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에 로마에 다시 왔다.
2003년 배낭여행 때 처음 갔던 로마의 기억은 좋지 않았다. 당시 유럽을 덮친 한여름의 열기는 대단했다. 유럽에서 늙고 나약한 많은 이들이 그해 여름을 넘기지 못했다. 무거운 배낭을 들고 찾은 로마는 그 열기의 정점에 있었다. 찬란했던 로마의 유산은 대부분 야외에 있었고, 그곳을 걷는다는 것은 찬란하지 않았다. 조선족 아주머니가 하는 게스트하우스는, 돈 없는 배낭 여행객으로 넘쳐나 콩나물 시루였다. 방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거실에서 잠을 자다 깨다 하다, 로마를 떠났다. 떠날 때 탄 기차마저도 에어컨 고장으로 인해 찜통이었다. 6인실 침대칸에서 땀을 흘리며, 난 그해 여름 다시는 로마를 찾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나의 평화원정대의 시작은 로마였다. 아프리카 남아공에서 한반도까지 가는 여정인데, 이탈리아라니 무슨 영문인가? 평화원정대 루트를 짜던 2018년 초, 우리는 여러 경로를 고민했었다. 처음 시작은 최단 거리였다. 남아공에서 시작해 동부 아프리카를 거쳐 중동을 통과해 중앙아시아로 진입한 뒤 러시아 쪽으로 한반도에 접근하는 것이었다.
논의하는 과정에서 여러 질문이 나왔다. 왜 유럽은 가지 않는가? 중앙아시아에는 평화원정대 기사거리가 있는가? 케이블 방송에서 많이 나오는 구호 단체 광고와 같은 기사거리를 피할 방법은 없을까? 그러면서 우리는 신문사 벽에 붙여놓은 세계 전도에 여러 차례 다른 선을 그었다. 서부 아프리카를 관통해 지브롤터 해협을 통과해 유럽으로 진입하는 경로도 확인했다. 시리아-이라크 등 여전히 전쟁 중인 지역을 피하기 위해 이집트에서 배를 타고 터키로 돌아가는 경로도 고민했다. 최근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를 관통하는 주제 가운데 하나가 난민인데 이를 확인할 필요도 있었다.
결국 평화원정대는 최단 경로로 길을 잡는 대신, 번외 편으로 이탈리아를 다루기로 했다. 난민들이 바다를 건너 유럽으로 향하는 곳, 이탈리아 말이다. 그리고 그 역할은 남아공으로 떠나지 않은 후발대, 내게 맡겨졌다.
로마로 향하는 장거리 비행기 안에서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복잡한 상념 속에 도착한 로마. 아프리카에서 힘들게 북상 중인 평화원정대가 일주일에 한 번씩 쓰는 현지 르포를 잠시 쉬고 중동으로 넘어오는 이동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이탈리아 번외편이 한 주 동안 시간을 벌어줘야 했다. 정해진 인터뷰 약속 없이 그저 이탈리아에 있을 것이라는 난민을 찾아가는 취재는 부담감이 컸다.
‘쿵, 쿵.’로마에 도착한 뒤 살짝 긴장이 풀렸을까. 버스에서 까무룩 잠이 든 나를 깨운 것은 도로에 나 있는 싱크홀이었다.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 도착한 뒤 숙소에서 가까운 테르미니역으로 가는 탐 버스를 탔었다. 공항과 중앙역을 오가는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 기차는 14유로, 버스는 7유로. 돈을 아끼기 위해 버스를 탔다.
웬 충격인가 싶어 눈을 뜨니 버스 밖 풍경도 좀 낯설었다. 따뜻한 기후 탓인지 수목이 많았다. 오래된 건물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15년 만에 다시 찾은 로마였지만 여전히 콜로세움처럼 로마시대 건물들은 주변과 잘 어울렸다. 물론 옛 로마의 원형을 지키기 위해 개발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낯설다는 생각은 나만 한 게 아니었나 보다. 다음날 인터뷰를 위해 만난 마시모 발렌티니 씨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자카르타에도 파인 도로가 없는데 누가 로마에 관해 물어보면 이젠 부끄러울 지경이다.”
발렌티니 씨는 작은 백화점에서 일하며 가끔 국외 출장을 다니는데, 그도 피우미치노 공항에서 테르미르역까지 오는 길을 보며 로마에 발전이 없었다는 사실을 절감한다고 했다. 지난해 로마에서는 이탈리아를 가로지르는 사이클 대회도 중간에 중단되었다고 했다. 도로에 구멍이 너무 많아서, 안전을 걱정한 선수들이 완주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로마시 예산이 부족해 주변에 제초 작업을 못 한 도로를 보고, 사람들은 양을 키워도 되겠다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로마의 도로는 이탈리아 경제 사정을 보여주는 상징 같다. G7 국가이지만 수도의 도로 사정을 염려하는 나라. 그만큼 이탈리아 경제는 과거에 견줘 후퇴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통계를 보면, 이탈리아의 실업률은 11.7퍼센트(2016년 기준)에 이른다. 유럽연합 가입국 가운데 그리스(23.5퍼센트)와 스페인(19.6퍼센트) 다음으로 높다. 청년 실업률은 이보다 훨씬 높다. 경제성장률은 2016년 0.9퍼센트였다.
쇠락한 경제 사정에 대한 비난은 밖으로 향했다. 로마에서 나고 자라 고등학교를 마친 뒤 관광객에게 보석을 파는 가게 점원으로 시작해 이제 백화점 매니저까지 된 발렌티니 씨는 유럽의 다른 나라로 원인을 돌렸다.
“이탈리아가 경제적으로 뭘 하려고 해도 유럽연합에 허락을 구해야 한다. 독일과 프랑스의 발언력이 세다 보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시선은 로마에 점점 보이기 시작한 난민으로도 향했다. 발렌티니 씨는 폭탄선언(?)을 했다. 그는 난민에 적대적인 베를루스코니 정당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발렌티니 씨를 인터뷰 대상으로 소개한 통역은 통역을 하다 눈이 동그래졌다. 10년 넘게 그를 봤지만 그가 베를루스코니를 지지한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고 했다. 그는 “베를루스코니는 성공한 남자다. 많은 이탈리아인이 지지한다. 사생활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그가 있을 때는 이탈리아가 손해를 보지 않았다”고 했다. 성추문과 비리 스캔들 등으로 권좌에서 내려온 베를루스코니는 다시 정당을 만들어 정치적 재기에 성공하고 있었다.
로마를 떠나는 날은 버스 대신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 열차를 탔다. 여전히 로마 제국과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튼튼한 수입인 나라. 로마의 망가진 도로는 누구 탓일까. 기성세대인 발렌티니 씨는 외부를 탓했지만, 며칠 뒤 만난 20대 젊은이 이탈리아인 마르타 차라멜레티 씨의 시선은 밖으로 향하지 않았다. 그는 베를루스코니가 너무 부끄럽다면서 정치인들의 무능을 탓했다. 차라멜레티의 친구들, 이탈리아 20대들은 아버지 세대와 달리 이제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다.
로마의 싱크홀은 전통적 강국 프랑스와 독일 때문일까. 아니면 안전한 곳을 찾아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넌 난민 때문일까. 아니면 정치인 탓일까. 로마가 싱크홀에 빠져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