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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기자 Jun 07. 2015

종신고용 신화가 무너진 집

일본은 한국의 주거 미래일까?

(파견대상을 늘리는) 파견법을 개정하기 전에는 달랐나?


"달랐다고 생각한다. 이전에는 일본형 고용이라고 해서 종신고용이었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대학 졸업하면 취업하고, 취업해서 어느 정도 수입이 생기고, 연차가 오르면 연봉도 오르고, 그러면 자신의 집을 살 수 있었다."


모야이 지원센터의 이나바씨



일본 도쿄에서 만난 시민단체 ‘자립생활을 위한 모야이 지원센터’에서 일하는 이나바 씨는 1999년과 2003년 정부가 파견법을 개정하면서 일본에서 '마이홈을 갖는 방식'은 깨져버렸다고 말했다. 우리랑 별반 다르지 않다. 대학 졸업하고 취직해서 돈을 모아 은행 대출을 합쳐 집을 사는 것. 그리고 평생 일하면서 대출을 갚는 방식 말이다. 그런데 종신고용이 아닌 비정규직이나 파견직으로 일하니, 집을 갖는다는 것은 물 건너가 버린 셈이다.


 "물론 (정규직이 안되고) 그 전부터 배제된 사람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폭이 확대됐다. 정규직도 안되고, 취직활동 자체가 너무 힘들어졌다. 취직에 실패하면 인생이 탈락한다고 생각하니 취업활동을 하던 이의 자살도 늘었다."


 그럼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최근 확대되는 탈법 하우스는 건물 한 층을 빌려 완전히 쪼개는 것이다. 몸만 누일 수 있는 크기의 방만 만들어놓는다. 창문도 없고 화재에 강한 벽도 만들지 않으니 주택이 아니라 명목상 사무실이나 창고로 등록한다. 도심에서 가까운 곳은 방 하나의 월세가 5만 5천 엔이다. 월세를 내려고 두 사람이 좁은 방에서 같이 지내기도 한다.”

그가 보여준 설계도는 한국의 고시원과 비슷했다. 방이 아닌 직사각형 모양의 상자들이 모인 모습이었다. 이런 탈법 하우스에도 들어가기 힘든 이들은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넷 방(PC방)(사진)을 찾는다. 일본 도심의 한 넷방을 찾아갔더니 12시간을 보내는 데 2400엔이라고 했다. 우리 돈 2만 2천 원 정도다. 한 사람씩 들어가는 칸막이가 쳐진 공간을 들여다보니 몸을 간신히 누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일본의 넷방.  일본 시민단체 활동가분들이 안내데스크와 이야기하며 시선을 끄는 사이에 내부로 들어가 찍었다. 넷방 안엔  이렇게 격리된 방 밖에 없다.




도심이 비싼데 외곽의 싼 집으로 가면 안되나?


“도심 지역에 살지 않고 집값이 싼 외곽에 살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파견 노동자들은 몇 개월마다 일하는 지역이 바뀐다. 최대한 교통이 편리한 곳에 있어야 어디로 배치되든 접근성이 좋다. 계약직이나 임시직 노동자에게 교통비를 지급하지 않는 회사도 늘어나고 있다.” 도쿄 전철의 기본료는 190엔으로 한국보다 비싸다. 전철 간 환승할인도 없어 도심 외곽으로 나갈수록 교통비 부담은 커진다.


모야이 지원센터는 이런 생활을 전전할  수밖에 없는 연수입이 200만 엔(약 1780만 원) 이하인 20~39살의 미혼 남녀 1767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설문조사 대상자 가운데 77%가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해 옆에 산다기 보다는 독립할 능력이 없었다.

또 부모와 함께 거주하지 않는 이들 가운데 13.5%는 넷방이나 24시간 운영되는 맥도널드 햄버거 체인점에서 머무는 등 홈리스 상태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이나바는 “일본 젊은이들이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거나, 부모와 떨어져 살 경우 홈리스가 될 가능성이 큰 상태인 것으로 결과가 나와 충격적이었다”고 설명했다.


규슈 취재를 마친 뒤 도쿄로 와서 모야이 지원센터를 처음 찾은 것은, 일본의 집이 없는 홈리스의 현실과 주거 빈곤 문제를 듣기 위해서였다. 이나바 씨는 20년 동안 일본 빈곤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낸 시민단체 활동가다. 모야이 지원센터는 홈리스의 집을 마련하기 위해 홈리스 2300명의 보증을 섰다. 일본에서는 집을 빌리기 위해 보증인이 필요하다.  보증인이 없으면 집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암담함을 느꼈다. 일본을 따라가는 한국. 우리 역시 정규직 고용은 점차 줄어들고, 비정규직과 파견직 일자리는 늘어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이들 가운데 정규직 취업자는 이제 얼마 되지 않는다.


이나바 씨에게 물었다. 최근 한국에서는 정부가 아베노믹스를 따라가자고 한다. 일본처럼 고용에 대한 규제를 풀어야 청년실업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거다. 일본에서 경험했을 텐데 어떻게 생각하나


"아베노믹스는 대기업 정규직 직원이나 주식을 가진 이들을 위한 정책이다. 그들은 윤택하게 될지 모르지만 청년이나 중소기업에게는 전혀 혜택이 가지 않는다. 경제계에서도 낙수효과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최근 국회에서 전면적으로 규제완화를 하기 위해 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노조와 시민단체가 연대해서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일본 경제처럼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도 주거 빈곤 문제에 직면할 것인데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나바씨와 인터뷰 뒤 모야지 지원센터의 교류방에서 점심을 같이 먹었다. 모야이의 지원을 받은 이들이 주말에 모여 사회와 교류하는 장소 등으로 쓰인다. 반찬 중에 김치도 있다 ㅋ


이 말을 마지막으로 이나바 씨와의 인터뷰를 끝냈다. 착잡했다. 역시 종신고용이 사라진 한국 사회, 따박따박 월급 받아 이전 세대처럼 집을 장만할 수 없는 사회, 청년은 앞으로 어떤 집에서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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