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가격 상승에 밀린 경기도 이사 난민의 삶
경기도 직장인의 삶은 버스다.
치솟는 집값에 치여 광역버스의 근거지로 이사오면, 삶은 버스 안에서 사람들에 치이는 게 일상이 된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2343명 대상) 결과를 보면, 서울-경기를 오가는 출퇴근 직장인들의 평균 출퇴근 시간은 하루 평균 120분이었다. 하루에 두시간 이상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삶은 팍팍하다. 직장인들의 여가시간은 출퇴근 시간에 반비례했다. 하루 평균 출퇴근 시간이 120분 이상인 직장인들의 여가시간은 하루에 평균 61.3분으로 조사됐다. 특히 서울-경기를 오가는 직장인의 일 평균 여가시간은 52.6분으로 전체 응답군 가운데 가장 짧았다.
버스에서 시간 다 보내니, 정작 집에 와서 여가 시간은 출퇴근 시간의 절반 밖에 안된다. 이와 반대로 10분 이내의 출퇴근 시간을 쓰는 직장인의 여가시간은 92.5분에 이르렀다.
하루에 30분. 일주일이면(주 5일 기준) 150분. 한달이면 거의 600분. 10시간이다. 하루 한시간씩 만시간을 투자하면 전문가가 된다는데, 출퇴근 시간이 짧은 이들은 하루 만시간을 쌓을 확률이 훠월씬 높은 것이다.
피로도는 출퇴근거리와 시간에 비례했다. 평소 자신이 느끼는 피로도를 점수로 직접 적게 한 결과, 왕복 출퇴근시간이 120분 이상인 그룹과 하루 이동 거리가 서울-경기인 그룹의 피로도가 8.2점(10점 만점)으로 공동 1위에 올랐다. 전체 평균은 7.7점이었다.
재작년에 이런 직장인들의 애환을 담은 기사를 쓴 적도 있다. 출퇴근만 4시간, 청춘이 다 가네.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38375.html
저 기사를 쓸 때만 해도 나는 출퇴근의 고통을 체감하지 못했다. 피로도 1위 몰랐다.
그런데.... 나도 지난해말 경기도의 한 신도시로 이사왔다.
전세집을 찾아 이사 뒤 버스는 삶이 됐다. 버스를 처음 탔을때 무릎이 꽉 끼는 좌석공간에 놀라기도 했다. 몸이 장시간 출퇴근의 임상실험장이 된 기분이다.
어디를 가도 집으로 가는 광역버스와의 연결성을 살폈다. 집에 가기전 스마트폰의 버스 앱을 열어 광역버스가 어디쯤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취미가 됐다.
버스 앱이 없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버스를 타고 다녔을까? 버스 앱에 맞춰 출퇴근 시간이 돌아갔다.
정류장이 서울에 가까울수록 출근길에 앉아 갈 가능성은 줄어든다. 광역버스 차고지가 서울에서 먼 곳에서 출발하다 보니, 출근시간에는 몇 정거장 안가 만석이 되기 일쑤다.
서울과 멀어질수록 버스 자리 잡기가 편한 것은 서울의 치솟는 전셋값을 감당 못해 쫓겨난 서민의 마지막 보루일지 모른다. 한국 교통연구원은 서울시 주택가격의 과도한 상승과 수도권의 지역별 주택가격 격차가 장거리 통근을 유발하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버스에 타서도 중요하다. 어떤 사람 옆에 앉을지가 이후 1시간을 좌우한다. 잽싸게 앉아 있는 사람들을 쳐다본 뒤 덩치가 작은 사람 곁에 앉는다. 1시간 내내 어깨나 팔꿈치 싸움을 하며 가면 ‘출근하다 죽겠네’ 하는 생각이 든다.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은 여성은 버스에서 인기 있는 존재다. 하지만 출근길 내 옆에 오리털이든 거위털이든 잔뜩 집어넣은 파카를 입은 남자가 앉는 건 머피의 법칙일까. 생각보다 9시 출근 시간에 맞춰 서울로 향하는 여성의 숫자가 적음을 알게됐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았으면 하는 생각을 출근길 버스에서 하게 된다.
그래도 버스의 세계에 희망은 있다. 이층버스다.
2015년 10월부터 운행을 시작한 이층버스는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다. 일단 이층버스가 뜨면 자리 걱정 없이 줄을 선다. 총 72석에 좌석 간격도 여유 있다.
경기도는 고속도로에서 입석 승차가 금지된 뒤 버스의 좌석을 늘리는 것으로 대응했다. 경기도에서 운행하는 버스 가운데 총 385대가 좌석을 늘렸다. 운행되고 있는 현대차의 유니시티는 제원상으로는 41석인데, 현재 탑승 좌석은 45석이다. 좌석을 늘리면 좌석간 간격이 좁아 케이지에 실려가는 동물들과 다를바 없다. 49석짜리 대용량 버스를 도입한 것도 109대 이른다.
경기도청 관계자는 "서울시에서 버스 증차를 허용해주지 않아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국내 버스는 그동안 현대와 대우의 과점 시장이었다. 기아는 고속버스용 고급버스만 생산한다.
경기도에 새로 도입된 이층버스는 볼보에서 만든 것을 수입한다. 이층버스는 높이 4m, 너비 2.5m, 길이 13m. 2층의 높이는 1.7m로 지나다니는 데 큰 불편이 없다. 좌석마다 USB 충전 포트가 있다. 스마트폰 배터리 걱정 안 해도 된다. 가끔은 기사분이 승객들 자라고 불을 끄는데, 좌석마다 따로 켤 수 있는 독서등이 있다.
이층버스의 가격(4억5천만원)은 일반 버스의 3배 정도다. 경기도는 2015년 이층버스 9대를 도입한 데 이어 2016년 10대를 더 도입해 김포와 남양주 등에 투입한다고 했다. 정거장에서 더 많은 이층버스를 만나리란 희망. 서민에게 팍팍한 원숭이해에 그래도 희망 하나는 생기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