에 이르는 역사를 매우 간략히 들여다보았습니다. 다음 연재에서는 하이퍼텍스트를 전달하는 HTTP 에 대한 이야기를 통하여 웹에 대하여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이퍼텍스트(하이퍼 링크)의 개념은 버니바 부시가 주장을 했고 이 기고문이 많은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하지만 하이퍼텍스트라는 단어를 처음 만들어 낸 것은 사회학자이며 철학자인 테드 넬슨이다. 그가 생각한 하이퍼텍스트는 웹의 것과 조금 다른데, 양방향이 연결되는 형태의 구조이다. 즉 한쪽에 링크를 걸면 링크가 걸린 쪽에서도 연결이 되고 이후 문서에 변화가 있으면 그러한 부분까지도 업데이트가 되는 개념이다. 이론적으로는 보다 진정한 의미의 지식 연결망이지만 현대의 웹이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면 링크의 관리 부담이 엄청나 졌을 것이다. 한 때 팀 버너스 리도 테드 넬슨의 하이퍼텍스트의 개념을 고려했었는데, 상호 링크가 걸릴 경우 데드링크 관리와 복잡성의 문제를 고민하다가 오늘날 단방향의 링크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다행스럽다는 생각이다.




이번 연재에 사용한 그림의 출처를 밝힌다.


표지그림: 런던올림픽 개막식, 인터넷은 모두를 위한 것

웹을 발명한 것은 팀 버너스 리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인터넷의 시작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데 이전 연재에서 소개한 ARPANET을 인터넷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한 것 같다. 이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자존심 싸움이 있어왔는데, 유럽은 인터넷의 시작을 웹의 시작과 동일하게 보고 있다. 소설 '천사와 악마'에서도 이러한 내용이 살짝 언급되기도 한다.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행사에서 팀 버너스 리를 소개하며 인터넷의 뿌리가 웹임을 다시 한번 주장하였다. 사진은 '이것(인터넷)은 모두를 위한 것' ( 출처 )


그림 1. 1600년경부터 책에 색인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1655년 출판한 책 내의 색인 사진 ( 출처 )


그림 2. 국립중앙도서관의 자료실. ( 출처 ) 듀이십진 분류법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많은 도서분류법이 생기게 되었다. 한국 십진분류법도 듀이에 기반하여 만든 것으로 알려진다. 


그림 3,4 라이프 매거진 1945년 9월 10일 자 ( 출처 )

버니바 부시의 기고 글 As We May Think는 The Atlantic magazine에 실렸는데 잡지 원본이 아니라 텍스트만 남아있었다. memex에 대한 삽화를 구글링을 통하여 찾을 수 있는데 명확한 출처를 찾아보니 LIFE magazine 에 요약문이 실린 사실을 알아냈다. 고맙게도 구글에서 해당 잡지의 아카이빙이 남아있어 그를 인용하였다.


그림 5. 최초의 마우스 프로토타입 ( 출처 )


그림 6. 인터넷의 아버지 팀 버너스 리 ( 출처 )


그림 7. 당시 기록에 따르면 팀 버너스 리가 웹 개발을 위한 장비를 요청했고 팀장의 승인을 받아 직접 구입한 컴퓨터라고 한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난 후 설립한 NeXT에서 생산한 컴퓨터와 OS이다. 당시 시대를 앞서간 성능과 가격으로 시장에서 외면을 받았지만 현대 컴퓨터 OS와 GUI 등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최초의 웹서버가 되는 영광도 누렸다. ( 출처 )


그림 8. 1999년 4월 30일 CERN은 인터넷을 퍼블릭 도메인으로 풀었습니다. 웹은 모두가 자유롭게 사용하고 복제하고, 개발할 수 있는 전 인류의 공공재입니다. 웹을 처음 만든 게 애플이나 구글, 마이크로 소프트였다면 오늘날의 웹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 출처 ) 

웹이 퍼블릿 도메인임을 선언한 CERN의 공식 문서 ( 출처 )


CERN relinquishes all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to this code, both source and binary and permission is given to anyone to use, duplicate, modify and distribute it.
CERN은 소스와 바이러니 모두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포기합니다. 누구든 이 코드를 사용하고 복제, 수정 및 배포할 권리를 가집니다.
(웹에 대한 CERN의 퍼블릭 라이센스 공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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