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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부너부 Aug 06. 2021

《고려 무인 이야기》 1권


 이승한 선생님의 고려왕조 시리즈(무신정권 4권, 원간섭기 4권, 여말선초 2권)로 들어가는 첫 권을 읽었습니다. 1170년 경인년의 무신정변에서 1196년에 최충헌이 미타산에서 이의민을 척살할 때까지의 기간을 다루고 있지요. 국사 교과서에서 이 부분을 관심있게 봤거나 소싯적에 대하드라마 《무인시대》를 챙겨본 연식 있는 분이라면 눈에 익을 인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의방-정중부-경대승-이의민으로 이어지는 무신정권 초기 30년 동안의 집권자들이 그들이지요.

 대략 100년 동안 지속된 고려의 무신정권은 상당히 특이한 정권입니다. 이웃 일본에서는 12세기 후반부터 19세기 후반까지 약 700년 동안 무사들이 정치적인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여기에는 분명한 계기가 있었지요. 가마쿠라 막부의 경우, 호겐-헤이지의 난에서 겐페이 전쟁에 이르는 12세기 후반의 혼란기가, 무로마치 막부의 경우에는 가마쿠라 막부의 쇠퇴와 뒤따른 남북조 동란이, 가장 유명한 에도 막부는 오닌의 난/센고쿠 시대/쇼쿠호 정권/세키가하라 전투와 오사카 성 전투로 이어지는 약 150년에 걸친 대혼란기가 차례대로 발생했습니다. 법보다 칼이 앞설 수밖에 없는 전국적인 혼란기가 이어지면서 덴노와 귀족들의 무력대리인에 불과했던 무사들은 정치적 주체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사정이 많이 다릅니다. 고려에서 조선에 이르는 통일왕조가 천 년간 이어졌고, 숭문천무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죠. 그렇다면 어떻게 무신정변이 발생했고 또 100년간 지속될 수 있었던 걸까요? 이 답은 시리즈를 좀 더 읽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인시대》를 보신 분이 있다면 극중에서 이의방 역을 열연했던 배우 서인석 씨의 시그니쳐 대사 중 하나인 "황제는 폐위되셨소이다!"를 기억하실 겁니다. 그런데 이 책에 따르면 무신란 당시 이의방의 계급은 지금의 중위 ~ 대위급 장교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 따지면 청와대 경호실 팀장급이 휘하 요원들을 선동한 후 청와대에 난입해서 고급 공무원과 각 부 장관들, 청와대 비서진들을 참살하고 대통령한테 하야를 종용했다는 건데 지금 시각으로 봐도 경천동지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신분질서, 위계의식이 지금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격했던 900년 전에는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요?

 이 책은 그 외에도 무신란에 참여한 세력을 주동세력, 온건세력, 행동세력으로 분류하며 같은 무인이어도 다양한 노선이 있었음을 강조하거나 망이/망소이의 난, 김사미/효심의 난 등으로 대표되는 무신집권기에 빈발했던 민란을 서술하며 민중사학의 의의와 한계를 고루 설명하는 등 흥미로운 논점을 여럿 짚어주고 있습니다. 덕분에 앞으로도 흥미로운 독서가 이어질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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