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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기자 Nov 19. 2016

삼성전자, '9조원' 하만 인수한 의미

시간을 벌 수 있을까... 패러다임을 바꿀수 있을까

  삼성전자가 역대 최대 규모의 기업 인수로 자동차 전자장비(전장)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스마트폰 사업 이후 바이오 외에 뚜렷한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다 정보기술(IT)과 자동차를 결합하는 전장사업에 큰 베팅을 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전장 사업에서 어떤 가능성을 보는지, 잇따른 기업 인수를 통해 무엇을 노리는지 분석해봤다.  


  삼성전자는 14일 이사회에서 커넥티드카와 오디오 전문 기업인 미국의 하만(Harman)을 인수하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인수 가격은 주당 112달러, 총액 80억달러(약 9조4천억원)다. 국내 기업의 외국기업 인수·합병 역사상 가장 많은 금액이다. 순이익 7억 달러를 내는 기업을 사는데 인수 비용은 많이 든 편이다. 하만 쪽은 좋은 딜이었다고 평가한다. 


  전장사업은 자동차 산업의 미래로 불린다. 전장은 자동차에 들어가는 모든 전기전자장비를 말하며,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등의 핵심 부품이다. 미국 지엠(GM)·일본 도요타·독일 베엠베(BMW) 등 완성차 업체들은 첨단기술로 브랜드를 차별화하기 위해 전장 사업에 집중 투자하고 있으며, 애플과 구글뿐 아니라 국내 엘지(LG)전자도 VC사업부문을 만들어 오랫동안 이 사업에 투자했다. 



커넥티드. BMW 제공




  전장사업의 지향점인 커넥티드카는 무선통신을 매개로 내비게이션, 원격 제어, 엔터테인먼트, 자율주행 등의 기술 구현을 통해 자동차를 운송수단 겸 첨단 정보통신기기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자율주행차로 가기 위해서는 텔레매틱스는 필수 기술이다. 눈이 오거나 지형적인 이유로 자동차의 라이다 등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우면 다른 차와의 통신, 위성 통신 등을 통해 안전을 확보해야하기 때문에 텔레매틱스가 필요하다.


삼성전자는 하만이 커넥티드카용 인포테인먼트·텔레매틱스·보안 등의 전장산업 분야에서 글로벌 선두기업이라고 밝혔다. 종업원이 3만명에 달하는 하만은 지난해 매출 70억달러(약 8조2천억원)에 순이익 7억달러의 실적을 올렸다. 프리미엄 인포테인먼트 시장에서 점유율 1위(24%), 텔레매틱스 시장에서 2위(1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1위 기업과의 차이가 크지 않다. 압도적인 기업은 아니라는 얘기다. 


  하만은 자동차 업계에서 오디오 분야 부품업체로 이미 유명한 기업이다. 하만이 보유한 하만카돈·제이비엘(JBL) 등의 브랜드는 세계적 자동차 업체들과 협력하고 있다. 삼성은 전장사업에서 매출의 65%가 발생하는 하만은 연매출의 약 3배인 240억달러 규모의 수주잔고도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세계 전장사업 시장이 지난해 450억달러 규모에서 2025년에는 10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의 전장사업 본격화 배경에는 자사의 정보기술(IT) 역량을 접합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점도 있다. 자동차용 정보기술 부품 또는 전기전자 시스템, 텔레매틱스 등이 그렇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삼성이 완성차사업으로 직접 진출하는 것은 노조와 품질관리 비용 등으로 인해 어렵다”며 “국내에는 현대모비스 외에는 큰 부품업체가 없는데, 전자업체들이 전장부품 경쟁력을 키운다면 국내 자동차 산업 전체의 경쟁력 확보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커넥티드카 개념도.  현대차 제공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이미 전장사업팀을 신설하면서 이 분야 진출에 시동을 걸었다. 향후 삼성전기나 삼성에스디아이(SDI) 등 계열사들과 시너지 효과를 확대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삼성전자는 단번에 전장업계의 강자로 부상하기 위해 하만 인수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부품은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신규 업체가 진입하기가 쉽지 않은 시장이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외국 업체들 지분과 프린팅사업부 매각 등으로 많은 현금을 축적해 놓은 상태였다.


또다른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삼성이 그동안 자동차 업계 인력을 많이 스카우트 했다. 하지만 자동차 반도체 등은 보쉬 등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 업체들이 매우 앞서 있어 따라잡기 힘들다. 삼성이라 해도 자동차 쪽은 초보운전인 셈이다. 결국 하만을 인수해 빠르게 시장진입을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 단종 등으로 스마트폰 사업이 한계를 부딪힐 가능성을 보고 빠른 결정을 내렸을 가능성도 있다.


 하만 최고경영자 디네시 팔리월은 “최근 정보기술이 자동차 분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우수한 기술과 폭넓은 사업 분야를 고루 갖춘 기업과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하만 주주들 승인 들을 거쳐 내년 3분기까지 인수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인수 후에도 현 경영진이 독립적 자회사로서 하만을 경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 경영진이 유지되면서 기존 거래선이 떨어져나가지 않는지, 삼성전자와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 

  하만과의 빅딜 발표 이틀 뒤 삼성전자는 캐나다의 기술 기업도 사들였다. 올해만 국외 기업 7곳을 인수합병하거나 지분 투자를 하는 등 삼성의 미래 전략이 기술 축적을 기다리기보다 ‘축적된 시간’을 사는 것으로 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16일 차세대 문자메시지 기술인 아르시에스(RCS)를 보유하고 있는 ‘뉴넷 캐나다’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 관계자는 “뉴넷 캐나다는 핵심 기술을 가지고 있는 수십명 규모의 기업이고 인수 금액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아르시에스 사업은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가 만든 통합 메신저 규격으로 별도의 가입절차 없이 메시지 전송과 그룹 채팅 등이 가능하다. 현재 스마트폰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서비스의 주도권이 카카오톡·라인·위챗·페이스북 메신저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넘어가 있지만, 이동통신사들이 이를 되찾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사업이다. 메신저 시장은 개인 간 소통뿐만 아니라 상거래, 뉴스, 광고 등 서비스 개발 여지가 무궁무진해 전세계 정보통신(IT) 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올해 움직임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삼성이 80억달러(9조4천억)를 들여 인수하기로 한 하만은 전세계 3000만대 이상 차량에 인포테인먼트와 자동차 오디오를 공급하고 있다. 노근창 에이치엠시(HMC)투자증권 연구원은 “하만은 유럽과 미국의 주요 완성차 업체들에 확고한 브랜드 선호도를 가지고 있는 점이 매력적이다”고 평했다.


  앞서 삼성전자는 미 클라우드 서비스업체 조이언트와 캐나다 디지털광고 스타트업인 애드기어를 인수했다. 중국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에도 30억위안을 지분 투자했다. 인공지능(AI) 플랫폼 개발 기업인 비브랩스도 사들였다.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삼성전자와 일한 경험이 있는 한 관계자는 “사물인터넷은 물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연계가 삼성의 인수합병 원칙이다”고 전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 하드웨어에서 강점이 있는데 이와 결합할 만한 소프트웨어 기업에 관심이 많다는 설명이다. 비브랩스를 인수한 것도 삼성 스마트폰에 인공지능에 기반한 대화형 비서 소프트웨어를 새로 탑재하기 위해서다.


  삼성전자는 지난 몇년 동안 자체 연구개발에 많은 투자를 했지만, 그보다 인수합병을 통해 추진한 사업이 더 나은 성과를 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2015년 인수한 미국 업체 루프페이(모바일 결제 시스템)에 기반한 삼성페이가 대표적인 예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센터장은 “삼성이 직접 개발할 경우 시장 진입에 2~3년이 걸리지만, 인수할 경우 바로 시장에 들어갈 수 있다. 시간을 버는 거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미국 기업을 지키자는 ‘보호주의’ 움직임이 일기 전에 발빠르게 기술 기업을 매수했다는 분석도 있다.




  전세계 대기업들은 이런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경우가 일찌감치 많았다. 구글은 2006년 유튜브를 사는 데 16억5천만달러를 들여서 너무 비싼 값을 줬다는 평을 받았지만, 유튜브는 지난해 60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2014년 인수한 인공지능 업체 딥마인드는 알파고를 개발해 화제를 뿌렸다. 애플도 인도의 인공지능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등 국적을 가리지 않고 기술기업을 인수하는 중이다. 물론 구글·애플 등이 많은 기업을 인수했지만 성공 사례가 많은 것은 아니다. 삼성이 하만을 인수한 비용도 비싸게 줬다는 분석도 있다.


 올해 240억파운드(약 35조4천억)를 들여 영국 반도체 회사를 인수한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회사를 인수합병한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을 인수합병했다”며 “패러다임 전환기에 다음 패러다임에 투자하기 위해 회사를 팔기도 하고 빚을 내기도 한다. 지금이 그 시기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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