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엘알 항공 탑승기
지중해를 목숨 걸고 건너온 난민을 이탈리아에서 만난 뒤 다음 행선지는 팔레스타인이었다. 팔레스타인이라니. 막연하게 아프리카에서 올라오는 동료들을 만나, 요르단으로 가는 경유지로 잡았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가는 길도 이스라엘을 통해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 조차 인지하지 못했다.(팔레스타인에는 공항이 없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어떻게 나뉘어져 있는지 구별조차 못했던 내게, 팔레스타인으로 가는 길은 그 차이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로마에서 이스라엘로 가는 길은 생각치도 못한 고난의 길이었다. 항공편을 예약하면서 이름마저 생소한 ‘엘알 항공’에 끌렸던 게 엄청난 경험을 하게 만들 줄은 공항에 가서야 알았다. 왜 엘알항공을 검색 한번 안해봤을까.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 도착해 처음으로 당황한 것은 엘알 항공 접수 데스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보통 공항에 들어가면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처럼 탑승권을 받고 짐을 부치는 곳의 안내판이 보인다. 그런데 엘알 항공은 보이지 않았다.
물어보니 미국 항공사와 이스라엘 항공사를 타려는 사람들은 저쪽으로 가라고 했다. 다른 비행기를 타는 일반 여행객과 달리 다시한번 예약한 항공편이 이스라엘 행인지 확인을 거친 뒤 구분된 구역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는 건물 끝까지 가서 다시 오른쪽으로 꺽으면 이게 출구인지 항공사 데스크로 가는 입구인지 알수 없는 문을 만나는데, 그 안쪽이 엘알 항공 발권 데스크가 있는 곳이었다.
한참을 헤맸지만, 그래도 엘알 항공 데스크를 찾았다는 마음에 안도했다. 이제 짐을 부치고, 탑승권만 받으면 되는 줄 알았다. 정말 그랬다. 엄청난 착각이었다.
줄을 서 있는데 맨앞에 있는 직원이 ‘미국 국적이냐’고 우리에게 물었다. 유대인 또는 백인들만 줄을 선 것이 보였는데 검은머리 탑승자가 있으니 생소했나 보다 싶었다. ‘아니다’라고 답하자 항공사 직원인지 보안요원인지 알 수 없는 이가 나오더니, 함께 줄을 선 나와 사진기자를 따로 떼어 데려갔다.
그리고 일대일 인터뷰를 시작했다. ‘아니 왜 이런 걸 하지’ 라는 당황스러웠지만, 출장을 가야하는 건 우리였으니 아쉬운 우리가 반항을 할 수도 없었다. “이스라엘에는 왜 가느냐?” “우린 여행자다.” “가서 누구를 만나느냐?” “친구가 있다.”
그런데 친구라고 해봤자, 한번도 만난 적 없는 통역을 맡을 이를 이야기하니 대화가 꼬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가 내 여권을 뒤적이다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에 다녀온 비자를 발견하고는 질문은 더 거세졌다. “인도네시아에는 왜 갔냐?” “나는 세계를 여행하는게 취미다.” “여러 나라를 다닌 이유가 뭐냐?” “여행다니는게 취미인데 당연히 돌아다니지 않겠냐.”
한참동안 질문하던 이가 안쪽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여권을 가진 채였다. 그때까지도 몰랐다. 사무실에서 이스라엘로 함께 가려던 사진기자를 질문하던 이와 답을 맞춰보는 것을 말이다. 취재비자를 따로 받지 않았던 우리는 이동 중에 기자라고 밝히지 않았다. 그렇게 다니는게 편했다.
나중에서야 사진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았다. 우리가 말한게 서로 달랐다는 것을. 사진기자는 나를 회사동료라고 했다. 그가 아프리카에서 로마로 온 것도 나를 만나기 위해서였고, 여행 계획은 내가 다 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데 동행자는 그 먼길을 그냥 나를 따라간다고 하니, 뭔가 수상하긴 했나보다.
그렇게 40분 정도를 잡아두더니 이들은 여권과 항공권, 스마트폰, 지갑을 뺀 나머지 모든 짐을 수화물로 부치고 탑승하라고 요구했다. 비행기 안에서 책을 보게 해달라고 사정했지만 예외가 없었다. 스마트폰 배터리도 항공기 규정상 들고 타야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지만, 그냥 모두 무시됐다. 동행한 사진기자는 더 난감해했다. 출장 뒤 아내에게 줄 선물로 로마에서 가방을 샀는데 부치라는 요구를 받은 것이다. 흠집이 날까봐 애지중지 들고 있었는데... 한참 실랑이를 벌였지만 결국 가방 마저 수화물로 보내야 했다.
그게 끝인 줄 알았다. 힘든 인터뷰가 드디어 끝났구나 싶었다. 비행기 탑승 시간보다 훨씬 이르게 게이트 앞으로 가라고 한 것도 그려러니 했다. 그렇지 않으면 비행기를 못탄다고 겁도 줬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비행기에 탈 수 있구나. 아뿔사.
공항 구경도 못하고 게이트 앞으로 허겁지겁 와서 기다리니 또 유니폼을 입은 어떤 이가 와서 우리를 다시 데려갔다. 게이트에서 한층 밑으로 내려가더니 이름표도 붙어있지 않은 사무실로 들어가라고 했다.
본격적인 몸 검색이 시작됐다. 방에 격리되어 있으니 무엇에 홀린 듯 뭐라 반항하기도 힘들었다. 소지품을 모두 내도록 하더니 칸막이가 쳐진 곳으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상의를 벗고 바지까지 내리게 했다. 보안검색이 무척 까다롭다는 미국 공항도 몇군데 다녀봤지만 이런 검색은 처음이었다. 당혹스러웠고 어이가 없었다.
보안 직원은 가져간 내 신발을 들고 오더니 신발 뒷축이 헐어 생긴 구멍이 언제 생긴 것이냐고 물었다. ‘이놈아, 돈 아끼느라 신발 오래 신었다. 거기에 구멍 있는 것도 너 때문에 처음 알았다. 내가 그 구멍에 폭탄이라도 심었겠냐’ 튀어나오는 말을 목으로 삼켰다. 영어로 쏟아내기엔 어려웠다. 그냥 모른다고 했다.
참아야 했다. 아프리카에서 고생고생하며 올라오는 평화원정대를 이스라엘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40분 동안의 온몸 수색을 마치고 드디어 풀려났다. 총을 찬 보안요원은 게이트로 데려가더니, 보안상 가장 마지막에 비행기에 탄다고 했다. ‘고맙다 이놈아’ 그리고는 비행기 안까지 쫓아 들어와 좌석에 앉는 것까지 확인하고 내려갔다.
비행기는 오래된 느낌이었다. 국제선이라면 요즘은 어디나 있는 앞좌석 머리맡에 보여야할 엔터테인먼트 비디오 시스템도 없었다. 왜 엘알을 탔을까.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달리는 속도만큼 후회가 밀려왔다. 수화물로 부친 짐도 나중에 보니 완전히 헤집어놓은 상태였다.
이스라엘에 도착해 우리를 마중나온 목사님을 만났다. 통역을 도와주시기로 한 분이었다. 한참 고생한 하소연을 들어주시더니, 이스라엘에 사는 한국인들은 왠만해서는 절대 엘알 항공을 타지 않는다고 했다. 아니 왜 이걸 이제서야! 무지막지한 대접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이스라엘은 테러 위험을 많이 받는 나라다. 실제로 지난 1968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소속 테러범 3명이 로마에서 출발한 엘알 항공을 납치한 적도 있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깊고도 어두운 관계의 한가운데 들어온 것을 온 몸으로 실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