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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기자 Jun 26. 2015

이 곳은 그냥 '셰어하우스'가 아닙니다

일본 도쿄 '커넥트 하우스', 미래 스타트업 합숙소를 꿈꾼다  

 스타트업 열풍입니다. 아, 스타트업은 초기 벤처기업이라 이해하시면 됩니다. 요즘 IT 뿐만 아니라 여러 부문에서 창업을 많이 하고 있죠. 한국의 상황입니다.


 오늘 소개할 일본의 새로운 주거공간 '셰어하우스'는 스타트업 등 창업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실 저도 '커넥트하우스'의 양 폴 사장을 만나기 전까지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만나보고 나서 '아, 이런 시도도 할 수 있구나' 하고 빙긋 웃었습니다.


 몇 번의 글로 소개해 드렸지만, 셰어하우스는 집값이 비싼 일본에서 말그대로 집을 공유하고 나눠쓰는 집입니다. 방은 혼자 쓰지만 부엌과 거실, 화장실을 함께 쓰는 것이지요. 대학가의 '잠만 자는 방'(저도 대학 다닐때 묵었더랬죠) 하고도 비슷하지만, 좀더 공동체답게 살 수 있는 곳입니다.

  

  일본 도쿄에 있는 셰어하우스 ‘커넥트하우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셰어하우스에서 지내는 것을 뒤집어, 자신의 일을 만들 수 있는 기회 제공의 장으로 탈바꿈시킨거죠. 어떻게 하는 지는 아래의 인터뷰에서 소개하겠습니다.

커넥트하우스를 만든 양폴 대표. 재일동포 3세인 그는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사업을 하고 있다.

  양 폴 커넥트하우스 대표를 지난 5월22일 도쿄 중심가 롯폰기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만났습니다. 한국에 와 본 적이 있다길래 "아 그랬습니까" 했는데, 그는 제가 못 알아차리자 "제일동포 3세"라고 소개했습니다. 정확히는 "한국계이면서 일본에 거주하는 미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죠. 그와의 문답입니다.


  - 다른 셰어하우스와 달리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를 고민한 게 특이했다.

  “미국에는 벤처회사가 많다. 젊은이에게 도전해보라고 자본을 지원해주는 경우가 많다. 일본은 쉽사리 자금을 지원하는 경우도 없고, 창업한다고 하면 위험부담이 크다고 말리는 사람이 더 많다. 실패는 할 수도 있다. 실패가 좋은 경험이 되어서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 있어야 하는데, 일본은 ‘낙오자’ ‘실패자’라고 해버린다. 그러니 청년들에게서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는 도전정신이 사라져버렸다. 셰어하우스를 구상할 때 그냥 사는 곳이 아니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했다. 열정이 있는 외국 청년들을 오게 해서 같이 생활하고 인맥을 만들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말이다. 이들끼리 신뢰를 쌓다보면 사업 모델도 찾고 함께 해볼 만한 생각이 들지 않을까.”


  2011년 시작한 커넥트하우스는 현재 3곳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우스 거주자 가운데 일본인이 아닌 외국인의 비율은 30% 정도. 커넥트하우스가 거주자들을 돕기 위해 만든 창업 테마는 ‘음식’입니다. 커넥트하우스는 스시 아카데미 등에서 강사를 초빙해 입주자들과 함께 음식도 만들고 나눠 먹는다고 합니다.


양 폴은 투자회사도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커넥트하우스에서 누군가 좋은 아이템으로 창업을 한다면 직접 투자할 생각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 곳은 일종의 스타트업 창업을 꿈꾸는 합숙소 같은 역할도 할 수 있겠네요.

  

“정보기술(IT) 분야는 기술이 필요해서 전문가가 아니면 취업이나 창업에 뛰어들기 힘들다. 먹는 것이라면 누구나 맛을 느낄 수 있으니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요리를 배우면 비교적 창업하기 쉽다. 일본의 식문화도 다양하니까 여기에 관심 있는 외국 청년도 많이 올 것이라 생각했다.”

  

- 창업을 고민하는 일본 청년이 많이 찾아오나.

  “일본도 한국도 그렇지만 부모들은 ‘의사나 변호사가 돼라’ ‘대기업에 들어가라’고 권한다. 젊은이들이 부모의 압력이나 사회적 시선에 못 이겨 이런 길을 택한다 하더라도 나중에 실제 행복할 수 있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일본 청년들은 놀라울 정도로 도전정신이 부족한 것을 많이 경험했다. 처음 셰어하우스를 구상할 때는 일본 청년들이 모여 살며 네트워크를 만들고 창업까지 나아가는 것을 지향했는데 일본 청년들의 수요가 별로 없었다. 지금은 적극적인 외국인들이 먼저 모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이런 곳에 관심 있는 일본 청년을 합류시키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집을 쉬는 장소에서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곳으로 셰어하우스를 확장시킨 데에는 그의 경험도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고등학교 때 미국에 건너가 공부를 했습니다. 고등학교, 대학교로 이어지는 기숙사 생활이 그에게 가족 같은 친구가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줬다고 합니다. 함께 사는 것을 통해 힘을 얻은 그로서는 히키코모리(주위와 소통 없이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일본 젊은이)나 불안정한 일자리 탓에 집을 이리저리 전전해야 하는 일본 청년들이 안쓰러웠을 것입니다.


“커넥트하우스의 월세는 6만~7만5천엔 수준이다. 일본 집은 가구가 모두 갖춰진 곳이 없는데 우리는 가방만 가지고 들어오면 된다. 좋은 시설에 견줘 월세는 저렴한 편이다. 부동산 임대가 목적이 아니라 사람에 투자하기 위해 만들었다. 커넥트하우스라고 이름 붙인 것도 ‘교류의 장으로 만들자’고 해서다.”

  

- 셰어하우스에서 낯선 이들과 산다는 게 쉽지만은 않을 듯하다.

“셰어하우스는 정확한 콘셉트가 필요하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동료가 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이상한 사람이 들어오면 그 셰어하우스는 끝난다. 한두 번 정도 잘 맞지 않는 사람이 들어왔는데, 계약서 내용을 토대로 내보냈다.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지도 않고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기도 힘들다.”


그는 세계 여러 곳에서 일하며 친구를 사귀었다고 합니다. 스위스와 독일, 미국에서 일했습니다. 그가 일본으로 돌아온 것은 세계적으로 부동산 거품이 꺼졌던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리먼브러더스 사태는 금융기관이 집을 담보로 계속 돈을 빌려주면서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리던 게 갑자기 허물어지면서 금융기관이 파산하고 불경기가 닥친 것을 말합니다. 그는 당시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하고 미국의 한 대기업 금융 부문에서 일했는데 “회사가 이익만 추구하는 데 환멸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의 삶 자체를 듣는 것도 재미있네요.


“회사 주식을 가진 이는 돈도 벌고 좋았겠지만, 그게 우리 사회의 부가가치를 일으켰을까.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던 차에 리먼 사태가 터지고 해서 집 문제를 해결해보자, 재미난 일을 해보자 싶어서 일본으로 돌아왔다.”

    

일본 ‘커넥트하우스’의 직원인 대니얼 휴즈가 커뮤니티룸 한가운데 서 있다. 대형 주방을 갖춘 커뮤니티룸은 입주자들에게 요리를 가르치고, 서로 교류하는 공간으로 사용된다.

집을 둘러싼 욕심의 끝을 본 경험이 집 문제를 해결하는 데 뛰어들게 만들었다는 게 아이러니했습니다. 그를 인터뷰한 뒤 진짜 커넥트하우스가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케가미점으로 향했습니다.

 저녁 7시 퇴근 시간을 맞아 전철에는 직장인과 학생이 그득했죠. 전철은 도쿄 23구(서울시와 비슷한 행정구역)와 수도권을 거미줄처럼 잇고, 그 거미줄을 따라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전철을 타고 1시간 가까이 걸려 간 이케가미점은 한적한 주택가에 있었습니다.

  

이케가미 커넥트하우스는 허름한 작은 빌라를 개조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건물 내에 모두 15채의 집이 있고, 그 안에 있는 40개 방을 빌려주는 식입니다. 가장 큰 집은 입주자들이 모일 수 있는 커뮤니티룸으로 만들었구요.(사진) 커뮤니티룸 가운데에 대형 싱크대를 놓고, 한쪽에는 모여서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넉넉했습니다. “현재 20명이 살고 있다”고 커넥트하우스에서 일하는 미국인 대니얼 휴즈가 설명했다.

  

휴즈는 미국 코넬대에서 일본학을 공부하고, 일본에서 일해보고 싶어서 왔다고 하네요. 그도 커넥트하우스 덕분에 저렴하게 일본에서 머문다고 합니다.


“튀니지와 아르헨티나 등 여러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요리를 보여주는 등 이벤트를 한다. 이벤트에 입주자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면서 함께 있는 일본 청년들도 요리에 흥미를 느끼게 되고,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눈다.” 그는 입주자들의 창업 의지를 돋구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커넥트하우스를 통해 창업까지 이어진 사례는 아직 없다고 합니다. 이제 시작했으니까, 양 폴이 의도한 대로 입주자들이 마음을 합쳐 함께 창업을 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겁니다. 창업을 못하면 어떴습니까. 요리도 배우고 외국인친구도 사귀면서 집세를 절약할 수 있는데요.


아무튼 커넥트하우스는 집을 토대로 청년들이 도약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청년실업’과 ‘높은 부동산 비용’을 함께 풀기 위한 색다른 시도는 참신했구요. 한국에서도 최근 청년 구직자나 창업자들이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생겨나고 있지만, 이처럼 함께 살면서 사업이나 구직을 위한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는 곳은 보기 드뭅니다.



이 글은 <한겨레21>에 소개된 기사를 수정했습니다

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39645.html?recopic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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