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전제품이 명절을 해방시킬까? 스튜핏!!

가전 담당기자의 뜬금없는 생각

by 이완 기자

‘설거지는 어떻게 해야 하나?’

결혼하고 맞은 첫 명절, 고향의 아침은 이런 고민으로 시작됐다. 총각 때는 ‘게으름뱅이’ 아들이었다. 명절에 내려가 먹으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명절은 군대 휴가와 같았다. 그래서 그때는 잘 몰랐다. 식탁에서 일어서고 나면 누군가에겐 설거지가 남겨진다는 것을 말이다.

밀레 슬림라인 식기세척기.jpg 밀레의 식기세척기


결혼 뒤 세상이 바뀌었다. 부엌에서 누군가 노동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아내가 하는 노동이 보였고, 어머니가 하고 있었던 노동이 보였다. 처가에선 장모님과 처남댁의 등 뒤에 숨겨진 노동이 있었다.

명절 음식은 사서 먹자고 했다. 팔을 걷어붙이고 함께 전을 부치기도 했다. 어떤 집은 새로 온 며느리가 전을 부치다 발을 데자 시부모가 나서서 “이제 명절에 전 부치는 건 없다”고 선언했다고 하는데 아직 그 정도까진 못했다. 그래도 여전히 노동은 남아 있었다. 상차림이 한번 끝나면 나오는 접시 더미, 명절 순례를 끝내고 돌아오면 나오는 빨래 더미, 손님이 지나간 뒤에 나오는 먼지 더미.


최근 집에 식기세척기와 건조기, 로봇 청소기 ‘삼총사’를 들였다. 맞벌이하면서 갓난아기를 키우기 위해 가사 노동을 가능한 줄이기로 하며 한 선택이었다. ‘가전’을 담당하는 기자로서 직접 써보자는 욕심도 작용했다.

이번 한가위 연휴 때 ‘삼총사’의 힘을 빌릴 참이었다. 이들은 전기 코드만 꽂아주면 ‘허리가 아프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고, ‘독박 가사’에 눈을 흘기지도 않을 것이다.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가져다 넣고, 빨래는 세탁 뒤 건조를 시키면 간편하다. 리모컨을 누르면 로봇 청소기는 홀로 먼지를 찾아 헤맬 것이다.


20170902_113225.jpg 로봇청소기


나만 알고 있을까. 기업들은 이미 이를 알고 있다. 가전업체는 맞벌이나 1인 가구, 노인 가구가 늘고 있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가사노동을 줄이는 제품 시장의 성장은 또 다른 돈줄이다. 건조기의 경우 미세먼지 문제와 맞물리면서 생산업체는 라인을 완전가동하며 돈을 벌었다. 로봇 청소기 역시 인공지능이 발달했다고 강조하며, ‘먼지와 구석을 이제 제대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남은 건 이제 빨래 개기·옷 다리기 등 아직 사람 손이 들어가는 영역이다. 이미 엘지 의류관리기 스타일러스 같은 제품이 나오기도 했다.


LGE_트롬건조기_제품-.jpg 엘지 트롬 건조기


자, 이렇게 하면 명절의 가사 고민은 해결되는 것일까. 세탁기의 발명이 여성의 가사노동 해방의 중요한 계기였다고 이야기되는 것처럼, 보다 진화된 가전제품이 이제 명절 해방의 마침표까지 찍을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 사회학자 조안 배낵은 <가사노동에 투여된 시간>이라는 논문에서 과학기술의 발전과 가사기술의 과학화가 몇 개 개별 가사노동 사이에서 시간의 재배치를 이뤄냈지만, 이 기간에 주부가 가사노동에 투입한 시간의 총량은 변하지 않았다고 밝힌 적이 있다고 한다. 기계의 역할만 부각되면 더 많은 것을 챙겨야 하는 여성의 노동을 가릴 뿐이다. 우리 사회엔 할머니 시절엔 없던 세탁기와 종이 기저귀도 있는데 “애 키우는 게 왜 힘드냐”고 여성을 타박하는 시선도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니 무작정 기술의 힘을 빌릴 생각부터 했던 것을 다시 곰곰이 뉘우쳐야겠다. 식기세척기를 샀다고 남편에게 ‘면죄부’가 발급되는 건 아니다. 제품을 판 기업에 수익만 안겼을 뿐이다. 한가위에 가족들이 모였을때 이런 제품들을 샀다고 자랑하기보다, 누가 그동안 명절날 무엇을 했나 세심하게 살피는 게 먼저일 것 같다. 이번 한가위에 필요한 건 기술의 발달이 아니다. 그뤠잇?


keyword
작가의 이전글왜 독일 출장이 많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