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독일이 박람회 강국이기 때문이다
요즘 <기본에 충실한 나라, 독일에서 배운다> (양돈선 지음, 미래의창) 책을 틈틈히 읽고 있습니다. 지난번 국제가전박람회(IFA)에 다녀온 뒤, 자동차 뿐만 아니라 가전에도 강한 독일 산업을 보고 왔기 때문입니다. 아니 얘네들은 왜 이렇게 제조업이 강한 거지?
그 이야기는 책을 더 읽으며, 기회가 되면 찬찬히 해보기로 하구요.
앞서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박람회 열어 돈버는 나라'
생각해보니 그동안 독일 출장이 많았습니다.
첫 독일 출장은 벤츠 AMG 아카데미였습니다. 초짜 자동차 담당 기자로서, 자동차 회사의 초청을 받아 간 행사였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벤츠 고성능 브랜드인 AMG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와서, 드라이빙 기술을 배우는 곳이었습니다. 얌전한 운전만 하다가, 갑자기 고성능차를 만나니, "브레이크를 믿으라"는 말이 잘 실감이 나지 않기도 했습니다. 자동차를 사랑하는 독일인들을 한껏 보고 온 출장이었습니다
다음은 2013년 프랑크푸르트모터쇼 출장이었습니다.
모터쇼는 세계 곳곳에서 열리지만,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는 꼭 가볼만한 곳으로 꼽힙니다.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독일 브랜드들의 홈 그라운드에서 열리기 때문입니다.
저 사진 속 자동차 옆 멋진 콧수염을 기르고 있는 분이 벤츠의 디터 제체 회장입니다. 벤츠 프레스 컨퍼런스가 끝난 뒤 한참 동안 언론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선 대기업 회장님들이 언론을 피해 나오지 않거나, 질문 몇개만 받고 나가버리는 것을 자주 보던차에, 디터 제체 회장의 모습은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아, 이게 글로벌 스탠다드 군요!! 역시 국내에만 있으면 우물안의 개구리가 되는 건가요. 아무튼 2013년 모터쇼 출장 가운데 이 사진은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모터쇼 뒤에는 폴크스바겐의 본산 볼크스부르크의 아우토슈타트도 찾았습니다. 박람회 이야기하다가 옆길로 좀 샌 셈인데요. 당시만 해도 폴크스바겐은 클린디젤을 가지고 세계 시장을 호령할 때였습니다. 1000만대 생산에 육박하며 GM과 도요타를 제칠 기세였습니다. 아우토슈타트는 기업이 어떻게 전시와 브랜드를 제조업과 연결시키는 지를 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폴크스바겐만의 박람회 같기도 하네요.
2015년에도 프랑크푸르트모터쇼를 찾았습니다. 사실 그때 출장은 중산층 기획 기사를 준비하면서 독일인들을 인터뷰하러 가는 김에 프랑크푸르트에 들러 모터쇼를 봤습니다.
모터쇼는 여전히 압도적인 규모였습니다. BMW 프레스컨퍼런스때 회장이 중간에 쓰러지는 해프닝도 있었죠. 그래도 독일차들의 기세는 여전했고, 전기차 시대를 준비한다는 비전을 내놓기는 했지만, 그건 미래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모터쇼 미디어데이가 끝난 뒤 '디젤 스캔들'이 터집니다. 클린하지 않은 디젤차를 팔면서 기준치만큼 클린하다고 이야기한게 거짓 임이 드러났습니다. 아마 2015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는 내연기관에서 미래 전기, 자율주행차로 자동차 트렌드가 넘어가는 결정적인 해가 아닌가 싶습니다.
2017년엔 메세 베를린에서 열린 가전박람회 IFA를 찾았습니다. IFA는 CES와 MWC와 함께 세계 3대 전자제품 박람회로 꼽힙니다. 그만큼 규모가 어마어마하지요. 그래도 유럽과 가전이 핵심이다보니, CES나 MWC에 견줘 규모나 키노트의 수준이 좀 떨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지멘스, 보쉬. 밀레 등 유럽 브랜드와 떠오르고 있는 하이얼 등 중국 브랜드를 구경하기엔 손색이 없습니다. 별도 건물에 대규모 전시장을 차린 삼성전자와 LG전자도 많은 역량을 투여해 부스를 차렸습니다. 북미 시장에 깊숙이 침투한 삼성과 엘지에겐 유럽은 또 하나의 도전지입니다.
정리해보니, 프랑크푸르트에 이어 베를린까지 2년 걸러 한번씩은 독일에 박람회를 보러 온 셈이네요. 아니 왜 독일에서 왜 이리 박람회가 주목받지? 자동차와 가전 등이 강하기 때문인가?
<기본에서 충실한 나라, 독일에서 배운다>를 보니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독일의 산업분야가 있다. 독일어로 메세 라고 불리는 박람회 산업이다. 세계적인 박람회 200여개 가운데 독일에서 열리는 박람회는 150여개로 3분의 2가 넘는다. 대표적인 박람회로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와 베를린 국제소비자가전박람회 IFA, 하노버 정보통신 박람회 CEBIT 등이 있다.
독일 박람회 산업의 전체 부가가치 생산 규모는 105억 유로에 달하고, 직간접적 효과를 포함해 총 경제적 파급 효과는 연 235억 유로, 고용창출 효과는 22만6000여명에 달한다.
독일에서 박람회 산업이 발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오랜 역사와 노하우다. 메세는 독일 신성로마제국 시기였던 1240년, 당시 황제였던 프리드리히 2세때 시작되었다고 하니, 그 역사가 800여년이나 된다.
둘째, 독일은 유럽 대륙 중앙에 위치하여 지리적 접근성이 높다. 셋째, 독일인 특유의 노력과 치밀한 운영이다. 독일 박람회 산업은 경험과 역량을 통해 전문화와 대형화를 이루고, 다시 더욱 높은 수준의 전문화를 이루는 '선순환'의 고비를 만들어내고 있다.
독일의 강력한 제조업 기반과 오랜 역사, 교통 여건 등이 박람회를 만들었고, 앞으로도 세계 산업 트렌드를 보기 위해서는 당분간 독일을 찾는 걸음은 계속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