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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기자 Jun 14. 2015

원전 피난민, 셰어하우스에서 만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뒤 일본의 변화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를 폐로시킨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더 이상 수명연장을 하지 않고 원전 1기를 영구정지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기사를 보면서 주거 문제를 취재하러 갔다 일본 규슈 이토시마시에서 만난 이들이 생각났습니다. 이토시마시는 규슈섬 북쪽에 있으며 후쿠오카 공항에서 한 시간 정도면 닿는 곳입니다. 브런치에 계속 연재하고 있는 글에서는 이미 이토시마를 떠나 도쿄에서 주거문제를 취재한 글이 진행되고 있었는데요. 오늘은 다시 이토시마  사람들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계기가 있을 때 이렇게 안 써놓으면 또 까먹을 것 같기도 하구요. ^^;;;


고이치 시다씨, 그가 사는 이토시마의 셰어하우스 앞에서


  아시다시피 원자력발전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은 일본에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가 원전을 덮치면서 원전이 멈췄고 방송뉴스에서 나온 대로 원전 뚜껑이 날아갈 정도로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일본 열도에 퍼진 방사능 규모는 엄청나다고 합니다.


  이토시마에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뒤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이 있는 곳에서 가급적 멀어지려다 보니 이토시마가 부상한 것이지요. 이토시마는 예전부터 도시를 떠나 귀농을 하거나 자유로운 히피족이 많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살기좋은 곳이다 보니 방사능을 피해 온 사람들도 모인거지요.


  셰어하우스를 취재하러 갔다가 고이치 시다씨를 만났습니다. 고이치씨는 도쿄에서 요리사로 일하다, 3.11 후쿠시마 사고 발생 뒤 이토시마로 터전을 옮겼습니다. 원전 사고를 통해 그는 에너지 문제와 경제문제에 눈을 뜨게 됐다고 합니다. 도시는 바깥에서 큰 에너지를 가져와야 하는 구조인데 시골인 이토시마로 와서 자립 경제로 가는 길을 꿈꾸었다고 합니다.  셰어하우스는 사람을 모으고 공동체를 구성하는게 자립하기에 좋기 때문에 만들었다고 하네요.


  그렇다보니 이야기는 셰어하우스 보다 원전 사고로 흘렀습니다. 그는 원전 사고 뒤 일본이 변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일본 젊은이들은 정치에 무관심했다. 원전 사고 뒤에는 정치에 관심을 가진 친구들이 늘었다. 이전에는 자신만 따로 살면 되겠다고 생각하다가, 자신의 의지와 달리 사고가 자신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생각을 더 표현해야 사회가 바뀔 수 있다고 느낀 것이다. "


  "원전 사고가 났을때 도쿄 슈퍼마켓에서 품귀현상이 일어났다. 생필품을 챙기려는 사람들 때문에. 이런 구조를 바꿔야 한다. 도쿄 쪽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전에는 원전 반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고 한 사람들과 말이 많이 통한다."  고이치 씨는 셰어하우스의 친구들과 함께 이토시마 근처 사가현에 있는 원전 재가동 반대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아츠코씨. 집 주변 주부들과 이렇게 모여서 지역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고 합니다.



  도쿄에서 살았던 아츠코 역시 후쿠시마 원전 사고 뒤 이토시마로 이주했습니다.

  아츠코씨는 원전이 터지고 며칠 뒤 도쿄의 방사능 수치가 높아지자, 남편이 도망을 치라고 떠밀어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탔던 때를 잊지 못한다고 합니다.


  "도쿄 공항에 가족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짐을 싸서 어디론가 가는 사람이 많았죠. 대부분 아버지는 가만히 남고, 아내와 아이만 비행기를 탔어요. 직장 등의 문제로 떠날 수 없는 아빠만 남는 거였죠." 아츠코는 이 얘기를 할 때 눈시울이 불거졌습니다. 그때가 다시 생각이 났나 봅니다.  


  아츠코씨는 이토시마에서 원전 반대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조장해서 나쁜 것에 대응하자는 방식은 아니고, 자연스럽게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원전을 원하는 사람을 별로 없을 텐데 정부나 권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니 (반대하는)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죠." 아츠코는 집 주변 주부들과 자주 모여 얘기를 나눈다고 했다. 이날도 아츠코씨는 함께 모여 밥을 먹고, 함께 뭔가를 배우고 있었습니다.


  기사를 보니 원전을 폐로하는 과정은 지난 하다고 합니다. 아직 한수원이 어떤 식으로 고리 1호기를 폐로할지 결정하지 않았지만 25년이 걸릴지, 아니면 100년 가까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어떤 나라도 성공적으로 폐로를 끝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동안 원전의 사회적 비용에 산정하지 않았던 폐로 비용도 얼마나 들어갈지 모릅니다. 원전은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우리나라에게 저렴한 에너지원일까요? 아닐까요?


 일본 사람들은 후쿠시마 사고 뒤 원전은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원전을 처음으로 폐로한다는 것은 우리 뒷세대에게 전기도 안나오는 방사능 덩어리를 수백년간 물려준다는 이야기입니다. 이토시마로 온 사람들처럼 '설마 했던던' 원전 사고가 나서 삶의 터전을 이주하기 전에, 이번 폐로 이슈를 통해 우리도 '원전'과 '에너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고이치와 아츠코 등의 풀뿌리 활동은 시민단체 활동가인 후지몽을 이토시마 시의원으로 당선시켰다. 그는 탈핵, 생태, 환경 등의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이 글을 기반으로 작성한 <한겨레21> 기사입니다.  "공동체·생태, 원전사고가 가르쳐준 것들"

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397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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