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생각이 많고 걱정도 많고 고민도 많은 편이다.
때때로 남들은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은데 나 혼자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잊어버리려고 해도 쉽게 잊히지 않고 밤에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신경이 쓰이는 상황에서 나는 나 자신을 질책하기도 했다. 나 스스로 나는 트리플 A형이라고 인정하며, 누군가가 ' 너 너무 소심한 거 아니니? 뭘 그런 걸 신경 써? 나는 그런 거 신경 안 쓰는데... 푸핫' 이렇게 얘기하면 그 말에 또 신경 쓰이고 상처를 받기도 했다.
참으로 희한하다. 20년을 넘게 마케터로 살면서 다양한 형태의 조직에서 수없이 부딪히고, 수없이 바꿔보려고 노력하고 수없이 깨지면서 변할 만도 하지만, 쉽게 변하지 않는다. 단지 맷집이 강해 저서 괜찮은 척, 상처 안 받은 척, 쿨한 척, 강한 척하는 기술은 늘었지만 내 안의 원래의 나는 잘 변하지 않았다.
나이가 무색하게도 아직 여리디 여린 유리 멘털을 가진 나는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의외로 이런 다소 내성적이고 상처를 잘 받고 낯도 가리는 그런 사람들이 많구나' 하며 위로를 받고 그것이 다름 아닌 '타고난 기질'의 차이임을 알게 된다. 얼마 전 우연히 본 '유키즈 온 더 블록'이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유재석과 조세호가 얘기했다. 둘 다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단지 아닌 척하면서 사는 거라고...
그래서 나는 이런 기질의 나로 이 험난에 세상에서, 이 치열한 대한민국에서, 아무리 여성 인력이 많아져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 센 남자들 사이에서, 사회에서 살아남으려고 다져진 기 센 여자들 사이에서, 좀처럼 예의란 것을 모르는 돌아이들이 버글버글한 회사에서, 자식의 일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드센 엄마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야만 했다.
1. 고민은 남에게 털어놓는 게 아니라 종이에 내려놓는 편이 좋다.
잘 풀리지 않거나 내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 고민이 있으면 쉽게 떨쳐내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렇지만 쉽게 남에게 털어놓지 않는다. 그냥 혼자 고민하고 일기를 쓰며 복잡한 머리를 종이에 내려놓는 편이 좋다. 종이에 옮겨놓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한결 맘이 편안해지고 머리가 가벼워진다. 계속 생각을 하게 되면 잠도 안 오지만, 일기를 쓰고 일기장을 탁 덮는 순간 왠지 마음이 후련해지고 잠이 올 것 같아진다.
정말 나에게 멘토가 되는 사람이 있다면 고민을 나누기도 하지만 아무에게나 쉽게 나누지는 않는 편이다. 왜냐하면 남에게 얘기해봤자 어쭙잖은 충고가 오히려 맘을 더 상하게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2. 조언이 필요하다면 나에게 맞는 유형의 조언자를 찾는 편이 좋다.
각자의 경험을 더듬어보자.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놨을 때 돌아오는 충고나 조언의 유형이 있다.
1> 다양한 경험과 객관적인 시각으로 냉정하게 판단하고 잘잘못을 거리낌 없이 얘기하는 객관 냉철한 유형
" 이건 아니네. 네가 이렇게 판단한 건 잘못된 판단이야. 상황을 종합해 봤을 때 이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어"
=> 이런 식의 충고는 아주 객관적이고 고마운 충고가 될 수도 있지만 아무리 그 말이 맞는 말이어도 당사자가 아니라서 할 수 있는 말이다. 막상 조언자가 그런 상황을 당하면 아마 이렇게 얘기하지 못할 것이며, 고민자 자신도 그 말이 맞는 걸 알면서도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우리들 보통의 고민이나 걱정은 이성적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만 감정이 그것을 따라주지 못해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이렇게 얘기하겠지 '남의 속도 모르고 하는 얘기지. 너도 이 상황이 되봐~ 그렇게 할 수 있나~ 안 당해봐서 모르는 거야'
2> 어설프고 주관적인 조언으로 가만히 있는 것보다 못한 주관적 질책형 유형
" 어마마? 내 생각엔 네가 좀 잘못한 것 같아. 나 같으면 안 그럴 것 같은데... 너 왜 그랬어? 너답지 않게..."
=> 이런 식의 충고는 고민자로 하여금 괜히 얘기했다 후회하게 만든다. 위로받고 싶고 조언을 듣고 싶어 어렵게 고민을 털어놓은 사람에게 그 사람을 잘못했다 쉽게 주관적으로단 판단해버리는 유형으로 다시는 고민을 털어놓고 싶지 않게 만든다.
3> 들어주기보다는 화제를 돌려 자기 얘기로 바꿔버리는 소통 불가능 이기주의 유형
" 음... 그랬구나? 근데... 나는 지난번에 이런 일이 있었어. 내가 그때 그랬잖니... 호호호호호..."
=> 어렵게 꺼내놓은 고민이 어느새 상대방의 얘기 속에 묻혀 버리는 허무한 대화를 만들어버리는 전형적인 아줌마식 대화. (나도 아줌마이지만 이런 사람들과의 자리 너무 싫다.) 소통, 공감 따위는 없이 오로지 자기 본인의 얘기, 심지어 자기 얘기도 아니고, 자기가 아는 누구 얘기로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고민을 털어놓지 않게 된다. 요즘 20년 넘는 조직생활에서 떠나 전업주부 놀이( 나는 아직 이게 익숙하지 않아 연극하며 살고 있는 느낌이 든다.)를 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나는 나의 미래, 나의 고민, 나의 일에 대해 나누고 고민하고 조언을 듣고 싶은데... 아이들 교육 얘기, 반찬 만들고, 뭐 해 먹는지에 대한 얘기를 몇 시간씩 하다 보면 완전 기가 쭉쭉 빨리고 너무너무 힘들다. (이건 내 성향이고 라이프스타일의 차이이므로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나도 친구도 좋아하고 사람도 좋아하지만 때로는 그냥 혼자 글 쓰고 책 보고 음악 듣고 쉬는 게 좋다.
어쨌든 오랜 사회생활,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 소통을 하다 보면 또한 내가 누군가에게 나의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받은 느낌들, 내가 누군가의 고민을 들었을 때 과연 나는 어떤 조언을 해주는 게 좋을까 고민해보게 되었다.
얼마 전 아는 동생이 고민을 털어놨을 때 2번 같은 대응을 해준 것 같아 너무 미안하고 며칠 맘이 불편했다.
그리고 어떻게 조언해주는 게 좋을까... 내 나름대로 고민해보았다.
4> 들어주고, 나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럴 수 있다 공감해주고, 괜찮다 위로해주고, 그리고 충고하지 말고 대안을 제안해줄 수 있는 경청 공감 긍정 화법 유형
"음~~~ 그랬어? 그럴 수 있지. 충분히 그럴 수 있어. 나라도 그랬을 거야. 누구나 다 그래. 너만 그런 거 아니야. 그럼...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니 선택은 네가 하는 거지만... 나라면 이렇게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 고민자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거나 단정 짓지 말고, 모든 말을 긍정적 화법으로 한다. 강압적으로 이렇게 했어야지, 이게 잘못됐어. 네가 틀렸어. 가 아닌 대안을 제시해봄으로써 고민자에게 다른 옵션을 부담 없이 조언해줄 수 있는 방법이다. 조언에 앞선 위로와 공감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는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들이 상대방에게는 상처도 될 수 있는, 듣기 싫은 말이 될 수도 있다.
직선적인 화법이 누군가는 자랑처럼, 쿨한 사람인 것처럼, 뒤끝 없는 사람인 것처럼 여기지만 상대방을 배려하거나 소통하려는 마음 없는 직선적 화법은 생각 없는 저렴한 화법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공감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얘기, 내가 하고 싶은 말투와 표현을 가감 없이 필터 없이 쏟아내 놓고 '나는 할 말은 다 하는 사람이다, 나는 뒤끝 없이 쿨한 사람이다. 그러니 나는 성격 좋은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진짜 성격 좋은 것일까? No! 난 그렇게 사느니 조금은 예민하고 소심해도 서로를 배려하며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은 최대한 아끼고 우아한 안 쿨한 사람으로 살련다.
조직생활에서 넘쳐나는 일보다 더 힘든 게 인간관계인 것 같다. 일로 인한 실패보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상처가 더 회복하기 힘들 때도 있다. 항상 나는 피해자 같지만, 어느 순간 나 자신이 가해자 일 수 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항상 나의 말, 표정들을 돌아보고 점검해보길 바란다. 그리고 자신의 실수가 느껴진다면 망설이지 말고 사과해주길 바란다. '아까, 내가 말실수한 것 같아. 내 진심이나 의도는 절대 아니었는데 미안해' 그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숙면으로 바꿀 수 있다.
나의 가치는 나의 표정, 나의 말투가 대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