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롤 타워 부재가 더 심각한 영향 끼칠듯
이재용 부회장이 1심에서 징역 5년형을 받으면서 삼성그룹이 충격에 휩싸였다. 2심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삼성은 지난 2월부터 적어도 1년 넘게 삼성 역사상 처음인 ‘총수 공백’ 사태를 맞게 됐다.
25일 삼성그룹은 이재용 부회장의 장기 공백에 따른 대책을 따로 내놓지 않았다. 무죄를 기대한 삼성 쪽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삼성은 지난 3월 그룹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사장단회의를 폐지해 사실상 ‘컨트롤타워’가 없는 상태다. 각 계열사별로 사장을 중심으로 한 ‘자율경영’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굵직한 투자 계획 등이 발표되지 않는 ‘복지부동’식의 경영이 이뤄지고 있다는 평이 많다.
재계에선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 때처럼 이 부회장의 ‘옥중경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은 2008년 비자금 특검 때도 이건희 회장 등 총수일가가 경영 일선에서 퇴진하는 쇄신안을 발표한 바 있지만, 사장단회의와 비서실 역할을 했던 ‘업무지원실’은 남겼다. 그러나 현재 삼성은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최지성 전 실장(부회장)이나 장충기 전 실차장(사장) 등 팀장은 퇴사하고, 임직원은 삼성전자나 생명 등으로 배치했다. 공식적으로 그룹을 관리할 조직도 사람도 없는 셈이다.
이 때문에 삼성 쪽은 대형 인수합병 등 투자 결정 등이 상당기간 미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말 하지 않았던 계열사 사장단 인사도 올해 안에 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새 성장동력을 찾거나 조직의 인력 순환 등은 일단 멈춘 셈이다. 삼성 관계자는 “앞으로 입을 피해가 상당할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부회장의 공백이 삼성전자에 주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측한다. 장세진 카이스트 교수는 “이 부회장은 그동안 최고경영자(CEO)가 아닌 대주주로서 역할을 해왔다”며 “삼성은 다른 기업에 견줘 전문경영인이 잘 포진돼 있어 경영상의 공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최지성 전 부회장으로 대표되는 미래전략실과 같은 ‘컨트롤타워’ 부재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대학 교수(경영학)는 “삼성 정도 되는 대기업은 항공모함이다. 모터보트처럼 단번에 항로를 바꿀 수 없는데 그동안 삼성을 지탱했던 미래전략실을 이 부회장이 아무 대책없이 없애버린 것은 기업에 리스크(위험)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보다 삼성의 다른 계열사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슈퍼호황에 힘입어 역대 최고의 실적을 올리고 있지만, 중공업과 엔지니어링 등은 불황과 저가수주 때문에 어려움에 처해있다. 그동안 삼성은 미래전략실 내 경영진단팀 등을 동원해 각 계열사의 경영 상황을 점검하고, 계열사의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결국 삼성은 처음으로 총수가 없는 가운데 거대한 사업을 끌고 가는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됐다. 장세진 교수는 “이재용 부회장이 옥중경영을 한다고 해도 제약은 있다. 전문경영인에 좀더 힘이 실릴 것”이라며 “한국 기업들이 이번 재판을 보면서 가족 승계가 아닌 전문경영인 체제로 시스템을 전환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은 일단 올해에는 현재 ‘자율경영’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