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포조선소 르포… 수조원 적자 해양플랜트 부실 정리 중
지난번 대우조선해양의 부실 이유를 분석한 글을 많은 분이 읽어주셨다. (감사 감사 ^^) 그 기사를 쓴 뒤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대우조선해양은 말레이시아의 국영 페트로나스로부터 발주받은 해양플랜트 사투의 명명식을 연다고 했다. 먼 길이었지만 궁금했다. 대우조선해양은 해양플랜트 공사 중 입은 거대한 부실에서 벗어나고 있을까. 4조원 가까이 국민 세금을 지원받는 옥포조선소의 분위기는 어떨까. 비가 오는 3월초, 거제도로 향했다.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페트로나스 FLNG 성공을 위해 축복해주십시오.”
3월 초, 아직은 쌀쌀한 빗속에서 낭랑한 기도문이 울려퍼졌다. 옥포조선소에서 세계 첫 FLNG에 이름을 붙이는 명명식이 열린 날 봄을 맞는 차가운 비가 내렸다.
바다에 접한 조선소 안벽에는 거대한 배가 붙어 있었다. 이 배는 길이 365m, 폭 60m 규모로 프랑스 에펠탑을 눕혀놓은 것보다 길고, 면적은 축구장 3.6배에 달한다. 배가 아니라 바다에 떠 있는 거대한 공장이었다. FLNG는 바다에 있는 천연가스 채굴 지점 근처로 가서, 뽑아낸 천연가스를 정제하고 액화해 저장과 하역까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해양플랜트다. 육지까지 장거리 파이프를 연결할 필요 없이 해상에서 가스를 뽑아내 바로 수출할 수 있어 경제적인 설비다.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배 맞은편 단상에는 이 해양플랜트를 만든 대우조선해양과 프랑스 설계회사 테크닙, 선주인 말레이시아 국영석유회사 페트로나스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단상에 있던 페트로나스의 완 즐키플리 완 아리핀 회장의 부인 아주라 아흐마드 타주딘씨가 손도끼로 줄을 내리치자, 해양플랜트 앞쪽에 붙어 있던 흰 가림막이 떨어지면서 ‘사투’(SATU·인도네시아어로 ‘첫 번째’란 뜻)라는 영어 알파벳이 드러났다. 전통적으로 조선소에서 진행되는 배의 명명식은 여성이 이끈다.
완 아리핀 회장 옆에 선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사투를 보며 웃었다. “신성장동력인 FLNG를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건조했다는 점에서 이번 명명식은 큰 의미가 있다. 우리가 수주 잔량이 제일 많고 충분하다. 심리적으로 위축될 필요가 없다.” 정 사장은 기자들에게 “LNG(액화천연가스) 기술은 우리가 최고다. 우리 기술에 대해 많이 소개해달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지난 3월4일 경남 거제에 있는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열린 해양플랜트 명명식은 그동안 보기 힘든 행사였다. 2010년대 초반 기름값이 비싸지면서 바다에서 기름과 가스를 뽑아내려는 해양플랜트 주문은 급격히 증가했다. 불경기로 인해 해양 운송을 하는 상선 발주는 줄어들었지만 해양플랜트는 국내 조선소를 먹여살리는 효자 상품으로 부각됐다. 그러나 정성립 사장 이전의 경영진은 대표 실적으로 자랑할 만한 해양플랜트 명명식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해 해양플랜트의 거대한 부실이 드러났다. 해양플랜트를 수주하면서 원가를 잘못 계산했고, 납기일을 맞추지 못했다. 대우조선해양은 2015년 2분기에만 3조399억원의 적자를 공시했다. 올해 공시된 자료를 보면, 지난 한 해 동안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이 기록한 영업손실 규모는 8조3156억원에 달했다. 해양플랜트 수주 실적 그래프는 급격히 올라갔지만 회사의 현금은 해양플랜트와 함께 바다로 사라졌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대우조선해양에 4조원이 넘는 돈을 지원하기로 했다. 국민 세금이 들어간 공적자금이다. 그런데 산업은행 등 감독기관에서는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채였다.
그 와중에 처음으로 해양플랜트 명명식이 외부에 공개된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은 해양플랜트 명명식을 통해, 과거의 부실을 털어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사투를 만든 페트로나스와 테크닙 직원들은 사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선주사를 위한 행사이긴 했지만 이 해양플랜트를 만든 대우조선해양 노동자들은 기념사진을 찍지 않았다. 이들은 다른 곳에서 또 작업 중이었다.
“수업료 다시 받아와야죠”
거대한 규모의 사투에 오르기 위해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30m를 올라가야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흰색 안전모를 받았다. 내부가 복잡하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액화천연가스를 보관하는 선체 위로 들어가 천연가스를 정제하고 액화하는 상부 구조물을 둘러봤다. 생산 구조물 무게만 4만6천t에 달하는 등 거대한 공장이 물 위에 떠 있었다. 각기 크기가 다른 파이프가 얽혀 있는 것만이 이곳이 가스나 액체를 다루는 공장임을 짐작하게 만들었다.
옥포조선소에 있지만 이 상부 구조물은 테크닙의 영역이었다. 해양플랜트 설계 기술력을 가진 테크닙은 세계 각지에 사투에 들어갈 다양한 해양 기자재를 발주해 옥포조선소로 보낸다. 복잡한 해양 기자재는 거대한 공장의 핵심 부속품이지만, 대우조선해양이 만들지는 않았다. 대우조선해양 노동자들은 선체를 만든 뒤 그 위에 여러 기자재를 올려 조립할 뿐이다. 국내 조선업체들이 대규모 적자를 내는 등 고전한 것은 이 상부 구조물을 설계하고 조립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건조는 지연되고 비용은 늘어만 갔다.
물론 땅이 아닌 좁은 배 위에 짓는 것도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다. 사투 위에 올려놓은 상부 구조물만 해도 땅에 짓는다면 배보다 3배 더 큰 면적이 필요하다고 했다. 상부 구조물로 기자들을 이끈 대우조선해양 박성량 부장은 “국내 조선소가 기본 설계 능력이 약한데 실제 이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을 보면서 배우고 있다. 이게 우리가 성장할 수 있는 힘이다”라고 했다.
조종실과 선실을 지나 여섯 층을 걸어 올라가 사투에서 가장 높은 헬기장에 이르렀다. 옥포만이 내려다보였다. 다양한 해양플랜트들이 여전히 조선소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적자를 볼 가능성이 큰 해양플랜트들은 아직 옥포조선소를 떠나지 않은 상태였다.
박성량 부장에게 ‘해양플랜트로 인해 회사가 휘청거릴 정도로 입은 대규모 적자는 (성장을 위한) 수업료인가’ 물었다. 박 부장은 “수업료 다시 받아와야죠”라며 입을 앙다물었다. 대우조선해양 직원들은 적자를 메우기 위해 투입된 4조원 이야기를 꺼내면 표정이 어두워진다.
박 부장은 사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배 만드는 데 철판값, 장비값 빼면 노무비밖에 없다. 노무비가 싼 중국 조선소를 당해낼 수 없다. 근데 이 해양플랜트는 기술과 경험이 없으면 못 만든다. 우리가 살길은 해양플랜트다.” 지난해 부장급 이상 직원 일부를 내보내는 구조조정을 한 뒤 작업 현장과 사무실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말하는 직원도 있었다. 젊은 부장들이 들어서면서 업무 효율이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수업료를 받아올 기회를 만들 수 있을까에 있다. 오일 메이저들이 사투 같은 해양플랜트를 대량으로 발주했던 시절의 배럴당 기름값은 100달러에 이르렀다. 이는 현재 반토막 난 상태다. 해양플랜트 발주는 멈췄다. 경기가 좋아지지 않는다면 더 오랫동안 배나 해양플랜트를 만들겠다는 주문은 안 들어올지 모른다. 기술력을 쌓으려면 시간도 더 필요하다.
인력 줄이는 조선소
옥포조선소를 떠나 김해공항으로 향하는 거가대교 위는 여전히 흐렸다. 차가운 빗줄기와 안개 탓인지 아직 봄이 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서울에서 대우조선해양 관리에 들어간 산업은행 고위 관계자를 만났다. 그는 "대우조선해양에게 시간을 줘야할 때"라고 했다. 그는 "대우조선해양은 세계적인 빌더니까, 수많은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가 그냥 내버려둘수는 없는 것 아닌가. 언론이 너무 앞서가지 말아야 한다. 올해 흑자 전환을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3월9일 서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정 사장은 흑자 전환을 위해 매출액을 줄이고 인력도 줄여 효율적인 조선소 규모를 만들겠다고 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부장급 이상 직원 300명을 내보냈다. 저성과자 중심으로 상시 구조조정도 하겠다고 했다. 이날 정 사장은 “2009년, 2010년에 조선소 생산성이 좋았다. 회사 상태로 보면 당시 매출 규모 약 11조~12조원 인원은 협력사를 포함해 총 3만 명 수준이다”라고 했다. 대우조선해양의 4만5천 명 노동자 가운데 1만5천 명을 줄이는 장기 계획이 발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