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장 열대야였던 지난 여름 쓴 글. 뜨거웠던 여름은 지났지만, 가을 날씨는 20도와 영하의 기온을 롤러코스터타고 있다. 기후위기다.
‘탄소중립기본법이 기업의 탄소 배출 감축을 추동해야 한다.’
시민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정부의 책무를 물었던 ‘기후소송’에서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내린 판결에는 기업이 등장하는 대목이 있다. 정부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더 높이기 어려운 이유로 탄소배출이 많은 국내 산업 구조를 이유로 들었는데, 헌재는 그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온실가스 감축은 미룰 수 없는 지금의 과제라고 판단했다.
이런 대목이다. “온실가스 다배출 업종이 많은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정부가 사회경제정책 등을 고려하여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결정할 경우, 단기적인 감축의 부담을 완화하고자 하는 유인이 많을 것인데, 이 때문에 감축 비율을 가속화하지 못하면 그만큼 산업구조의 개선 속도도 느려져서 이후의 감축 부담이 다시 가중되는 악순환이 생길 수도 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비율인 ‘2018년 대비 40%만큼 감축’이라는 수치도 2050년 탄소중립에 이르는 중간 목표로 충분치 않은데, 2031년부터 2049년까지 국가의 목표를 세워두지 않은 현행법이 미래 세대에만 부담을 떠넘긴다는 판단이다.
재계는 그동안 기업 여건을 고려해 2030년까지 세운 감축 목표도 부담스럽다고 했다. 최근 한 보수신문은 독일 자동차회사 폴크스바겐의 구조조정 계획을 두고도, 유럽이 너무 급격한 친환경정책을 세웠기 때문에 제조업이 쇠퇴하는 것이라며 공격적인 탄소배출 감축에 대해 잔뜩 경계하는 기사를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헌재는 정부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어려운 숙제를 미룬다면, ‘산업구조의 개선 속도’도 늦어져 향후엔 더 뼈아픈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고 봤다. 이는 단순히 환경에만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다. 전 지구적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유럽 등에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탄소배출권거래제 등 ‘녹색 장벽’을 점차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기업 경쟁력에도 직결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예상치 못한 지정학적 변수가 없었다면 유럽의 탈탄소 전환은 다른 나라에 보다 더 빠른 구조조정을 요구했을 가능성이 크다.
헌재 판결문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또 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하여 설비 투자를 포함한 사업 계획을 세워야 하는 기업과 같이 각 부문에서 노력하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온실가스 감축 정책의 일관성이 실제 배출량 목표가 달성될 가능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정책은 일관성이 가장 중요한데 정부가 이를 포기하면 누가 따라가겠느냐는 일침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온실가스 감축에 효과가 큰 재생에너지 확대 방안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 어느 기업이 빛과 바람으로 가자고 할 수 있겠냐고 짚은 셈이다. 기업 경영의 가장 어려운 점은 불확실성이다.
기업들은 이미 갈피를 잡기 힘들다. 예를 들어 사업장에 필요한 에너지를 재생에너지 100%로 전환(RE100)하는 속도는 국외 사업장이 국내 사업장보다 훨씬 빠르다.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의 경우 오스틴 공장이 있는 미국 법인은 2020년 재생에너지 100%를 달성했지만 국내 사업장은 30년 뒤인 2050년이 목표다. 국외 생산거점이 많은 현대자동차도 2025년까지 미국·멕시코·인도에서 재생에너지 100% 전환을 추진하고 있지만 국내 사업장은 2045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가 재생에너지를 충분히 공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도 기후위기 대책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때다. 7일 서울에서 열린 ‘907 기후정의행진’에서 약 3만명에 이르는 참가자들이 역삼역, 선릉역, 포스코 사거리를 거쳐 삼성역을 향해 행진했다. 삼성전자·지에스(GS)칼텍스·포스코 등 지구 온난화에 영향을 끼치는 탄소 배출을 많이 하는 기업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들뿐만 아니라 기후재난에 지친 이들은 누구나 기업의 ‘그린 워싱’에 분노하는 소비자로 바뀔 수 있다. 간밤에도 서울엔 역대 가장 늦은 열대야가 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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