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 무사히 도착한 뒤 우리는 팔레스타인으로 향했다. 공항이 없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을 통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팔레스타인의 라얄라에 짐을 푼 우리에겐 여러가지 취재 아이템이 있었지만, 가장 기대를 했던 것은 팔레스타인의 젊은 청년 리더 조지 지단이었다. 아, 그를 만나기전까지는 가장 기대했던 건 아니었다.
‘어 전에는 갈 수 있는 길이었는데.’ 운전대를 잡은 통역은 이스라엘 군인들이 길을 막아서자 당황해했다. 스마트폰 지도앱에서는 분명 갈 수 있다고 나온 길도 이들은 갈 수 없다고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우리는 중무장한 장갑차 앞을 지나 다시 길을 돌아 나와야했다. 약속시간에 이미 늦어 입술은 타들어갔지만 총을 든 이스라엘 군인에게 더이상 사정을 하기도 어려웠다. 길이 막힌 우리는 한시간을 더 허비한 뒤에야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팔레스타인의 젊은 청년 리더 조지 지단을 만나러 가는 길은 분리장벽에 막혀 돌아돌아 간 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단을 만나러 가는 길은, 어쩌면 지단과의 대화를 위해 준비된 길이었다.
그와의 첫번째 약속 시간은 오히려 여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날 약속시간은 오후 4시반. 라마단의 마지막 금요일이라 교통 정체가 걱정되기는 했지만 오전 취재일정을 빨리 마친 탓에 무리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이스라엘이 쌓은 분리장벽 앞에 시민들 십여명이 모여서 항의하는 비폭력 집회를 본 뒤 우리는 오후 1시반에 지단을 만나기 위해 출발했다. 가자지구와 견주면 오전 집회를 기사화하기 어려웠던 터라 오후 취재에 대한 기대는 더 높아져 있었다. 통역 겸 운전기사를 맡은 현지 한국인 대학생은 2시간 정도 가면 약속장소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했다. 약속시간까지는 한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는 라말라에서 예루살렘으로 나가는 칼란디야 체크포인트(검문소)를 앞두고 길게 늘어선 차들은 보고 금방 깨졌다. 체크포인트는 말 그래도 검문소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모두 확인한다. 통행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지, 무기는 있는지 확인한다. 외국인이라도 예외는 없다. 다행히 통역이 몰고 온 차량의 번호판은 검문솔를 통과할 수 있는 ‘색깔’이었지만, 재수가 없으면 검문검색을 받아야 했다.
이때문에 평상시에도 막히는 칼란디야 체크포인트는 이날따라 더 난리였다. 라마단의 마지막 금요일, 무슬림들은 예루살렘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와야했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길로 나온 날, 이스라엘 군인들은 차량 통행은 막고 사람만 통행시켰다. 그러니 차량들은 빠져나가지 못하면서 묶여버렸고, 사람들은 체크포인트 바깥에서 차를 내려 걸어서 안쪽으로 밀려들어오면서 길은 아수라장이 됐다. 1미터 가는데 10분씩 걸리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칼란디야 체크포인트 앞에서 두시간을 묶인 뒤에야 다른 길로 통해 베들레헴으로 향할 수 있었다.
결국 약속시간을 2시간반이나 지난 저녁 7시에야 지단을 만났다. 지단은 “이해한다. 여기는 팔레스타인 아닌가”라며 악수를 해줬다. 그러나 이미 해는 뉘엇뉘엇 지고 있었다. 그는 뒷 약속 때문에 30분 밖에 더 내줄 수 없었다.
서둘러 그가 팔레스타인에서 하고 있는 운동 ‘라이트 투 무브먼트(이동할 권리)’가 처음 시작한 곳으로 갔다. 지단은 언덕에서 만난 우리를 골짜기 밑 깊숙한 곳으로 데려갔다. 지단은 “2012년부터 여기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이곳은 시(C)구역(이스라엘이 점령하고 돌려주지 않은 곳)으로 팔레스타인인은 오기가 쉽지 않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인적이 드문 트레킹 길 위에서 지단은 자신의 운동을 풀었다.
라이트 투 무브먼트는 지단과 덴마크 여성 2명이 만들었다. 여럿이 모여 달리는 것이 목적이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운동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다. 마라토너였던 덴마크 여성이 아이디어를 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사람들을 모아 여기서 달리기를 가르쳤다.” 사람들은 토요일 아침마다 모여 왕복 10㎞를 달렸다. 처음에 7명으로 시작해 100여명까지 늘었다. 훈련이 끝난 뒤엔 싸가져 온 음식을 나눠 먹었다.
인적이 드문 골짜기에서 스마트폰 앱 페이스북으로 사람들이 모여 마치 ‘빨치산’처럼 훈련을 했다는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지단은 달리기가 마라톤으로 ‘도약’했다고 했다. 라이트 투 무브먼트는 2013년 베들레헴에서 국제 마라톤대회를 열었다. 600여명이 참가했고, 34%는 여성이었다. 이 대회의 특징은 같은 코스를 두번 왕복하는 것이었다. 분리장벽으로 둘러싸인 베들레헴에선 뛸 수 있는 마라톤 코스가 다해봐야 10㎞밖에 나오지 않았다. 두번 왕복하는 방법으로 마라톤 거리인 42.195㎞를 만들었다. 지단은 “마라톤 코스가 분리장벽과 체크포인트, 난민캠프와 이스라엘 정착촌을 지난다”며 “외국인 참가자들은 직접 뛰면서 팔레스타인 안에서 이동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팔레스타인 전역은 850km 길이의 분리장벽(이중 서안지구는 714km)으로 둘러싸여 있고, 체크포인트(검문소)도 300곳이나 설치돼 있다. 지단을 만나러 가는 길에 5시간이나 걸린 것도 라말라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의 차량 통행을 이스라엘군이 막았기 때문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겪었던 일이, 그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의 이유였던 셈이었다. 약속에 늦었던게 본의 아니게 그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만든 경험담이 되어버렸다.
장벽을 옆에 끼고 달리는 마라톤은 팔레스타인에서 곧 관심을 끌게 됐다. 시작한 지 4년 만인 2016년에는 4600여명이 대회에 참가했고, 이 가운데 1180명이 외국인이었다고 지단은 설명했다. 대회 수익은 6000유로(약 760만원)에 달했다.
달리기 모임도 팔레스타인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베들레헴을 포함해 예루살렘, 하이파, 가자 등 모두 9곳에 모임이 구성됐다. 마라톤대회 수익금과 티셔츠 판매 등으로 돈을 모아 국외 마라톤대회에도 선수를 15번이나 파견했다. 지단은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런던, 레바논 대회 등에 갔고, 아직 한국은 못 갔다”고 웃었다. 한번에 10명씩 팀을 짜서 국외로 나간 이들은 마라톤도 하면서 그 지역 대학과 교회, 레스토랑에서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전했다.
이들의 성공 스토리가 장벽 밖으로 퍼지자 방해자가 등장했다. 엉뚱하게도 이스라엘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이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국제 마라톤대회를 자신들이 주최할 테니 라이트 투 무브먼트는 정부 밑에서 일하라고 했다. 자치정부는 마라톤대회에 들어오는 수익에 욕심을 냈다. 지단은 정부의 관여를 막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이들의 마라톤대회는 2016년이 마지막이었다. “우린 매우 당황했다. 마라톤은 팔레스타인에서 유일하게 돈을 버는 프로젝트였다. 여기에서는 주로 돈을 쓰는 프로젝트밖에 없는데 말이다.” 그는 자신의 사례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팔레스타인 청년 사의 ‘갭’(간극)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까지 듣고는 아쉽게도 지단과 헤어져야 했다. 지단은 자신의 약속시간을 30분이나 늦췄지만 더이상은 어려웠다. 골짜기에서 올라오는 길에 너무나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단이 하는 ‘라이트 투 무브먼트’ 다음 훈련때 찾아갈 수 있냐고 물었다. 그는 두번째 약속을 허락했다.
이번에는 약속시간에 늦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일찍 다른 취재를 마치고 아예 약속장소인 ‘카톨릭 액션 스포츠 코트’ 주변에 한시간반 전에 도착해, 근처 카페에 가서 기다렸다. 그러나. 그런데. 구글맵이 말썽을 부리고, 운전기사가 골목을 헤매면서 또 약속시간 보다 50분이나 늦어 버렸다. 해외 취재 역사상 이런 일은 없었는데, 미안하다는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인터뷰를 할 사이도 없이 이미 운동은 시작되고 있었다. 농구 코트 위에서 여성과 남성, 국적과 연령대가 다른 30여명이 굵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들은 몸을 푼 다음 왕복 달리기, 계단 달리기, 플랭크, 스쿼트를 쉴 새 없이 했다. 얼굴이 벌게진 참가자들을 지단은 쉴 새 없이 몰아쳤다.
이들의 운동은 숨이 턱까지 차오른 뒤에야 1시간 만에 끝났다. 스물네살 여성 아마니 아부 아와드는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팔레스타인에서는 여성이 밖에서 운동하는 게 어렵다. 처음엔 체크포인트 앞에서 뛰는 것도 두려웠는데, 여기서 함께하다 보니 이젠 혼자서도 뛰어다닌다”고 했다.
운동을 마친 뒤 이들과 함께 베들레헴에 있는 분리장벽으로 갔다. 마라톤은 끝났지만, 우리는 장벽 주변에서 운동하는 모습을 사진찍자고 한 요청했다. 약속시간까지 늦었는데 염치도 없는 주문에 지단은 군소리 없이 해줬다. 이들은 장벽 옆을 100여미터 정도 힘차게 두차례 왕복해주면 사진을 만들어줬다. 더없이 고마웠다.
지단은 마무리하지 못한 인터뷰는 식당에 가서 하자고 했다. 역시 운동의 뒷풀이는 ‘먹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 지단은 무슬림은 아니었지만 친구들을 위해 라마단 기간 중 해가 있는 동안 금식을 함께 하고 있었다. ‘아니 금식 기간에 운동까지 하다니’ 운동에는 의지 뿐만 아니라 체력도 필요하다.
그래도 인터뷰는 인터뷰. 운동까지 해서 너무나 배가 고파 허겁지겁 밥을 먹는 그를 붙잡고 다시 물었다. 팔레스타인 청년과 정부 사이의 ‘갭’이 무엇인가. “팔레스타인은 12년 동안 선거를 하지도 않았고, 계속 같은 사람들이 정부와 의회를 맡고 있다. 거리에 나가보면 절반 이상이 청년인데, 의회에는 우리의 대표자도 없고 우리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도 없다. 정부는 좋지 않은 결정을 많이 했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 우리 프로젝트도 이렇게 망쳐놓지 않았나.”
그에게서 팔레스타인 청년들이 겪는 좌절이 느껴졌다. 장벽은 외부에도 있고 내부에도 있었다. 팔레스타인 청년들은 장벽 밖과 싸우기도 버거운데 장벽 안에서도 지쳐있었다. 서안지구를 통치하고 있는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대통령은 선거도 하지 않고 13년째 집권 중이었다. 부패 의혹에도 연루돼 있다. 상황이 더 좋아질 것이란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건너편 가자지구에서는 청년들의 울분이 이스라엘군에 대한 맨주먹 대항으로 나타났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사는 15~29세 팔레스타인 청년 140만명은 장벽 안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지단은 그나마 국외 종교단체의 도움으로 미국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청년이었다. 그는 같은 나라 청년들의 아픔을 피하지 않았다. 사나운 총과 거대한 장벽 앞에서 이런 운동이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물었다. “나 혼자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것은 작은 변화일 뿐이다. 사람들이 웃게 하고, 마라톤을 하고, 국제사회가 우리 스토리를 보게 하고…. 그러다 보면 우리의 하루하루가 바뀌지 않을까. (이스라엘의) 점령을 끝낼 수 있다는 일상의 희망을 갖는 것 말이다.”
그가 가는 길은 장벽에 작은 균열이라도 낼 수 있을까. 그의, 그와 함께 내딛는 친구들의 발걸음이 작지만 그래도 장벽을 두드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