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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를 건넌 난민들이 도착하는 곳

by 이완 기자

* 지난 2018년 <한겨레신문> 평화원정대는 4월부터 8월까지 지구를 반바퀴 돌았다. 그 가운데 5월부터 6월까지 이탈리아, 이스라엘, 요르단, 이란의 기록이다.


이탈리아 남단 시칠리아섬의 카타니아 공항에 도착한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에트나 화산이 보였다. 희미하게 높은 산만 보였지만 유럽 최대의 활화산 분화구. 가끔씩 터지는 지진과 화산은 유럽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화산이다.

이제 시칠리아는 에트나 화산으로만 유럽을 놀라게 만들지 않는다. 시칠리아는 아프리카 대륙과 가까운 섬. 유럽으로 가는 길. 수십만명의 아프리카 이주민이 무작정 바다로 뛰어들어 향하는 곳이다. 그 중 지중해 한가운데에서 구조된 운 좋은 사람들만 이곳 시칠리아로 올 수 있다.


20180529_185437_HDR.jpg 카타니아 공항에서 바라본 에트나 화산



난민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을 떠나 이탈리아 로마에 도착한 다다음날 바로 시칠리아로 향했다. 유럽의 평화와 직결되는 현장을 보고 싶었다. 2010년대 유럽은 난민 문제로 들끓고 있다. 2015년 3살 아이 아일란 쿠르디가 숨진채 해안에서 발견된 뒤, 유럽 사회는 거대한 물음에 직면했다. 내부에는 열려져있지만 외부로는 닫혀있는 유럽연합의 문을 열 것인가.


5월 30일 문을 열고 들어간 시칠리아 동쪽 카타니아시 국경없는의사회 난민회복센터는 긴장감과 나른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이곳은 아픈 난민들이 치료를 받는 곳이다. 유럽에 발을 딛었지만 아픈 몸 탓에 언제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 지난한 과정을 앞둔 사람들이 있었다. 한편으론 이탈리아에서 다른 유럽 국가로 빨리 넘어가야 하는 건 아닌지 긴장감도 흘렀다. 구호단체 국경없는의사회는 시칠리아의 동부 카타니아에는 회복센터를 서부 트라파나에는 심리상담센터를 두고 난민들을 돕고 있었다. 카타니아 회복센터는 카타니아 시내에서 한참을 오르막길을 달려야 닿는 주택가 사이에 있었다. 5층 건물로 철조망이 쳐져 있지만 유심히 살피기 전에는 난민들이 치료를 받는 곳이라 알아보기는 어려웠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이곳에 24명의 환자를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처음엔 좀 당황스러웠다. 한국에서 생각했던 광경은 십자가가 새겨진 천막이 쳐져있고 분주히 의료진이 오가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전쟁터가 아니다. 회복하는 과정 중에 있는 난민들을 돕는 곳이니, 현대적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20180530_174008.jpg 카타니아 국경없는의사회 난민센터


이곳에서 여러 명의 아픈 난민을 만났다. 나이지리아 출신 빅토르는 2016년 리비아에서 차량정비 기술을 배우다 총을 맞았다. 그는 살기 위해 바다를 죽음을 무릅쓰고 건넜다. 가나 출신 삼손은 왼 다리 옆에 큰 지지대 같은 것을 박아놓았다. 지난 1월 시칠리아에 도착한 그도 리비아에서 총을 맞았다고 했다. 이들은 지중해를 건너는 출발점인 리비아에 대한 나쁜 기억에 몸서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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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서쪽에 있는 트라파니 심리상담센터의 오산나 라코노 심리상담의와는 화상통화를 했다. 시칠리아는 큰 섬이다. 그쪽으로 넘어가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라코노 상담의는 지난주에만 700명의 난민이 심리상담센터에 도착했다고 했다. 그는 리비아의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고 했다. "도착하는 난민 여성 가운데 임신을 한 이들이 늘고 있다. 우리는 리비아에서 성폭행이 많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난민은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기 전에 이미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었다. 다리를 다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나 망연자실해 하는 이들 앞에서 어떤 위로의 말도 던기지 어려웠다. 하지만 이들은 의사들의 도움 속에 천천히 재활훈련을 하는 등 희망을 놓고 있지 않았다. 고무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 트럭 밑에 숨어들어 달리는 바퀴 사이에서 몇시간을 버틴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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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과 독재의 아이러니. 이들이 탈출한 리비아는 원래 아프리카에서 생활 수준이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독재자 카다피는 미국의 압력 속에서도 40년 넘게 건재했다. 그러나 2011년 사막을 넘어 들이닥친 아랍의 봅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카다피는 수도인 트리폴리에서 쫓겨나고, 은신처에서 총을 맞고 숨졌다. 반정부군을 도운 나토군의 개입은 독재자를 쓰러뜨렸다고 알려졌다. 42년 독재가 무너지고 민주국가 들어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현재 리비아는 무정부 상태다. 독재가 물러난 뒤 군벌과 테러리스트의 온상이 됐다.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이 고향을 떠나 유럽으로 가기 위해 리비아에 왔다가 폭력과 학대를 당하고 있었다. 떠날 이들에게서 돈을 뺏고자 하는 이들은 잔혹했다. 아랍의 봄은 따뜻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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